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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 May 18. 2017

불한당, 결국 관계에 대한 고찰

그리고 대체 불가능한 임시완의 현수에 대하여

*스포 스포 스포 스포!




신세계 프리퀄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끝없는 기다림에 지쳐 박훈정 감독에게 원망을 품고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이제 그만 젊은 정청을 내놔라 박 감독) 어떤 한국영화의 기자시사가 끝난 모양인데, ‘신세계의 다음 세대를 보았다’는 리뷰로 가득하던 기사 창. 헐, 내 기억에 신세계에 대적할만한 국내 영화는 개봉 예정 리스트에 없었는데….?라고 생각하고 보니 얼마 전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이라는 영화가 칸에 진출했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괜히 칸에서 부를 리는 없겠지 생각하면서도, 임시완의 아름다운 얼굴만 보러 가보긴 해야겠다 정도로 생각했던 터라 조금 의외였다. 뭐지….? 설마 재밌는 건가….?





어엿한 성인인 주제에 쟈닌한 장면에 심하게 몸서리치는 모자란 사람이라, 청불영화를 보러 갈 때는 평소보다 훨씬 까다롭게 19금 씬을 체크하고 가야 하는 1인으로써 영화 관람 인생 최초로 폭력성 정도를 가늠하지 않고 개봉일에 호기롭게 예매를 하고야 말았다. 아무리 피가 튀겨도 임시완의 얼굴이 다 커버쳐 줄 것이다. 샨멘. 뭐 이런 마음으로.





자, 결론적으로 불한당은 또 다른 새로운 세계의 시작일 뿐 신세계 세대의 막내는 아니었다. 왜일까?












언더커버라고 해서 다 똑같은 영화일 수는 없다. 우리 모두 각자의 바둑이 있는 것처럼.

언더커버. 사전적 정의를 써보자면, ① (한정적) 비밀의 ② 비밀리에 하는 ③ 은밀한 ④ (특히) 스파이 활동에 종사하는 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즉, ‘어딘가’에 ‘신분을 속이고’ ‘몰래’ 잠입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게 정말 매력적인 소재이긴 한가보다. 수많은 감독들이 계속해서 소재로 써먹는 걸 보면 말이다. 아, 생각해보니 나의 ‘아가씨’(2016)도 언더커버였네.(갑자기 태리 보고 싶다..) 물론 이런 소재를 쓰는 이유는, 저 언더커버가 결국 끝까지 가지 못하기 때문에 그 파국에서 오는 재미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겠지. 재밌지 않은가, 누군가의 철저한 계획이 더 철저하게 망가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영화 불한당은 경찰 신분의 조현수(임시완 분)가 마약을 취급하는 조폭 우두머리 한재호(설경구 분)를 감기 위하여 교도소에 위장 잠입하여 그와의 관계를 쌓아가는 이야기이다. 기타 부수적인(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인물 간의 얽히고설킨 관계/배신/음모도 있긴 하지만, 주인공 둘의 관계에만 시선이 너무 집중되는 것에 다소 부담감을 느낀 감독의 ‘조치’ 정도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혹은 러닝타임의 여백 메우기 정도?





뭐 여튼, 일부러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극장으로 향한 터라, 조현수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약간 놀라긴 했다. 아, 이래서 신세계 얘기가 나왔던 거구나 이해되기도 하고. 그런 고로, 그때부터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이른바 ‘야마씬’까지는 약간 실망하기도 했다. ‘신분을 계속 숨기고 있다가 마지막에 밝혀졌는데, 사실 재호도 알고 있었다 이런 건가. 아니 그럼 신세계에 대적하는 게 아니고 걍 짝퉁 이잖아.’라고 생각하며. (당연히, 그랬다면 이 글도 없었을 것이다.)





그 런 데. 뚜둥. 영화의 약 3분의 1 정도 되는 지점에서 주인공 현수는 자신의 패를 보란 듯이 내보이고 던져버린다. 그 순간 완전히 변해버린 영화 전체의 공기와 주인공들 간의 관계 역전을 바라보며 이건 조폭경찰영화가 아니라 관계와 애정에 대한 영화구나 홀로 정의를 내렸다. 그들의 직업과, 영화의 소재와, 기계적으로 나뉘는 영화의 장르가 이 영화를 단순하고 빈약하게 분류할 뿐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었다.








우리는 종종, 아니 꽤 자주, 이른 판단을 내려버리고 마음 편해지길 바란다. 사람이란, 자신의 카테고리 안에 명확하게 분류되지 않는 존재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경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한당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 된다. 마음 편한(?) 스릴러를 예상하고 극장에 들어선 관객들에겐 원치 않은 급습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장르만 확인하고 이 영화의 정체성을 판단 내렸던 이들에게는 관점을 넓힐 수 있는 꽤 괜찮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조금은 더 넓은 시각으로(=조폭느와르라는 식상한 틀에 가두지 말고) 주인공 두 사람만의 바둑을 관전해야 할 필요성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조폭도, 경찰도 원래는 각각 한 명의 ‘사람’이라는 걸 인지해나가면서 말이다.







임시완이 1 Pick인 이유

보통의 상업영화에서 캐스팅을 진행할 때, 인지도나 경력 면에서 우위를 지니는 배우가 가장 먼저 캐스팅되기 마련이다. 투자 문제 및 다른 배역들의 캐스팅 문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배우 임시완이 설경구보다 먼저 현수 역할에 낙점되었다고 하기에 조금 이상하다 싶었다. 일반적이라면 연장자이자 화려한 경력을 기반으로, 영화판에서 인지도가 더 높은 설경구가 먼저 캐스팅되었어야 하는 게 맞으니까.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 영화는 저런 걸 기준으로 배우 캐스팅을 한 게 아니었다. 바로 첫 번째 Pick의 기준은, ‘대체 불가능한’이었다.







현수는 생각보다 상당히 까다로운 인물이다. 성인 남성이지만 미성년 같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작전에 믿고 투입할 수 있을 정도로 강단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미성년’이란 실제 나이 기준이라기보다는, 엄연한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재호에게 계속해서 감화되어가는 느낌을 내뿜어야 하고 짧은 시간 동안 ‘성장기’를 보여줄 수 있는 분위기와 연기여야 한다는 뜻이다. 마치 눈 뜨고 처음 본 사람을 엄마라고 믿고 따라다니는 사슴 같은 거 말이다. (물론 비주얼도 빠질 수 없다.) 




이런 말도 안 되게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해 보면, 임시완 이외에 선택지가 있었을까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촬영 당시 그가 20대였음을 생각해보면 이건 거의 퍼펙트게임이다. 개인적으로, 20대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고유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영화 속 현수는 반드시 물리적으로도 20대여야만 했기 때문에 그 시기에 이 영화를 택한 배우와 그를 Pick해준 감독 모두에게 적확한 선택이었다고 소리 높여 외치고 싶다. 현수가 임시완이 아니었다면, 시종 피 튀기는 이 영화 전체를 감도는 처연미는 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무의식적으로 짚어나가는 과정이 하나 있는데, ‘과연 저 역할에는 저 배우여야만 하는가?’이다. 이는 배우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굉장히 섬뜩한 기준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작품의 주인공들을 떠올려 봤을 때 저 기준을 확실히 넘는 작품이 몇 개 안 된다는 걸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말도 안 되게 까다롭고 주관적이며 내 맘대로인 허들을 임시완이라는 선수가 가뿐히 뛰어넘었다.







결국 관계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

임시완과 설경구의 연기를 1:1로 비교하는 것은 솔직히 말해 ‘페어플레이’ 정신에서 다소 어긋나긴 하지만, 경륜과 살아온 세월 등을 모두 내려놓고 탁 까놓고 얘기하자면 당연히 설경구의 에너지가 눈에 띈다. 그런데, 그 에너지의 크기가 현수와 거진 비슷비슷해지는 지점이 한 군데 있었는데 바로 앞서 말했던 ‘야마씬’.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모든 걸 놓고 싶어 진 현수에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 주고 엄마의 마지막 길을 볼 수 있게 해준 재호. 그에게 자신의 신분을 고백하는 그 씬(심지어 영화 전개상 이른 시점)은 예상치 못한 전개였기에 놀라움도 있었지만, 서사의 의외성을 뛰어넘는 현수이자 임시완의 진정성 같은 무언가가 스크린 뒤에서부터 내게 와르르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 당시 재호의 심정은 아직 현수를 두고 간을 보고 있는 상태였고 본인이 역으로 현수를 감아야만 하는 상황이었기에 머리가 미친 듯이 돌아가고 있었을 것이 뻔하다. 그렇게 상대를 이겨버리기 위해 빠른 속도로 돌아가던 톱니바퀴가 상대의 맥 빠지는 역공으로 인해 완전히 정지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 현수 얼굴만 봐도 말문은 막힐 것이다...







부모에게도 버려진 사람에게 있어서, 태어나 처음 받아보는 타인의 진심은 어떤 의미였을까? 계산이 필요 없을 만큼 어이없이 솔직한 진심과 마주했을 때, 이에 대응하는 방법은 본 적도, 배운 적도 없는 우리의 한재호는 속수무책으로 무장해제되어버리고 만다. 주인공 간의 감정적 밀당(?)을 적당한 밸런스를 잡아가며 보여주던 영화가, 정확히 이 지점 이후부터 둘의 관계 역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기 시작하는데 결국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 관계성은 변하지 않는다.





아, 물론 재호가 아니라 다른 인물(이 영화에 한해서는 직업과 인물을 연결하고 싶지 않음)이었다면 현수는 고백의 순간 버얼써 죽고 이 세상과 결별을 고했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던 건 이 영화는 조폭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재호가 조폭이라서 진행되는 영화가 아니고(사실 이 설명으로 설명되는 씬은 단 하나도 없다.) 그냥 그 사람이 한재호여서 이 영화가 진행된 것일 뿐임을. 그러니 이 영화는 조폭느와르가 아니라 사람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고, 선택에 관한 고찰이다.  





감히 생각해 보건데,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처음으로 진심을 보여준 상대를 과연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족을 붙이자면, 이 영화를 찍으면서 브로맨스 코드가 있는지조차 몰랐다는 주연배우 임시완의 인터뷰를 보고 (감독에 의해 철저히 의도된 것으로 추정됨), ‘그래서 이 영화가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끝까지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이구나’하며 변감독의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디렉팅에 감탄했다. 주연배우 두 명 모두 저런 코드를 염두에 두고 연기했다면 분명히 밸런스는 깨졌을 것이고 딱 지금 결과물 정도의 작품 전체의 긴장감은 나오지 않았을 것 같다.










누가 봐도 대규모 자본이 유입된 상업-오락 영화이면서 뭔가 의미를 끼얹으려고 했을 때 발생하는 참사를 우리는 영화 더킹을 보면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지금 생각해도 제작의도를 알 수 없는 그 영화에서는,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실제 뉴스 장면까지 나왔고 차마 눈을 가릴 틈도 없이 웃고 있는 수인번호 503을 그 큰 스크린 정면으로 목도하게 만들었다. 진짜 이러려고 돈 내고 극장 왔나 자괴감 들어.





적어도 영화 ‘불한당’은 관객에게 저런 자괴감은 느끼게 하지 않는다. 상업 오락 영화답게 본분을 충분히 다했고 그중 큰 몫을 변성현 감독의 정말 쓸데없이(?) 스타일리시하고 예쁜 화면이 담당한다. 알다시피 한국 영화에서는 적당히 스타일리시하기가 정말 어렵지 않은가. 각 잡고 스타일만 찾다 보면 거의 백 퍼센트 과잉 연출이 되어 인터넷상에서 놀림감이 되고, 스타일을 포기하면 촌스러운 영화가 되곤 한다. (내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스따일 있는 영화는 ‘비밀은 없다’이다. 정말 따라갈 수가 없다.) 따라서 놀림감이 되느니 ‘스따일’ 정도는 과감히 포기하고 욕이라도 먹지 않기 위해 노멀을 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변감독은 이 영화에서 과감하게 ‘질렀고’, 적어도 내게는 ‘먹혔다.’







마지막으로.

대외적으로는 완벽한 브로맨스이자, 감독의 표현에 따르자면 퀴어영화로의 해석이 매우 명백한 이런 영화는 대기업들의 배급을 받아 영화관에 척척 걸리지만, 동성애자 군인에게는 실형을 선고하는 나라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좀 이상하다.







(+) 5/30 추가 

음.. 전혀 예상치 못한 스코어를 올리고 있는 불한당을 보고 있자니 여러모로 머리가 복잡. 주관적으로 혹은 객관적으로도 두 주연배우가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이자 최선의 영화이며 배역인데. 또 이렇게 비운의 명작이 묻히는 것인가. 이거 뭐 어디 광장에 나가서 이 영화 안 보면 후회한다고 소리 지를 수도 없고.


영화 재밌고 연출 신선&훌륭하며 서사가 나름 고급지고 몇 년 만에 설경구 배우를 똑바로 마주보게 됐을 정도로 연기가 좋습니다. 무엇보다 임시완이 잘생겼습니다.

(=내리기 전에 좀 보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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