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기획력, 린 or 워터폴 어떤 방법론이 좋을까?

콘텐츠는 많이 만들어봐야 는다는 관점에서

by 최창근


에디터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 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거나 일하고 싶은 에디터들이 어떤 페인 포인트를 느끼는지 파악할 목적이었다. 이때 ‘에디터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했는데, 에디터들은 ‘기획력’을 꼽았다. 글쓰기, 프로젝트 매니징, 커뮤니케이션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지만, 기획력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명확하다. 기획력이 좋아야 콘텐츠 퀄리티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글쓰기 스킬이 아무리 좋아도 기획의 중심이 안 잡히면 말짱 꽝일 뿐이다.


에디터들에게 자신의 기획을 콘텐츠로 만들어나가는 순서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답변은 대동소이했다. ‘아이데이션 → 기획 → 원고 작성 → 편집 → 디자인 → 완성’ 흐름으로 이어지는 프로세스, 이른바 워터폴(waterfall)이다. 폭포수가 한 계곡에서 다른 계곡으로 이어지듯 업무가 순서대로 진행되는 방법론이다.


워터폴 방법론은 장점이 뚜렷하다. 기획안을 실제 콘텐츠로 ‘구현’하기에 알맞은 프로세스다. 담당 파트와 흐름이 명확히 나뉘어 있어 진행 상황을 확인하기 좋다. 그러기에 책임 소재도 딱딱 나뉘어 있다. 콘텐츠 출시 날짜를 정하고 세부 프로세스를 역산하는 식이라 일정을 관리하기에도 수월하다.


콘텐츠 기획 워터폴 프로세스 예시.png


단점도 있다. 기획력을 ‘빠르게’ 기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기획력은 많이 만들어봐야 느는데, 워터폴 프로세스로 콘텐츠를 만들면 정해진 흐름을 따라야 하고 그만큼의 시간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수준의 시간이 소요된다.

콘텐츠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한다.

완성된 콘텐츠를 세상에 내놓고 이용자와 시장의 반응을 관찰한다.

관찰한 점과 자신의 회고를 더해 개선점을 도출한다.

다음 콘텐츠 기획에 개선점을 반영한다.

해당 기획으로 콘텐츠를 제작하고 완성하여 세상에 내놓은 뒤, 개선점이 실제로 어떤 반응을 일으켰는지 확인한다.


한마디로 콘텐츠 2개 분량을 만드는 사이클을 돌아야 한 단계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는 셈이다. 출판처럼 제작 기간이 긴 장르일수록 시간은 더욱 늘어난다.


나는 출판 에디터로 일할 때 이런 점이 너무 답답했다.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작업물을 손에 쥐는 건 분명 큰 기쁨이기는 했지만, 얼른 기획력을 키워서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충족되지 않았다. 기획안을 실제로 구현하는 과정을 많이 해봐야 하는데 그 속도를 더 올릴 수 없을까, 결국 해결책은 동시에 제작 프로세스를 2~3개 굴리는 수밖에 없는 걸까 고민했다.



린 방법론이 워터폴 방법론을 구원할까?

답답함을 어떻게 해결할지도 모르던 때 우연히 『그로스 해킹』(길벗)이라는 책을 읽었다. 스타트업에서 서비스 만드는 방식 중 하나인 ‘그로스 해킹’을 설명하는 책이었다. 물론 스타트업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니 100%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빠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일하는 곳이라는 점은 알게 됐고, 이해한 정도만 책 만드는 데 적용해도 그간 느낀 한계점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름도 멋졌다. 성장을 해킹해서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니. 그래서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결정했다.


어찌어찌 스타트업에 들어가 ‘린 방법론’이라는 것을 배웠다. 스타트업 운영의 중심이 되는 ‘린 Lean’은 “낭비를 없애거나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서비스 개발 측면에서 이야기하면 기획 단계에서 핵심 기능 정도만 넣은 제품 또는 샘플 페이지를 만들어 시장성을 검증하고 이를 통과해야 제품 개발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완제품을 만들어 시장성을 검증하는 것과는 반대된다. 워터폴 프로세스의 단점을 극복하고, 꿈꾸던 방법을 이제야 찾을 수 있겠다 싶었다.


콘텐츠 린 프로세스.png


지금은 스타트업에서 일한 지 만 6년이 넘었다. 그동안 콘텐츠를 만들며 깨달은 점이 2가지 있다.


첫 번째, 린 방법론은 워터폴 방법론을 완전히 대체하는 개념이 아니다. 동쪽과 서쪽처럼 반대에 있는 개념도 아니다. 담당 포지션이 애초에 다르다. 린 방법론은 기획하는 일에 가깝고 워터폴은 기획을 바탕으로 만드는 일에 가깝다. 린하게 콘텐츠를 기획해도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에는 워터폴 방법론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두 번째, 린 방법론과 워터폴 방법론을 결합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워터폴 방법론만 사용하면 콘텐츠를 다 만들고 세상에 내놓은 뒤에야 기획이 유효했는지 아닌지 검증 가능하다. 하지만 린 프로세스를 활용하면, 기획 단계에서 성공할지 아닐지 알아낼 수 있다. ‘되는 기획안’을 검증하면 이를 채택해 워터폴 방법론으로 제작하면 된다. 이러면 실패할 게 뻔한 기획안에 시간과 인력, 제작비를 투입하지 않아도 되어 비용을 아끼는 효과도 있다.


익숙한 예로 크라우드 펀딩이 있다. 콘텐츠 기획 단계에서 제작비를 모금하는 것으로, 펀딩 상세 페이지에는 완제품을 상상할 수 있는 목업 이미지, 콘텐츠의 목차, 가제 등을 올린다. 목표액을 달성하면 모금액을 받을 수 있고 아니면 한푼도 받을 수 없다.


기획이 뾰족한 프로젝트는 상세 페이지만으로도 모금액을 충분히 달성한다. 반대로 기획에 허술하면 모금액을 채우지 못한다. 자비를 들여 콘텐츠를 세상에 내놓더라도 실패할 확률이 크다는 뜻이다. 린 방법론 측면에서는 펀딩이 실패했을 때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실패할 기획에 제작비가 들어가는 걸 막고, 이를 다른 기회를 탐색할 비용으로 돌릴 수 있어서다.


텀블벅 캡처.png 필자가 과거에 진행했던 텀블벅 프로젝트



린 방법론 기반 기획의 핵심은 고객-문제-해결

크라우드 펀딩은 예시일 뿐 실제 검증하는 요소는 좀 더 세분화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3가지를 검증한다. ①타깃 고객을 찾아냈는지 ②그들이 가진 문제를 제대로 겨냥했는지 ③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적절한 솔루션(콘텐츠)로 해결해줬는가이다. 린 프로세스는 이 3가지를 빠르게 검증하고 이 과정을 통해 기획이 뾰족해진다.


예를 들어 요리책을 기획한다고 해보자. 고물가 시대에 한정된 예산으로 4인 가족 밥상을 어떻게 책임져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까지가 고객 검증에 해당하고, 한정된 예산에 대한 이들의 고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문제 검증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레시피와 식단표를 콘텐츠 구성에 포함하는 것이 실제로 효과적인지 알아내는 게 솔루션 검증에 해당한다.


고객-문제-솔루션 각 요소는 한 번에 검증하는 것이 아니고 순차적으로 검증한다. 단계를 진행하면서 결과에 따라 방향을 틀거나 기획을 폐기한다. 데이터와 가설 수립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하므로 객관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콘텐츠가 완성되고 반응을 보지 않아도 합리적으로 기획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할 수 있는 이유다. 기획력 성장 관점에서 보면, 콘텐츠를 완성하지 않아도 기획을 반복하고 개선점을 찾을 수 있어 속도감 있게 기획력을 성장시킬 수 있다. 출판 에디터로 일할 때 답답함을 해소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그래서 그걸 실제로 어떻게 하는데?’ 궁금할 것이다. 앞으로 연재할 아티클에서 그동안 일하며 배운 것들과 고객-문제-솔루션에 대한 가설을 어떻게 검증하는지를 하나씩 소개하겠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기획안의 각 항목을 어떻게 채우는지도 설명할 예정이다. 기획력을 기르고 콘텐츠를 만드는 왕도는 아니지만 같은 답답함을 느끼던 에디터에게 분명 도움이 되리라 자신한다.




린 콘텐츠 방법론 읽기 전 복습하면 좋을 아티클

: 데이터 드리븐 콘텐츠 시리즈 4편

관찰-기록-패턴발견

가설 검증의 기초

가설의 우선순위 정하기

스타트업 에디터의 정교한 가설문 작성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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