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보나 Oct 31. 2020

인생에서 가장 짧고 아름다운 2주

014. 현재

현재는 1987년에 이민기 씨와 한명숙 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현재는 매우 잘생긴 아이였다. 커다란 눈에 오뚝한 코가 아기 때부터 매우 두드러졌다.

명숙은 현재를 낳을 때 매우 고생했다. 민기는 아내 명숙의 몸조리를 위해 어머니를 모시러 전남으로 내려갔다. 현재는 민기가 어머니인 묘남을 모시고 병원에 막 들어서던 찰나 울음을 터뜨리며 자신의 탄생을 알렸다.


현재는 장이 아팠다. 태변을 봐야 하는데 보지 못했다. 명숙과 민기는 안절부절못했다. 의사는 관장을 시도하며 ‘지켜보자’는 말만 했다. 현재의 상태는 나날이 안 좋아졌다. 병원에 입원한 명숙의 상태도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명숙은 원래 몸이 약했다. 화장실에 가려던 명숙은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결국 민기는 명숙을 퇴원시켜 직접 돌보고, 현재는 소아병동에 입원시켰다. 하지만 소아전문의사는 민기에게 말했다.


“너무 늦게 오셨습니다. 아이의 장이 막혔어요. 살아날 확률은 50 대 50입니다.”


민기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얻은 아이. 장남이었다. 현재를 잃고 싶지 않았다. 현재는 민기를 닮았고 아직은 너무나 어린아이였다. 당시 민기는 한 달에 30만 원을 벌었는데,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했다. 그 시대에는 공무원이나 대기업 직원이 아니면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기가 어려웠다.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중장비를 운전하던 개인 사업자인 민기가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한 건 당연해 보였다. 현재를 살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고 했다. 수술비만 해도 300만 원이 넘었다. 300만 원은 지금도 큰돈이지만, 민기가 월급 30만 원을 받던 시절에는 더더욱 큰돈이었다. 거의 연봉에 달하는 돈 이상이었다. 수술비, 입원비, 약값... 하지만 민기는 모아둔 돈을 모두 쏟아부었다. 현재를 살리고 싶었다. 아이를, 자신의 아들을 살리고 싶었다. 현재가 ‘아빠’라고 말하는 걸 듣고 싶었다. 현재와 공놀이를 하고 싶었다. 현재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민기는 전재산을 수술비와 병원비로 납부했다.


명숙은 다시 병원에 입원을 했고, 현재는 작은 몸으로 수술을 받았다. 장의 끝부분이 기형이라고 했다. 현재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거였다. 민기와 명숙은 현재가 살아날 거라고 굳게 믿었다. 현재의 출생신고를 하고, 호적에 올렸다. 그리고 수술을 받은 후 3일, 현재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민기와 명숙은 사망신고를 했다.

병원 측은 현재의 시신을 대신 ‘처리’해주거나 기증하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명숙과 민기는 첫아들을 병원에 내주고 싶지 않았다. 앞자리에 민기와 남기가 타고, 뒷자리에 명숙이 숨을 거둔 현재를 안고 차에 탔다. 그들은 현재를 묻을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산모는 아이의 얼굴을 보지 않는 게 좋아요.”


병원에서는 명숙이 충격받을까 봐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하게 했다. 달리던 자동차가 방지턱을 넘었고, 차체가 흔들렸다. 순간, 명숙은 품 안의 현재가 움직였다고 느꼈다. 현재는 배 속에 있을 때 무척 활발한 아이였다. 시도 때도 없이 엄마의 배를 발로 차서 명숙을 놀라게 만들었다. 마치 그때처럼, 명숙은 현재가 힘차게 손발을 뻗고 있다고 느꼈다. 명숙은 가만히 아이의 얼굴을 덮은 천을 걷어보았다. 아이가 눈을 뜨고 명숙을 바라보며 웃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아이의 표정은 평안했다. 명숙은 이렇게 말했다. 평안했다고. 아이는 평안한 표정이었고, 그리고 눈이 크고 코가 오뚝했다. 잘생긴 아이였다. 달리는 차 안에서 명숙은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울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명숙은 현재를 민기에게 안겨주고 차에 남아 있었다. 민기와 남기가 현재를 묻었다.


현재의 흔적은 한동안 주민등록등본에 올라 있었다. 동사무소에 가서 등본을 떼면, 그들의 이름 아래 아들 ‘이현재’가 등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망이라고 적혀 있었다. 몇 년이 지나자 그 흔적마저 사라졌다. 현재는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에게서 떠나갔다.


명숙은 임신하기가 두려웠다. 또다시 아픈 아이가 태어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바로 나를 임신했다. 태명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다. 나는 매우 조용한 아이였다. 배 속에서 좀체 움직이는 일이 없었다. 명숙은 그래서 더 불안했다. 게다가 나는 나올 때가 지났는데도 도무지 ‘태어날’ 생각을 안 했다. 불안한 민기와 명숙은 산부인과를 찾았고, 의사는 상황이 급하니 바로 입원해서 아이를 꺼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때 배 속에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명숙을 수술실로 들여보내 놓고 민기는 병원생활을 위해 옷가지를 챙기러 갔다. 그사이 명숙은 나를 낳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제발, 제발, 건강하게 태어나길. 힘을 주던 명숙은 침대 손잡이를 부러뜨렸다. 손잡이가 뚝, 하고 떨어져 나갔다. 그 심각한 와중에서도 간호사와 의사, 명숙마저 와르르 웃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웃음 속에 나는 태어났다. 사람들은 웃었지만, 태어나면 울어야 할 나는 울지 않았다. 태어나자마자 울지 않는 아이는 아픈 아이다. 명숙은 겁이 났다. 의사가 내 두 발목을 한 손으로 쥐고 거꾸로 들었다.


“아가야, 울어야지!”


의사가 내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나는 울음을 터뜨렸고, 명숙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현재가 태어나기 전에, 명숙과 민기는 철학원에 현재의 이름을 지으러 갔다. 그때 철학원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애는 엄청 똑똑한데... 명이 짧네.”


명숙과 민기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말이 맞았다. 현재는 너무나 짧은 생을, 2주 간 살다 갔다. 명숙과 민기에게 아름답고 슬픈 추억을 남긴 채. 명숙과 민기는 현재를 살리기 위해 빚을 많이 졌고, 그래서 나를 임신하고 낳았을 때 좋은 음식과 약을 해 먹을 수 없었다. 나는 약한 아이로 자랐다. 명숙과 민기는 다시 철학원에 가서 나의 이름을 지었다. 내 사주에는 목(木)이 하나도 없었다. 철학사는 일부러 ‘풀’이 들어가는 한자를 넣어 내 이름을 지었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나무로 만드는 책을 가까이하면서 자랐다. 그리고 지금은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어쩔 땐 인생이 ‘랜덤’인 것 같다가도, 때로는 인생이 모두 정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명이 짧다’는 철학사의 예언처럼, ‘이 아이의 사주에는 나무가 없으니 풀의 기운을 이름에 넣어야 한다’고 예언했던 철학사의 말처럼. 나는 나무가 없는 사주를 타고 태어나서, 나무로 만드는 종이 옆에 딱 붙어사는 일을 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도 모두 내 사주팔자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모든 게 사주팔자 때문이라면, 어째서 현재 오빠는 그토록 짧은 생의 운명을 타고 난 걸까.


그 후로 내 동생이 태어났다. 당연히 내 동생의 이름은 현재가 아니고, 나는 내 동생을 아낀다. (우리 사이에는 물론 반목의 역사도 길다.) 하지만 나는 가끔 생각한다. 현재 오빠가 있었다면 그는 어떤 사람으로 자랐을까. 현재 오빠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현재 오빠는 지금 하늘나라에서 우리 가족을 지켜보고 있을까. 나는 우리 가족이 네 명이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어쩌면, 사실, 우리는 다섯 가족이라고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전 13화 조금 모자란 사람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