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보나 Mar 07. 2021

남들이 날 미워하면 어떡하지

쓸데없는 생각이 덮쳐올 때

가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할 때가 있다.

내가 이렇게 적는 건 이 상상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매우 낮다는 것을 나도 이성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사람들이 날 싫어하면 어떡하지?’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큰 상관이 없다. 나는 그저 그게 누구든지 간에, 누군가가 날 싫어한다는 사실을 무서워한다. 혹은 그 사실과 맞먹을 만큼 무서운 일은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일이다.


이 생각이 언제,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강렬하게 기억하는 최초의 말도 안 되는 상상은 대학 입학 때였다. 나는 논술 시험으로 총 7개의 대학에 응시했고, 그중에 가장 시험이 어려웠다고 생각한 곳에 ‘조건부 합격’을 했다. 수능에서 특정 점수 이상을 받아오면 최종 합격이 되는 제도였다. ‘특정 점수’는 모의고사 점수로 볼 때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수준이었고, 나는 그 대학에 최종 합격했다. 물론 무사히 졸업도 했다. 그러나 합격 초기에는 아무래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뭔가 실수나 오류가 있어서 날 뽑았을 거야. 내가 붙었을 리가 없어.’


나는 종종 교수님이 매우 피곤한 표정으로 논술 시험지를 채점하다가, ‘불합격’으로 분류했어야 할 내 답안지를 실수로 ‘조건부 합격’에 분류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하도 자세히, 생생하게, 자주 상상해서 나 스스로도 나중에는 진짜 기억이라고 믿을 정도였다. 1학년 1학기를 다니는 내내 ‘혹시 학교에서 실수를 알아채고 입학을 철회하진 않을까?’하는 생각에 불안해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상상은 ‘날 미워하면 어쩌지?’의 연장선인 것 같다. 상대가 나를 잘못 봤다고, 너를 좋게 본 건 실수였다고, 너에게 가졌던 호감은 불찰이었다고 생각할 것 같다. 이런 일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나는 7개월의 기간을 거쳐 이직에 성공했다. 1차 면접을 1시간 넘게 보았고, 인성 검사를 했고, 최종 면접을 3시간 동안 봤다. 객관적으로 보면 매우 어려운 관문을 통과했다고 할 수 있지만, 로 내일 출근을 앞둔 나는 이런 상상을 하고 있다.


‘뽑을 사람이 없어서 대충 날 뽑은 거면 어쩌지?’


그도 그럴게, 나는 경력직으로 이직을 했지만 해당 분야에는 경험이 없었다. 그런데도 날 뽑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의아하게 느껴졌다. 한번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자 불안과 망상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막상 출근했는데 실망하면 어쩌지? 자기들이 찾던 인재가 아니라고 하면 어쩌지? 수습기간을 거치고 계약을 해지하자 그러면 어쩌지? 날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어쩌지? 애초에 날 최종면접에 올린 게 실수였다고 하면 어쩌지...’


나도 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걸. 하지만 그럼에도 폭주하는 1톤 트럭처럼 상상을 멈출 수가 없다. 이러한 상상은 기본적으로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데서 기인하는 것 같다. 나는 나에 대한 평가를 오로지 남에게만 맡겨 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평가하진 않았다. (평가해봤자 자학이 될 게 뻔했다) 그러다 보니 자의식의 많은 부분을 남에게 의지하게 됐다. 상대의 눈빛 하나에, 말투 하나에, 몸짓 하나에. 나는 ‘상대가 내리는 나에 대한 평가’를 상상했다.


피곤하다. 이렇게 사는 것. 지금까지 했던 말도 안 되는 상상들을 되돌아본다.

그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하지만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은 대체로 힘이 없다. 가끔은 누가 나에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래서 요즘은 좋은 사람을 곁에 많이 두려고 노력한다. 너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고, 너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해 주는 사람들 말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은 믿는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 말이 가진 힘을 믿고, 넌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친구가 되고 싶다. 결국 더 성숙해져야 할 일이다.


하지만 갈 길은 멀고도 멀어서, 그저 오늘도 폭주하는 망상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옷을 챙겨 입고 걷기 운동을 나선다. 넌 괜찮은 사람이라고 누군가가 말해주길 바라며.

이전 11화 타고나지 못한 재능에 대하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