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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훈 Nov 29. 2023

통증의 만성화 과정

만성통증의 민낯을 만나는 길


통증기능분석학회 추계 학술대회 강의록 초록 : 만성통증 증후군, 세 번째 화살의 비밀(3)




통증의 만성화 과정



가) 급성 통증 : 생물학적 통증 모델 


급성통증은 통증의 개념 가운데 생물학적 통증 개념이 잘 들어맞는 영역이다. 이 분야는 앞서 설명한 데카르트의 연구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최근 몇 십 년간 생물학적 모델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 분야의 시도가 의학계 전반에 걸쳐 엄청난 진보를 이루었다. 분자생물학과 유전자 수준으로 질병에 접근하는 과학적 방법론이 질병의 발생기전을 밝혀내고 그에 맞는 치료제를 개발해 왔다. 항암치료제 중의 일부는 표적치료제로 작용하여 십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손도 댈 수 없었던 암을 상당한 수준으로 치료하기도 한다. 전설적인 밴드 퀸의 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목숨을 가져가 버렸던 AIDS도 면역치료제의 개발로 이제는 당뇨병 정도의 만성질병처럼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의학의 발달은 실로 눈부시다. 로봇이 수술을 하고 재료공학의 발달로 장기를 3D 프린팅으로 만들어 내는 수준으로 발달했다. 급성통증에 대해서는 이러한 현대의학의 발달이 비교적 잘 적용되어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다. 급성외상에 의한 조직손상과 관련되는 통증은 수술과 약물치료 등으로 잘 조절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급성통증에도 일부 예외가 있다. 전쟁과 같은 극한상황에서 큰 부상을 당한 군인이 느끼는 통증보다 평화로운 일상에서 발생한 가벼운 교통사고에서 느끼는 통증이 더 크다는 것은 조직손상의 심각성과 통증의 강도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인 사례를 제외한다면 비교적 급성통증은 생물학적인 통증 기전이 잘 적용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통증이 3개월 이상 지속될 때 만성통증이라고 한다. (연구자에 따라 6개월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조직의 손상이 더 이상 없다면 대체로 3개월은 조직의 손상이 자발적으로 회복되기에 충분한 기간이다. 추가적인 조직의 손상이 없는 상태에서 3개월 이상 통증이 지속될 때 급성통증이 만성통증으로 발전한다.



나) 통증의 발생과 억제


통각은 역치 이상의 해로운 자극이 신체의 어느 부분과 만날 때 일어나는 감각이다. 이것은 신경회로를 따라 뇌로 전달되기까지 이어지는 감각신호의 상향식 전달이다. 서울을 뇌라고 치면 마치 고속도로의 상행선과 같다. 시상을 거쳐 일차감각피질에 도달하기까지 이 감각신호는 자극적인 신호이긴 하지만 아직은 중립적이다. 


받아들인 감각신호가 생존에 위협이 되는 것인지 여부를 기억을 기반으로 불쾌한 감정을 일으킨 결과 통증이 창조된다. 시상까지 도달한 감각신호가 뇌섬엽(insula)과 전대상회(ACC Anterior Cingulate Cortex)로 이어지면서 감정을 일으킨다. 순간적인 느낌은 뇌섬엽에서 바로 편도체(Amygdala)를 자극한다. 편도체를 자극하면 두려운 감정이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다른 감정보다 두려움은 즉각적으로 행동을 촉발한다. 만일 생존에 위협이 되는 것이라면 즉시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통증의 상행성 전달신호)





전대상회로 이어진 감각신호는 다양한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과 결합하여 통증의 수준을 결정한다. 전대상회에서 감정과 결합한 통증은 전전두엽(PFC PreFrontal Cortex)으로 이어져 통증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전전두엽은 통증의 정도와 생존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를 고려하여 하행성 통증억제(modulation of pain) 신호를 보낸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하행선 고속도로와 마찬가지다. 하행성 통증억제 신호는 도파민, 엔도르핀 등을 분비하여 불편한 감각들이 충분히 감내할 만한 것이라고 느끼게 만든다. (통증의 하행성 억제신호)





부드러운 모래사장에서 조개껍데기를 밟으면 통각신호를 얼른 알아채고 깜짝 놀라서 발바닥을 살펴볼 것이다. 한편, 마라톤을 하는 중에는 다리에서 통각신호가 올라오고 심장박동 증가로 통각신호가 증가하지만 목표를 위해 감내할 만한 것이라고 여긴다. 때로는 오히려 이렇게 심장이 뻐근한 극한 상황에서 더욱 벅찬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이것은 대마에서 추출한 화학성분과 유사한 신경전달물질인 엔도카나비노이드의 역할이다. 이렇듯 통증을 경험하는 자아(*경험자아)가 과거의 기억(**기억자아)을 참고하여 각성상태에서 모든 감각이 자신의 삶에 유용한지 살펴보고 평가하거나 통제한다. 다양한 자아의 개념은 뒤에 다시 자세히 기술하겠다. 



시상하부(Hypothalamus)는 자율신경과 우리 몸 전체를 조절하는 경험자아의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감정에 물든 경험은 기억이 되어 대뇌 구석구석에 나누어져 저장되고 기억자아를 강화하거나 조정하게 된다. 시상하부는 지금의 감각과 과거의 기억을 참고하여 통증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통증을 조절하는 신호를 몸으로 보낸다. 


뇌의 보상회로 중추인 측좌핵(Nucleus Accumbens)과 기저핵(Basal Ganglia)에서 기쁨과 몰입을 일으키는 도파민을 분비하고, 봉선핵(Raphe Nuclei)에서 만족과 평온한 느낌을 주는 세로토닌을, 청반(Locus ceruleus)에서는 의식적 각성을 일으키는 노르에피네프린 등의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한다. (각성이 일어나지 않으면 의식적 자아가 활동하지 않는다.) 중뇌수도관 주변의 중뇌수도회색질(PAG PeriAqueductal Gray), 연수 주변(Rostral Ventromedial Medulla)에서 오피오이드 계통의 천연 진통물질인 엔도르핀과 감동을 받을 때 활성화되는 다이돌핀을 얼마나 분비할 것인지를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결정한다.


다) 만성통증 : 심리-사회적 모델


그러나 이런 통증의 억제과정이 성공적으로 끝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반복적으로 무리하게 동작을 반복하거나,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거나, 불안과 긴장이 과도할 때, 사회적 지지가 약할 때, 정신과적 질환이 있거나 장이 건강하지 못한 경우 급성통증이 아급성기를 거쳐 만성통증으로 진행할 확률이 높다.


급성통증이 주로 기계적인 충격과 그에 대한 인체의 면역반응이라면 만성통증은 충격의 크기 뿐 아니라 다양한 심리적, 사회적 관계가 영향을 준다. 따라서 단순히 약을 더 세게 쓴다거나 주사나 수술과 같은 치료법은 그 효과가 미미하거나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현대의학은 데카르트의 프레임에 빠져 기계적으로 약의 용량을 올리거나 더 강한 진통주사나 시술, 수술 등의 절차를 단계별로 거치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현대의학이 발달한 선진국에서 여전히 만성통증 환자가 줄지 않고 있는 것이다.




https://youtu.be/6jUrEqcRzGQ?si=wz11oehYgOPnW5C9


다음은 통증을 느끼는 주체인 '자아'에 대해 깊이 알아보자.



            4/14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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