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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훈 Dec 15. 2023

만성통증, 주인공은 누구인가?

만성통증의 민낯을 만나는 길


통증기능분석학회 추계 학술대회 강의록 초록 : 만성통증 증후군, 세 번째 화살의 비밀(4)



만성통증, 주인공은 누구인가?



통증을 느끼는 주체, 자아에 대한 뇌과학과 심리학적인 고찰


만성통증 증후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험과 기억, 메타인지와 관련된 세 가지 자아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를 살펴보는 것이 매우 유용하다.



앞서 말했던 첫 번째 화살 통각이 두 번재 화살을 맞으며 통증으로 바뀌고 3개월 간의 시간이 지나고 만성통증으로 진행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세 번째 화살을 맞아 만성통증 증후군으로 발전하면서 통증 뿐 아니라 환자의 삶 전반에 걸쳐 파괴적인 변화가 뒤따른다. 각각의 화살의 과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만성통증 증후군을 치료할 수 있다.


가) 통증을 느끼는 경험자아와 기억자아



현대 심리학은 뇌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자아의 실체에 다가서고 있다. 다음은 현대심리학이 대체로 합의점을 찾은 자아에 대한 세 가지 이해방식이다. 이것은 우리가 ‘자아’라고 부르면서 단일한 실체처럼 여기는 존재가 실제로는 기능적으로 엄밀하게 구분된 세 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각각의 역할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순한 뇌피셜이 아니라 심리학적 실험으로 이미 밝혀진 내용이다. 대니얼 카너먼의 긍정 심리학과 뇌과학 연구에 의한 자아 실험으로 경험자아와 기억자아는 뚜렷한 각각의 특징을 가진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나) 고통에서 벗어나는 열쇠, 배경자아


연세대학교 김주환 교수는 그의 저서 내면 소통에서 긍정심리학과 여타 다른 심리학적 통찰을 한 데 묶고 마음챙김 명상 등 다양한 종교적 접근법을 뇌과학적인 방법으로 체계화하였다. 그는 카너먼의 두 가지 자아개념에 덧붙여 흔히 영성이라고 불리는 또 다른 초자아(순수의식)에 접근하여 배경자아라는 이름으로 설명하였다. 이제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자아가 작동하는 방식을 조화롭게 이해하는 사람들과 그저 생각과 욕망이 벌이는 사투에 가까운 이중주에만 익숙한 사람들은 전혀 다른 세계에 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미 그런 세계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 세 개의 자아의 다양한 표현


● 경험자아* : 현재를 바탕으로 생존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자아. 자율신경과 뇌의 기초적인 활동을 통제하며 각성과 무관하게 자율적으로 활동한다. 함석헌의 스승이자 세계적 사상가 100인에 포함된 다석 유영모 선생의 표현으로는 ‘몸나’를 말한다. 흔히 말하는 육체 physical body와 가깝다. 불교적으로는 나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五蘊) 중에서 색色(겉으로 드러나는 몸)과 수受(감각기관)에 해당한다. 정신분석석학에서 id와 가깝다.


● 기억자아** : 과거 기억을 바탕으로 삶의 양과 질을 모두 고려하는 자아. 각성 상태에서 주로 활동한다. 유영모 선생의 표현으로는 ‘제나’에 가깝고 기독교적 전통으로는 혼魂과도 유사하다. 정신분석학에서는 ego와 가깝다. 융 심리학에서는 페르소나persona가 기억자아에 가깝다. 경험자아를 hardware라고 하면 기억자아는 software에 가깝다. 경험자아와 기억자아를 한 데 묶으면 soma 또는 심신心身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교전통으로는 나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五蘊) 중에서 상想(표상작용으로 의식 안에 자리잡은 이미지), 행行(의지 작용), 식識(판단하고 인식하는 작용)에 해당한다. 또 다른 불교전통으로는 생멸심生滅心, 분별심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 배경자아 : 경험자아가 기억자아에게 영향을 주고 기억자아가 경험자아를 통제하는 일련의 과정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보고 있는 자아. 메타인지의 주체이며 자신을 제 3자처럼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말한다. 유영모 선생의 표현으로는 ‘얼나’에 가깝고 중립적인 표현으로는 영성, 신의 성품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전통으로는 성령, 하나님 마음, 그리스도 등으로 표현될 수 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초자아(superego)와 가깝다. 융심리학에서는 집단무의식 중 조화로운 자기(self)의 통합에 기여하는 요소를 말한다. 불교의 전통으로는 法, 佛, 본래 성품, 본래 면목, 참 나, 진여심眞如心 등으로 말한다. 선불교적 표현에 기억자아는 분별심, 배경자아는 진여심이지만 줄여서 마음, 心 등으로 이 둘을 구별없이 쓰는 경우도 있는데 맥락에 따라서 구별하여야만 혼동이 없다. 동아시아의 전통으로는 천명天命, 도道,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일부 영성을 추구하는 과학자나 심리학자들은 순수의식, 초월에너지, 우주의 에너지, 양자장 등 다양한 표현을 하기도 한다. 가장 일반적이고 흔한 표현으로는 영혼이 있다.



경험자아와 기억자아가 개인이라면 배경자아는 인류의식이다. 배경자아는 개별적인 느낌이 아니라 인류공통의 속성이고 천성적이며 자연적인 것이다. 그래서 변할 수도 없으며 훼손받지 않는 의식이다. 경험과 기억은 내용이라면 배경자아는 개별적인 경험과 기억이 펼쳐지는 바탕이다. 이 바탕이 위에 모든 것들이 인연따라 떠올랐다가 가라앉는다. 수많은 파도가 몰아쳐도 바다는 변함이 없는 것처럼 배경자아는 바다와 같고 경험자아와 기억자아는 하나의 파도나 물방울과 같다. 파도가 자신의 본체인 바다를 의식하면 경쟁하고 다툴 일이 없는 것처럼 배경자아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경쟁을 떠나 고유한 자기만의 길을 평화롭게 걸을 수 있다. 이 세 가지 자아에 대한 모식도를 나타내면 다음 그림과 같다.



세 가지 자아를 통증에 대입시켜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첫 번째 화살은 통각이며 과녁이 경험자아이다. 두 번째 화살은 통증이며 과녁이 기억자아이다. 세 번째 화살은 고통(만성통증 증후군)이며 그 과녁은 배경자아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하는 '무지' 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화살은 대부분 외부적인 요인이므로 예방을 한다 해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두 번째 화살은 건강하다면 그 피해를 줄일 수는 있지만 이것도 근본적으로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세 번째 화살은 반드시 피해야 하며,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 세 번째 화살이 현대인들이 겪는 만성통증 증후군, 즉 고통이다. 만성통증 증후군의 원인을 파악하여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이 이 강의의 목표이다.





다음 시간에는 만성통증에 대한 계통적 접근에 대해 알아보자.



- 5/14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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