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통증의 민낯을 만나는 길
통증기능분석학회 추계 학술대회 강의록 초록 : 만성통증 증후군, 세 번째 화살의 비밀(7)
모든 만성통증이 만성통증 증후군으로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만성통증은 3개월 이상 지속되는 통증이며 육체적 활동이나 직업의 특성에 따라 어느 정도의 통증을 매일 겪는 것이 일상인 경우도 많다. 만성통증이 만성통증 증후군으로 바뀌는 것은 약 25% 정도이다. 통증뿐 아니라 우울감, 불안감 등이 동반되면서 환자의 일상생활에서 온전한 기능을 수행하는 데 심대한 문제가 생길 때 만성통증 증후군으로 진단한다.
만성통증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은 통증 외에도 주로 다음과 같은 증상이 흔하다.
● 정신과적 문제 : 불안, 우울, 수면장애, 죄책감,
● 일상적인 문제 : 만성피로, 성욕감퇴, 술이나 약물남용,
● 사회적인 문제 : 결혼생활이나 가족 간의 갈등, 직업적인 문제
무엇보다 만성통증 증후군이 위험한 것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자기 효능감 때문이다. 자신이 그다지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 때 자괴감과 죄책감이 심해지면 자살 충동까지 이어진다. 이런 환자들을 접할 때마다 그들이 고개를 떨어뜨린 채 끝도 없이 어두운 터널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듯한 뒷모습을 보게 된다. 길이 거기가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러나 환자를 만난 초기에는 내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에만 맴돌 뿐 가슴에 가닿지 못한다. 내 목소리는 어두운 터널에 공허한 메아리처럼 맴돌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이런 시행착오를 통해 늘 배우고 조금씩 나아가면 언젠가는 그분들의 가슴에 좀 더 쉽게 가닿지 않을까?
니체의 말처럼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는 것을 그분들이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다만, 지금은 그들이 망치를 든 철학자와 같은 용기를 가질 수 없다. 통증의 본질에 다가서는 의사가 함께 그 길을 걸으며 안내해야만 한다. 그들이 용기를 내도록 돕는 것이 배경자아의 안목을 가진 의사들의 소명이다.
만성통증 증후군을 가진 환자들이 자기 효능감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아채고 난 뒤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의 쓸모’라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은 자신에 대해 무엇을 근거로 가치를 매기는 것일까? 회사에서는 업무능력으로 가치를 매기고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가치를 매기는데, 자기 자신은 자기의 가치를 무엇으로 매기는가?
이런 물음은 결국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되었다. 무언가를 정의하려고 할 때 그 자체에 대한 즉답을 할 수 없는 경우 유용한 방법이 있다. 그것은 정의하려는 대상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 내지는 반대에 있는 개념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이전에 ‘나는 무엇이 아닌가?’라는 질문이 더 쉽게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시간에는 '나는 내 몸이 아니다?'에 대해 과학적인 접근을 해 보겠습니다.
8/14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