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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나 Mar 03. 2021

타고나지 못한 재능에 대하여

재능 없이 싸운다는 것

나는 가끔 왜 단 하나의 재능도 타고나지 못했을까 싶어서 슬프다. 세상엔 저렇게나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많은데 왜 나는 이리 불투명한 인간인 걸까?

누군가는 내게 무언가를 잘한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게 특출한 재능은 없다.


특출한 재능이 없으면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특별함이란 타고난 것에서 결정된다고 혼자 멋대로 생각했었다. 이제는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안다.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특별하다. 하지만 특별한 사람이 모두 재능을 타고 난 건 아니다.


나는 배우 스다 마사키를 좋아한다. 스다 마사키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저런 게 재능이구나 싶다. 그의 연기는 처절하고, 그래서 보는 마음이 더 절절하다. 그는 일본의 떠오르는 20대 남자 배우고, 탄탄대로를 달릴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스다 마사키가 배우이자 가수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매우 흥분했다. 배우보다는 가수 쪽이 더 내 취향이고, 주로 가수를 덕질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 무대에 서 있는 모습이 좋았다. 무대란 현실과 이상의 세계를 가르는 경계선이었다. 나는 아래쪽 현실에서 위쪽 무대-이상의 세계를 올려다보는 일이 늘 좋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스다 마사키의 무대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그의 무대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안쓰러울 정도였다. 음정은 들쑥날쑥했고 한눈에도 생방송에서 긴장해서 덜덜 떠는 게 느껴졌다. 일반인도 아닌 연예인이 무대 위에서 떠는 모습을 보는 건 나조차도 안절부절못하게 되는 경험이었다.


나는 그때 스다의 무대를 보고 생각했다.

'왜 가수를 하려고 하지? 재능이 없어 보이는데.'

연예인도 자신이 일하던 환경이 아니면 긴장하고 떤다는 얘기를 듣긴 했다. 배우의 일과 가수의 일은 확실히 달랐을 것이다. 게다가 주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음악 방송은 더욱 떨렸겠지 싶었다. 그래도 스다 마사키를 좋아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아서, 첫 번째 라이브 콘서트 블루레이를 사서 보았다. 하지만 콘서트에서의 그도 그리 편해 보이지 않았다.


스다 마사키의 아버지가 가수였다고 했던가. 그리 들은 것 같다. 아버지에 대한 동경 같은 걸까. 아무튼 땀범벅으로, 벅찬 호흡으로 노래하는 그를 보며 솔직히 이런 생각을 했다.

'꼭 노래방에서 노는 일반인 같네.'


그러던 내가 그의 노래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은 <まちがいさがし(틀린그림찾기)> 라는 곡이 나왔을 때였다. 무대 위의 스다 마사키는 여전히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을 잔뜩 흘리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노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노래의 호소력이 달랐다. 호흡도 달랐다. 나는 어느새 무대에, 가수 스다 마사키에 몰입해버렸다. 그리고 그의 두 번째 라이브 콘서트 블루레이를 사서 봤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첫 번째 콘서트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등장부터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대단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많이 성장했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후에 발표한 <にじ(무지개)>라는 곡을 들었을 때 나는 결국 울고 말았다.

다정한 가사와 스다 마사키의 기교 없지만 담백하고 진솔한 목소리가 가슴을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스다 마사키의 노래는 정직했다. 그건 지름길이나 요령으로 얼렁뚱땅 순간을 넘기는 게 아닌, 긴장과 두려움, 창피함, 부끄러움에 정면으로 맞서서 돌파한 사람의 올곧은 목소리였다.


'노래에 재능이 없는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결국 노래로 나를 울렸다. 그동안 그는 얼마나 많은 부정적 감정과 부정적 피드백과 마주해야 했을까. 그래서 그 곧게 뻗어가는 목소리를 자꾸만 듣고 싶다. 그건 마치 재능보다 중요한 건 모든 부정적 감정을 넘어서 계속하는 꾸준함이라는 증거 같다. 말하자면 스다 마사키는 재능에 준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는 방법은 꾸준한 노력이라는 걸 몸소 보여준 것이다.


요령 부리지 말자. 빨리 가는 길을 찾지 말자. 요행을 바라지 말자. 올곧게 나아가자. 스다 마사키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이런 소중한 가르침을 누군가에게 전파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을까. 몰라도 괜찮다. 어차피 덕질의 좋은 점은 대상의 장점을 닮고 싶어 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가 앞으로도 꾸준한 노력의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나도 꾸준히 쓰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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