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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 Oct 11. 2024

대도시의 사랑법, 끝과 끝의 이야기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를



이제 더 볼 영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정확히 말하면, 볼만한 영화가 더 이상 없다고.



한 때는, 극장에서 개봉하는 모든 영화는 물론이고 각종 영화제까지 찾아다니며 국내 개봉이 불가능한 영화들까지 모조리 다 보고 다니던 때도 있었다. 내가 모르는 세계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세상, 앞으로도 겪기 어려운 것들을 단 돈 만원에 경험할 수 있는 그 짜릿함이 좋았다. (근데 이제 만 원이 아니지만..) 내가 머리로만 생각했던 걸 스크린에서 그대로, 혹은 상상보다 더 뛰어나게 구현해 내는 배우들이 좋았다. 영화를 찍을수록 연기가 늘어가는 배우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너무 폭식한 탓인지, 어느 순간부터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영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재도, 연기도 다 식상해져서 극장 가는 게 전처럼 즐겁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실로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어 손가락이 드릉드릉 거리는 영화를 만났다. 진짜 아~무 생각 없이 간 극장에서 시간이 남아서 고른 가벼운 영화 한 편이었는데 이렇게 내 시간을 쪼개서 글을 쓰게 만드는 영화를 만나다니.


어쩌면 영화도 초콜렛박스 같은 것 아닐까. 무엇을 고르게 될지 도무지 알 수 없으니까.











* 영화의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도시의 사랑법‘ 원작 책수작이라는 소문은 지난 몇 년간 아주 많이 듣긴 했는데, 정작 손이 가지 않아 아직 읽지 않고 있었다. 평소 자기 개발서보다는 차라리 소설을 읽는 편이긴 한데, 또 이 고질적인 ‘아 질려려’ 병에 걸려버려서 최근 몇 년 간 소설은 아예 끊었었기 때문이다.


다방면으로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서인지, 질리기도 잘 질리고 또다시 돌아오기도 잘하는 이 놈의 성질머리.


어쨌든 유명한 책인데도 불구하고 아직 내 책장에 들여놓지 않았던 이유에 대한 변은 여기까지 늘어놓기로 하고, 이 변덕스러운 성격의 나를 다시 글쓰기로 돌아오게 만든 영화에 대해 서술해 보자면.



영화는 ‘흥수’와 ‘재희’의 스무 살 대학생 시절부터 시작한다. 배경지식이 아예 없이 그냥 단순 로코인 줄 알고 영화관에 간 사람들은 좀 놀라겠지만, ‘흥수’는 클로짓 게이다. 아직 커밍아웃을 할 생각도, 용기도 없는 미성숙한 아기게이. ‘재희’는 ‘암튼 좀 유별난 애‘이다. 새터 시작부터 스쿠터로 모든 동기/선후배의 이목을 끈 재희는(물론 그녀의 훌륭한 외모가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겠지만) 그 정도 인기를 적당히 누리면서 살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나아간다. ’적당히‘에서 멈출 수 없는 애니까, 강의실에서 가슴을 까고 클럽을 학교보다 자주 가고 술을 물보다 많이 마신다.


사랑이 두려운 흥수와 사랑이 없는 삶이 두려운 재희, 언뜻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은 이 크디큰 대도시에서 함께 살아가며 누구보다 끈끈한 우정을 다진다.





끝과 끝에 있는 사람들


영화 속 두 주인공을 보면서, 정말 ‘끝과 끝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애의 끝(재희)과 동성애의 끝(흥수). 또는 사랑밖엔 난 몰라(재희)와 사랑, 그 까짓게 뭔데(흥수) 정도? 혹은 유채색(재희)과 무채색(흥수)의 만남이랄까.


재희는 평소에 내가 생각만 했던 모든 것을 그대로 실현해 준다. 나도 클럽을 정말 질리도록 더 다니고 싶었고, 마실 수 있을 때 술을 원 없이 마셔보고 싶었으며,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동네방네 소리도 지르고 싶었고, 새빨간 컨버스도 한 번 신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남자들끼리만 가지던 담배타임에 난입해서 나도 좀 끼워달라고 이죽거리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못했다. 영화를 보면서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아마 답은 이거였던 것 같다.


 '튀고 싶지 않아서'.


난 그냥 일반적인, 그러니까 퍼센티지로 따지자면 98% 정도 되는 다수에 들어가고 싶었던 것 같다. 클럽에서 더 놀고 싶고 더 고주망태가 되고 싶었지만, 같이 사는 부모님 눈치를 봤었고, 남친에게 차이고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도 지르고 친구에게 진상도 부리고 싶었지만 친구들 눈치를 봤었고, 한창 유행하던 빨간 컨버스도 사고 싶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내 발만 볼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마지막으로 남자들이 온갖 중요한 얘기는 자기들끼리 다 한다던 바로 그 옥상 담타에 나도 뛰어들고 싶었지만, 그렇게 못했다.

나도 상사에게 말 같잖은 소리 듣고 나면 정말 한 대 피는 게 절실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못했다.



다수가 되고 싶어서, 다수의 눈치를 봤던 거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참 아이러니 하다. 그 ‘다수’에 낀다고 해서 누가 나한테 ‘정상인 임명장’ 하나 주는 것도 아닌데, 참 남의 눈치 많이 보고 살았다 싶다.

 


이런 재희에 비해 흥수는 ‘남’에 의해 좌우되는 인생을 살아간다. 흥수는 상술한 나보다도 남 눈치를 많이 보고 살아서 자신의 사랑도 눈치를 본다.(물론 성소수자임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지만, 자신의 정체성의 비밀을 지키는 게 사랑보다 우위에 있다. 글 쓰는 걸 무엇보다 좋아하고 심지어 재능도 있지만 확실한 밥벌이가 더 중요하다.    



이렇게 아예 양 극단을 달리는 둘이, 서로의 색깔이 너무 명확한 이 둘이 현실과 타협해 대도시의 룰을 따를 듯하다가, 결국엔 원래 자신들의 자리인 양 끝점으로 돌아가는 엔딩이 이 영화에서 가장 좋은 점이었다.


재희는 버진로드를 빨간 컨버스를 신고 걸으면서, 흥수는 밥벌이 안 되는 불명확한 꿈을 좇으면서.



우리 모두 대도시에 적응하며 살기 위해 조금씩 나를 버리고 무채색으로 살아가는데,

이런 나를, 그리고 우리를 어루만져주는 엔딩 같아서, 좋았다.




부디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를


영화 속 에피소드 중에 재희가 변호사 남자친구 눈치를 보느라, 재희답지 못하게 지내는 장면이 나온다. 와인 한 잔 더 하고 싶은데, 내일 출근하니 그만 마시라고 하고. 아직 결혼은 아닌 것 같은데, 제발 결혼하자고 하고. 흥수랑 계속 살고 싶은데, 당장 그 집에서 나오라고 하고.


아, 또다시 떠오르는 나의 흑역사.


때는 십여 년 전, 나를 나로서 존중해 주기보다는 본인 마음에 드는 나로 만들고 싶어 하던 사람과 만났던 적이 있다. 그는 내 메신저 프사를 다른 남자들이 보는 게 싫다며(?) 바꾸라고 하였고, 내 옷도 맘에 안 든다며 앞으로 안 입었으면 좋겠다고 했었지. 그때는 그가 너무 좋아서 그냥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었다. 별 거 아닌데 굳이 싸우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것 또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말도 안 되는 일인데, 그땐 그랬다. 내 프로필 사진을 그의 취향으로 바꾸고, 옷도 그가 예쁘다고 하는 스타일을 입었었다. 휴.. 프사는 지금 생각해도 이쁘고 괜찮았고, 내 털옷이 뭐 어때서 ㅅㅂ….


비슷한 남자에게 메어있는 재희를 보며 그때 생각이 많이 났고, ‘그래 헤어지자 시발.’이라고 말할 줄 아는 여자라서 그 또한 나보다 낫다 싶었다.



뭐 굳이 해야 할 경험은 아니지만, 이미 겪었다면 그건 그거대로 인생에서 한 번은 있어도 괜찮은 일이긴 하다. 저 경험 이후, 나는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게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그 무엇보다 우선인 걸 알았으며, 재희처럼 나를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영화의 초반부, 재희에게 게이인걸 들킨 흥수가 약점 잡았냐고 하자 재희가 흥수에게, ‘네가 너인 게 어떻게 네 약점이 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 내가 나인 게 어떻게 내 약점이 될 수 있겠는가. 나는 이 대사가 좀 더 후반부에 나올 줄 알았는데 아예 영화 초반부에 나와서 내심 놀람과 동시에 관객에게 선전포고 하고 시작하는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의 야마는 여기야! 이게 제일 중요한 대사야!’



얼핏 성소수자에게만 해당하는 말 같지만, 흥수도 재희에게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임을.

‘재희야 네가 너인 게 어떻게 네 약점이 될 수 있겠니.’


다음 날 중요한 회의가 있어도 오늘 와인 한 잔 더 하고 싶고, 이제 막 시작한 일이 재밌어 결혼은 생각이 없고, 제일 친한 게이친구랑 살고 싶은 재희인데. 그게 어떻게 약점이 되랴.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다 보니 떠오른 생각인데, 아마도 이게 이 영화의 주제인 것 같다.

‘부디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를. 제발.‘










그리고.


1. 영화의 내용이나 배우의 연기도 좋지만, 두 인물의 패션으로 캐릭터를 표현한 것도 참 좋았다.

재희는 항상 튀는 옷차림, 다양한 색을 조합한 인테리어, 누가 봐도 눈에 띄는 헤어스타일. 흥수는 무채색의 옷차림(실제로 거의 네이비/블랙만 입은 것 같은데…?), 단정한 헤어.

이 둘이 어깨동무하고 어울릴 때, 나도 그 사이에 끼고 싶었다. 이도 저도 아닌 그냥 어중간한 스타일로.



2. 나름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했던 흥수의 축가 씬. 분명히 즐거우라고 넣은 씬일 텐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무슨 내 전남친 결혼식인 줄.

그 장면 보면서 그렇게 눈물 콧물 펑펑 흘린 건 아마도 나뿐일 거라고 자조 중.

흥수야! 앞으로 그렇게 살아라 그냥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너 ㅈ대로 살아라 흥수야 인생은 짧다



3. 요즘 MZ는 정말 영화 하나 보는 시간도 참지 못 하고 핸드폰 확인하는 거 실화입니까. 이 정도면 진짜 지겨운 구간 없는 귀한 영화인데 그 와중에 핸드폰 확인해서 딥빡이…


내가 재희였으면 소리 한 번 질렀을 텐데, 난 또 못했다. 사람들 눈치 보느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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