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몸과 마음, 따로 또 같이(2)
"몸이 아프면 살고 싶고, 마음이 아프면 죽고 싶다."
1부. 몸과 마음, 따로 또 같이
죽고 싶은 마음 - 소유로는 채울 수 없는 허물어진 마음
45세 여자 환자분. 단아한 모습의 첫인상, 그러나 피부에 탄력이 없고 눈빛은 어두웠습니다.
오랜 기간 불면, 우울, 불안, 만성통증과 피로, 무기력이 온몸을 휘감고 있는 상태로 첫 진료를 보았습니다. 대구에서 여러 병원을 다니며 치료했으나 좋아지질 않아서 정기적으로 서울에 있는 큰 대학병원의 유명한 정신과와 내과 교수님께 치료를 함께 받고 있지만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몸도 신통치 않은데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과의 갈등이 버겁기만 합니다. 덩치가 그녀의 두 배는 될 법한 그 아들의 케어를 병행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들의 ADHD와 충동장애, 폭력적인 성향이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든 상태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학교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녀는 뒤따라 다니며 수습하는 것도 이젠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내과적인 혈액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그녀는 무너져 내리듯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너무 고통스러워요. 그냥 이대로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만 들어요. 이대로 사라지고 싶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대구에서 가장 좋은 아파트에 사는 분이었습니다.
환자분이 고통을 느끼는 그곳은 '몸'만이 아니었습니다.
고통의 깊은 뿌리는 분명히 '마음'에 있었습니다.
넘치는 생각에 지쳐버린 마음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마음은 끝도 없이 과거의 기억을 고장 난 테이프처럼 반복하며 후회를 낳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론 알 수도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끊임없이 그녀를 몰아붙이고 있었죠.
그녀에게 과거는 너무도 생생했고 미래는 괴물 같았습니다.
안타깝지만 어찌할 수 없는 과거와 불확실한 미래에 떠밀려 가장 생생해야 할 현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찾을 수 없었습니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그저 겨우 숨만 쉬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처한 현실이 "가짜"라고 느끼고 있었고,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몸이 다 고장 난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죽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그 말은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이라기보다 '살려 달라'는 말에 더 가깝게 들렸습니다.
그저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뿐이었습니다.
몸은 '지금 여기'에 갇혀 있는데 마음은 '지금이 아닌 어느 때, 여기가 아닌 어느 곳'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서로 분리된 지점.
이 지점에서 고통이라 불리는 삼출액이 흘러나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무너져 내린 마음이 맞이하는 현재는 더욱 고통스럽게 다가올 뿐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고통의 밑바닥에서 떠오른 질문, 외면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