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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훈 Sep 23. 2024

통증! 실체인가? 개념인가?

만성통증의 민낯을 만나는 길

통증기능분석학회 추계 학술대회 강의록 초록을 재편집하였습니다.



만성통증 증후군, 세 번째 화살의 비밀(1)



만성통증 증후군은 3개월 이상 지속되는 통증이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지경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이때 삶의 질과 직결되는 항목으로는 수면장애, 피로, 우울감, 자존감 저하, 업무의 능률 저하 등이 있다. 결국 만성통증 증후군은 다방면에서 한 개인의 자립 기능뿐 아니라 사회적 기능을 떨어뜨리고 이것은 환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과 사회의 문제로 발전하게 된다.


만성통증 증후군을 해결하는 것은 개인의 통증을 제거하는 것을 넘어 그 가족을 치유하고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라고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는 만성통증 증후군은 치료보다는 치유에 더 가깝다.


그러나 만성통증 증후군을 해결하는 것은 전통적인 통증 치료 접근법으로 쉽게 해결되기는 어렵다. 일반적인 통증과 달리 만성통증 증후군은 근골격계의 해부학적 손상보다 반복되는 미세손상과 만성적인 염증이 더 큰 문제가 된다. 그뿐 아니라 통증에 대한 개인적인 관점, 사회경제적인 문제, 정서적인 문제 등이 복합되어 전통적인 주사치료나 약물치료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접근하는 것은 불완전한 회복이나 대단히 제한적인 결과를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현대의학이 만성통증 증후군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모두가 Cartesian카르테지안(데카르트의 사상을 이어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식 생물학적 통증모델,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17세기, 데카르트는 중세시대와 확연히 비교되는 독창적이고 통합적인 시각을 가졌다. 사물의 이치에 대한 깊은 탐구로 데카르트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모든 사물의 이치에 있어 신을 중심으로 이해하던 시대를 끝내고 드디어 인간의 이성이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는 역사적인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데카르트는 마지막 중세인이자 최초의 근대인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통증에 대해서도 이렇게 물리적으로 이해한 것이 통증의 생물학적 모델의 기반이 되었다. 이런 방식의 인체에 대한 접근은 외상이나 기형과 같은 해부학적 이상이 동반된 상황에서는 상당히 과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서가 되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는 해부학적 이상이 동반되지 않은 통증이 훨씬 더 많다. 수많은 기능성 통증과 신경계에서 발생하는 통증에 대해서는 그의 통증모델이 별다른 해답을 줄 수 없음에도 현대식 교육은 여전히 그가 주창한 통증모델을 기반으로 교육하고 있다. 말초신경에서 통증을 조절하려면 국소마취, 척추 수준에서 통증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척추마취, 뇌의 수준에서 통증을 제어하려면 전신마취를 하는 방식이다. 급성 통증에는 이런 단계적 모델이 유용하지만 만성통증은 또 다른 이야기다.





데카르트 같은 천재의 말이라도 당대에만 유용하거나 특정 상황에서만 진실이다.


데카르트가 인간의 본질을 이성에서 찾았기 때문일까? 현대사회는 이성적 인간을 이상적 인간이라고 믿는 사회적 통념이 생겼다. 감정은 이성의 반대편에 위치한 수준 낮은 그 무엇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최근 행동심리학이 밝힌 것처럼 인간의 행동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뇌에서 추론하거나 비교 판단하는 이성적 사유가 아니라 상당 부분 감정이었음이 데이터로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데카르트식 통증모델이 우리 사회를 압도하고 있다.


데카르트는 마음과 몸을 둘로 나누고 몸은 철저히 물리적이고 기계적인 원칙을 따른다고 믿었다. 통증에 대한 그의 관념도 마찬가지다.


"자극이 크면 조직 손상이 크고

조직 손상이 크면 통증이 크다.”


너무도 자명해 보이는 이 말이 오늘날 만성통증을 만들고 있는 데카르트로부터 시작한 심신이원론의 함정이다.


문명화된 사회는 지난 100년간 통증 분야에서 엄청난 진보를 이루었다. 세포와 유전자의 구조를 밝혀냈고 수많은 신경전달물질과 뇌의 상호작용을 파헤쳤다. 마취기술과 인공관절, 장기이식기술 등이 발달하여 어려운 수술도 가능해졌고 심지어는 로봇이 정교한 수술을 하기도 한다. 통증을 조절하는 약물과 세포재생기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상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의학적인 발전의 혜택을 누리는 선진국은 왜 여전히 100년 전 정도의 의학 수준을 가진 후진국에 비해 만성통증 환자가 더 많을까?


급성통증은 실체가 분명히 있지만

만성통증은 실체가 모호할 때가 많고

환자가 속한 사회적 개념에 따라

증상도, 치료도 달라진다.




다음 시간에는 급성통증이 만성으로 진행하는 과정을 알아보자.



- 2/14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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