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는 어쩌다 마케팅 역량을 요구받게 되었나
2018년 초, 유희경 시인과의 이야기 자리에 간 적 있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서 진행되는 문학 관련 프로그램이었다. 질의응답 시간에 나는 요즘 출판 편집자가 마케팅 역량도 요구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가 편집자 출신이자 서점 주인인 점을 염두에 두고 질문한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책은 서점에서 잘 팔아볼 테니 편집자는 좋은 책을 만드는 데 집중하면 됩니다.”
마음이 뜨거워지는 말이었다. 나는 그즈음 에디터에게도 마케팅 역량이 조금씩 요구되는 것 같은 분위기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만화 『중쇄를 찍자』가 떠올랐다. 최고의 작품이 나오게끔 헌신하는 편집자와, 세상에 태어난 책을 최선을 다해 알리는 마케터의 팀플레이. 그렇게 좋은 책을 만드는 데 헌신하는 편집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B2B 마케팅팀에서 콘텐츠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에디터 이름을 달고 있지만 마케팅 업무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에디터가 마케팅 역량을 길러야 하는 것에 반감을 가진 내가 어쩌다 이렇게 생각이 바뀐 걸까.
좋은 글과 책이 탄생하기만 해도 두루 읽히던 시절이 있었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도 적었고 독자와 만나는 통로도 한정된 때였다. 좋은 아티클은 신문과 잡지에서, 좋은 책은 서점 매대와 도서관 추천 코너에서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많다. 누구든 만들고 어디서든 퍼뜨린다. 이는 ‘발견의 문제’를 낳았다. 책 『편집자 되는 법』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다. “시절은 이미 초판 2천 부를 찍어서 몇 해 동안 나누어 팔게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 방송이나 온라인 매체에서 구전을 타지 못하면 저명한 저자라도 고전합니다. 내용 좋은 원고에 그저 코를 박고 일해서는 안 되는 시절이 온 것입니다.”
원고에서 코를 뺀 에디터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콘텐츠가 스스로 사람들을 유혹할 수 있도록 곳곳을 치장해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출판 에디터는 표지에 얹을 카피, 카드뉴스, 유튜브 소개, 동네서점 북토크 등을 기본으로 고민한다. 디지털 콘텐츠 에디터는 검색이 잘 될 만한 제목과 후킹한 썸네일, 캡쳐해서 공유하고 싶은 문단 구성, 검색 최적화(SEO) 등을 고민한다.
제품을 시장에 알리고 판매고를 높이는 일은 본래 마케터의 몫이었다. 적절한 광고 채널, 카피, 바이럴 포인트 등을 고민해 고객이 기어코 사게끔 만드는 일. 하지만 요즘 에디터는 이 일의 일부를 자신의 업무 범위로 가져와서 해야 한다. 마케터처럼 사고하는 법을 익히고 콘텐츠 제작 단계에 녹여야 하는 것이다.
나는 커리어를 시작하면서부터 콘텐츠를 잘 알릴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당시 나는 마음맞는 사람들과 독립문예지 『젤리와 만년필』을 만들며 에디터 일에 발을 들였다. 처음 만드는 책이라 기대가 엄청나게 컸다. 우리 기획이 독특하다고 생각했고 창간호 1500부는 단숨에 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장 무서운 줄 모르고 꿈만 컸다. 발견의 문제에 곧바로 부딪혔다.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텀블벅 펀딩을 열었지만 사람들은 우리의 기획이 세상에 나타난지조차 몰랐다. 지인 한 명 한 명 메시지를 보내 펀딩을 부탁했다.
가까스로 펀딩에 성공해 책을 인쇄한 뒤에도 발견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을 계속해야 했다. 카드뉴스를 만들어 페이스북에 광고를 돌렸다. 동네책방 수십 곳에 메일을 보내고, 입고에 성공하면 책방 인스타그램에서 소개해주는지 모니터링했다. 도서전에 나갈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나갔다.
콘텐츠 시장에 발을 들일 때부터 이 정도가 이미 기본인 환경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 혼자 만들고 나 혼자 흡족한 콘텐츠만 만드는 꼴이 되었다. 이중언어를 배우는 아기처럼, 어떻게 하면 좋은 콘텐츠를 만들까 고민해야 할 시간에 잘 알릴 방법도 함께 고민해야 했다.
지금은 에디터에게 마케터의 사고법을 요구하는 일이 업계 표준이 됐다. 에디터 채용 공고에서 마케터의 역량을 요구하는 일이 흔하다. 토스 콘텐츠 매니저, 강남언니 디지털 콘텐츠 에디터 리드의 채용 공고를 함께 살펴보자.
두 채용 공고에서는 SEO 관련 역량을 에디터에게 요구한다. 이는 오랫동안 콘텐츠 마케터의 업무 범위로 여겨져왔다.
SEO(검색 엔진 최적화)는 자사 상품이 구글&네이버 등의 검색엔진에서 가장 잘 노출되게끔 손을 써두는 작업이다. 사용자가 검색할 법한 키워드를 콘텐츠 제목과 본문에 집어넣고 검색 결과 1페이지에서 상단(5위 이내)에 노출되는 것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혼수 냉장고 추천’을 검색하는 사람에게 자사 제품을 소개하는 콘텐츠가 경쟁사의 콘텐츠보다 먼저 노출되도록 작업하는 것이다.
채용 공고에서는 에디터가 직접 해도 된다고 보는 시각이 엿보인다. 콘텐츠를 작성할 때부터 제목과 본문 곳곳에 핵심 키워드를 배치하면 되는 일이라 굳이 에디터와 마케터가 나눠서 할 일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아예 마케터, 에디터를 구분하지 않고 채용하는 현상도 보인다. 피클플러스는 ‘SEO 콘텐츠 마케터(에디터)’를 뽑는다고 채용 공고를 작성했다. 자세한 모집 요강은 마케터를 타깃으로 작성됐지만, 에디터가 관련 업무까지 할 수 있다면 뽑겠다는 취지다. 이 외에도 채용 시장에서는 꼭 SEO가 아니더라도 콘텐츠 기획 역량이 있다면 마케터와 에디터를 가리지 않고 뽑는 곳이 갈수록 눈에 띄고 있다.
뉴닉에서 시사 뉴스레터를 만들 때는 콘텐츠를 쓰는 것만큼 마케터 스타일의 업무도 해야 했다.
시사 뉴스레터를 최대한 오픈하게끔 하기 위해 후킹한 제목을 고민했다.
메일을 열어본 독자가 의도한 페이지로 넘어가게끔 하기 위해 CTA 버튼 문구의 성공 방정식을 찾아내려고 했다.
CTA에 들어가는 링크에는 UTM을 달아서 앱으로 유입되는 지표를 측정했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액션을 실행하고 지표를 통해 성과를 확인 및 개선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시사 콘텐츠 제작에 투입되는 에디터 모두가 해당 업무를 해야 했다. 주니어든 시니어든, 기자 출신이든 매거진 에디터 출신이든 상관없었다. 아예 온보딩 과정에 녹여 입사 직후부터 기본으로 익히게 했다.
업무를 이어가면서 마케터처럼 사고해 글을 쓰고, 콘텐츠의 성과를 측정하는 역량이 앞으로는 에디터에게 더 많이 요구되리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아예 B2B 마케팅 팀의 에디터로 일하면서 마케터가 하는 일을 직접 체화하고 성과도 내는 쪽으로 커리어를 이어가기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앞으로는 에디터-마케터가 아닌 사람도 마케팅 사고법을 배우고 일상생활에 써먹는 일이 활발해지리라고 본다.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수많은 중고 물품 중에 자신의 판매 물품이 더 눈에 띄게끔 사진과 본문을 배치하고, 필요한 경우 일별 예산을 설정해 광고를 돌릴 수 있다. 광고를 돌린 이용자에게는 대시보드가 제공되고 광고 효율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콘텐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다양한 텍스트 크리에이터가 자신의 콘텐츠를 여러 경로로 알리고 있다. 후킹한 이미지와 제목을 배치하는 건 기본이다. 브런치, EO Planet, 뉴닉, 스티비 등 다양한 채널에 콘텐츠를 배포하며 노출량을 최대한 늘리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영상에서는 아프리카TV와 유튜브, 인스타그램, 치지직 등을 통해 이미 굳어진 방식이다.
에디터 채용 시장에는 개인 채널을 운영하며 에디팅과 마케팅 역량을 이미 쌓은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것이다. 미디어 소속으로 경력을 쌓지 않더라도 이런 경험이 있으면 평가에서 우대받을 확률이 높다. 반대로 주니어 에디터는 취업 준비 과정에서 더 많은 스펙을 쌓아야 하겠고, 에디팅 역량 위주로 쌓은 경력직 에디터는 설 자리가 좁아지겠다.
씁쓸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에디터와 마케터가 협업해서 해야 할 일을 한 명이 다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에디터의 평균 급여는 10년 넘게 제자리인데 채용 시장에서는 한 사람의 몫으로 더 많은 역량을 기대한다. 에디터와 마케터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지며 두 채용 시장의 규모 자체가 줄어들 것 같다.
에디터의 본령은 양질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일 텐데 발견의 문제에 시달리는 요즘, 글 쓰는 사람이 좋은 글에만 집중하기에는 앞뒤로 할 일이 너무도 많다.
참고한 책
『편집자 되는 법』, 이옥란, 유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