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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나 Oct 22. 2020

조금 모자란 사람들

007. 명숙

한명숙 씨는 1963년에 3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위로 오빠 하나, 언니 하나가 있었고 아래로 남동생 둘, 여동생 하나가 있었다. 그러니 한명숙 씨는 첫째 딸도 아니고, 막내딸도 아닌 애매한 샌드위치였다. 아버지인 한인수 씨와 어머니인 이춘예 씨는 애매한 샌드위치 딸에게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관심을 받든 말든, 명숙은 40킬로그램 대의 야리야리한 몸매와 눈코 입이 뚜렷하고 앞광대가 탐스럽게 볼록 튀어나온 매력적인 처녀로 자랐다. 


명숙의 집은 관광지에서 장사를 하며 하숙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명숙은 장사가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하숙집 일을 도맡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하숙집에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던 포크레인 기사 민기가 조수를 데리고 도착했다. 탄광 공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민기는 명숙의 집에서 하숙을 시작했다. 명숙은 원체 바지런하고 손이 꼼꼼하고 심성이 착했다. 아침, 저녁 두 끼만 지어주면 되는 것을, 굳이 나서서 빨래까지 해줬다. 손으로 하숙생들의 속옷까지 빨아 햇볕에 잘 말린 다음 차곡차곡 접어 방으로 넣어주었다. 민기는 그런 명숙의 바지런함과 가지런함에 반하고 말았다.

누가 먼저 추파를 던졌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 내가 사실 관계를 명확하게 하려고 시도할 때마다 민기는 명숙이 먼저 ‘꼬리를 쳤다’고 하고, 명숙은 민기가 먼저 ‘작업을 걸었다’고 우기기 때문이다.


아무튼 둘은 자연스럽게 사귀게 되었고, 민기는 드디어 한인수 씨와 이춘예 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가 명숙이 평생 행복하게 해 주겠습니다.”


인수 씨와 춘예 씨는 잘생기고 다부지고 무엇보다 일을 열심히 하는 민기가 마음에 들었다. 결혼을 허락했다. 이때 명숙은 풀로 문풍지를 붙인 방문 너머에서 구멍 사이로 이 장면을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명숙은 민기가 엄마 아빠 앞에 앉자마자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쿵쾅 뛰었는데, 갑자기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은 민기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 검지가 반토막이었다. 연애할 때는 발견하지 못했는데. 명숙은 민기의 검지 반토막이 되어주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장거리 연애였다. 명숙은 충청도에 남았고, 민기는 서울로 옮겨 일을 시작했다. 명숙은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민기를 만나러 가, 며칠씩 자고 오곤 했다. 하지만 며칠을 머물러도 아쉬웠다. 명숙과 민기는 자주 터미널에서 만났고, 자주 터미널에서 헤어졌다. 명숙은 그때마다 울었다. 민기는 같이 서울에 살던 형 남기와 함께 <눈물 젖은 터미널>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남기가 곡을 쓰고 민기가 가사를 붙였다. 남기가 기타를 치고 민기가 노래를 불렀다. 테이프에 담긴 조악한 음질의 <눈물 젖은 터미널>을 들은 명숙은,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다만 버스를 타고 단양 버스터미널에 갔다가 다시 바로 서울로 오는 차를 타고 민기에게 되돌아왔다. 퇴근을 하던 민기는 불 밝힌 창문을 보고 생각했다.


‘내가 불을 켜놓고 나갔던가?’


명숙이 어두운 방에 불을 밝히고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아침에 터미널에서 헤어졌는데. 민기는 명숙의 행동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명숙과 민기는 결혼해서 서울에서 살림을 시작했다. 단칸방에서 시작한 결혼생활은 고되고 가난했지만 매일매일 출근했다 돌아오는 민기를 기다리며 밥을 짓는 일은 즐거웠다. 하지만 바지런하고 가지런한 명숙은 어렸을 때부터 몸이 원체 약했다.

명숙은 평생 세 번 임신했다. 처음엔 아들, 두 번째에는 딸, 마지막으로는 아들을 배 속에서 열 달씩 키웠다. 첫째 아들을 잃었다. 나는 자동으로 장녀가 되었다. 명숙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왼쪽 귀의 청력을 잃었다. 민기는 명숙의 왼쪽 귀가 되어주기로 결심했다. 나는 명숙이 청력을 잃은 사건에 대해서, 언젠가 따로 쓰고 싶다.


어찌저찌해서 그렇게 명숙은 민기의 검지가, 민기는 명숙의 왼쪽 귀가, 나는 장남을 대신한 장녀가 되었다.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명숙은 이 가족이 '쫌 괜찮은 조합 같아'라고 생각했다.


장녀인 나는 명숙을 닮아 잔병치레가 많고, 남동생은 민기를 닮아 다부지고 건강하다. 우리는 함께 세 시간 이상 모여 있으면 백 퍼센트 싸운다. 나는 민기는 보수적이고 명숙은 걱정이 많고 동생은 제멋대로라고 화를 낸다. 하지만 알고 있다. 나 역시 완벽한 가족이 아니라는 걸. 그래도 알고 있다. 각자가 완벽하지 않아서 조금은 비뚤지만 어쨌든 우리는 하나의 도형을 이루고 있다는 걸. 그게 찌그러진 원이든, 사각형이든 말이다. 명숙이 만든 가족, 완벽하진 않아도 쫌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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