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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 Jun 22. 2017

박열, 이준익 감독님 전상서

동주와 박열, 몽규와 가네코



이준익 감독님,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영화인 라디오스타를 만들어주신 감독님. 오늘은 감독님의 신작 <박열>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이 있어서 펜을.. 아니 키보드를 듭니다. 아, 너무 긴장하진 마세요. 천하제일 제훈 얼굴을 왜 그렇게 만들어 놓으신 건지 오늘은 묻지 않을 거니까요. 그래요.. 그의 낯선 비주얼이 129분 간 거대한 스크린을 꽉 채웠다고 해서, 볼 때마다 헉!! 했다고 해서, 우리 제훈이 안 잘생겨지는 건 아니니까요. 뭐, 그래요..




괜히 한 번 올려보는 원래의 참 제훈.



음, 따지지 않는다고 해놓고 뭔가 할 말을 다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마세요. 그저 기분 탓이니까요. 찡긋.



자 그럼, 이제 제 질문 좀 받아주세요. 제발요.








다른 듯 같은 동주와 박열, 몽규와 가네코.

사실 감독님께서 ‘독립운동사 시리즈를 만들겠다!’,‘이준익 유니버스의 시작이다!(…)’ 뭐 이런 거대한 포부를 밝히신 것도 아니니 두 영화를 별도로 보는 게 맞겠지만 감독님의 작품세계를 매우 사랑하는 저로써는 그렇게 쿨해지기가 쉽지 않네요. 전작(=동주)의 여운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채 박열을 맞이 했더니,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두 작품의 우주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 졌어요.





우선 제가 느낀 두 작품의 다른 점은 인물을 바라보는 카메라 앵글 너머 감독님의 시선입니다. 동주도, 주연배우 두 명의 연기에 거의 대부분의 비중을 두고 촬영된 영화가 맞긴 하지만 인물의 단독 샷을 인위적으로 계속해서 삽입한 장면은 없었던 것 같은데요. 그런데 이번 영화 박열에서는 동주뿐 아니라 감독님의 전작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연출이 나오더라고요. 처음에는 악역들의 우스운 행동을 꼬집어 표현하기 위해 한 두 번 사용하신 줄 알았는데, 이후에도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로 얼굴 풀샷이 사용된 걸 알 수 있었습니다.




혹시, 최근 들어 캐릭터의 특징과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또다시 연구 중이신 건지, 혹은 박열만큼은 전체와의 조화보다는 인물 각각에 더 집중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셨던 건지 궁금합니다. 만약 후자라면, 성공하신 것 같네요. 배우들의 연기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이 스냅샷으로 한 장씩 찍혀 제 머리 속에 남아있거든요. (동주는 까만 밤하늘에 별이 되어 제 마음에 박혀있고요.)







솔직히 말해서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는 제작비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박열도 타 상업영화에 비하면 저예산이지만요.) 동주는 초가집 냄새가 나서 좋은 영화였고 배경이 비어서 더 아름다운 작품이었지요. 영화 전체에 흐르던 서정적인 분위기와 처연함은, 자본이 투입되면 될수록 더 퇴색되었을 거라는 강한 믿음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솔직히 처음이었어요, 돈으로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제대로 깨달은 건. 오히려 돈이 더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의미가 퇴색되는 경우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반면, 박열은 확실히 등장인물도 많고 배경도 꽉꽉 차고 스케일도 있고, 소품도 눈에 들어오고. 또 그건 그거 나름대로 좋더라고요. 배경이 일본인 데다가 지진도 일어나야 하고 고증도 완벽하게 진행했어야 됐을 테니, 당연한 선택이었겠지요. 나름대로 눈도 즐거운 관람을 했고, 역시 사람은 쓸 때 쓰고 아낄 때 아낄 줄 알아야 한다는 다소 쓸데없는 결론을 얻게 되었답니다.  






그럼, 감독님께서도 충분히 예상하고 계실 두 영화의 같은 점을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감독님 전상서를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동주는 시인 윤동주의 이야기이지만, 그의 영혼의 친구 송몽규의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박열 또한, 급진적 무정부주의자 박열의 이야기이지만, 그의 영혼으로 맺어진 연인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이지요. 동주 때 충분히 겪어봤음에도 그 새 잊고 살다가, 박열을 끝까지 보고 나서야 이걸 또 깨달아버리고 말았어요. 감독님은 세상 사람들의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라, 자신만의 스포트라이트를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걸요.




개인적으로 영화 라디오 스타의 주인공은 스타 최곤이 아닌 매니저 민수형이고, 동주의 주인공은 우리 대부분 몰랐던 송몽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박열의 주인공 또한 그의 동지인 가네코 후미코, ‘문자’이더군요. 의도하신 건지 아닌지에 대한 물음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 같고, 단지 제가 궁금한 것은, 모두가 주목하는 ‘별’이 아니라 ‘별’을 밝혀주는 ‘어둠’에 집중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요? 또, 앞으로도 핀 조명이 떨어지는 인물이 아니라 그 핀 조명을 들고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실 건지도 궁금합니다. 진심으로 이 질문만은 답을 듣고 싶네요.



아, 그런 생각도 한 번 해봤습니다. 동주네와 박열네가 동시대에 살았더라면, 그들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요. 분명 서로 또라이라고 부르며 많이 싸웠을 거 같긴 한데, 그래도 결국 동지가 되었을 거 같더라고요. 아, 아마 박열은 이랬을 거 같아요. ‘이런, 나보다 춘추가 두어 살 형들이시네. 허나 우리는 동지이니 말은 놓겠네.’

 

 

 





최희서 배우를, 이럴 줄 알고 뽑으신 건가요?

삶에 너무 깊게 들어가는 사람은
일찍 죽는다지 않나.



영화 속 박열을 돕는 일본인 변호사가 한 말인데, (워딩이 정확하진 않습니다.) 명색이 n년간 영화를 사랑한 사람으로서 동물적인 느낌이 오더라고요. ‘이 영화에서 누군가가 먼저 죽는다면 그게 주인공이구나. 왜냐면 그 사람이 삶에 더 깊게 빠진 사람이니까.’ 라구요. 그냥 영화를 좀 더 재미있게 보는 저만의 방법이랄까, 별 뜻 없는 ‘생각하기 놀이’입니다만 이번엔 좀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을 스크린에 나오는 최희서 배우를 보면서 하게 되었습니다.




동주에서 처음 본 배우 최희서는 저에겐 그냥 ‘일본어가 조금 되는 단아한 여자 배우’ 정도였습니다. 마치 영화 ‘전설의 주먹’에 나온 박정민을 보고 ‘진짜 도장에서 데려온 친군가?’ 정도로 생각했던 것처럼요. 아예 처음 본 배우가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 혜성처럼 등장해 호연을 선보여서 화제가 되는 일은 종종 있지요. 그런데 두 번, 세 번 봤던 ‘원래 아는’ 얼굴이 갑자기 관객에게 감동을 주기란 이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면 우리들에겐 이미 ‘아는 얼굴’에 대한 선입견이 있고 그런 첫인상을 바꾸는 건 다시 시작하는 것보다 더 힘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박정민의 송몽규를 볼 때와 마찬가지로, 최희서의 가네코 후미코를 보며 배우 자체에 대한 경외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연기 자체도 물론 테크닉적으로 훌륭했습니다만,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 그 열정이라는 게, 눈에 보이지도 않고 실체도 없는 그게, 배우의 몸을 뚫고 카메라를 뚫고 스크린까지 넘어서 객석에 앉아있던 제 가슴에 와서 거대한 울림과 함께 부딪혔습니다. 보통의 영화들에서 주인공의 연인은 그냥 ‘여자’ 일 때가 많지요. 주인공이 힘들어하면 위로해주고 슬퍼하면 같이 울어주는 그런 ‘여자’ 말입니다. 저도 영화를 보기 전 최희서 배우의 역할이 그런 ‘보조역할’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녀’가 없이는 박열도 없었던 거고 그녀는 여자이기보다는 그의 동지이자 인생의 동반자더라고요. 거기에 비극적인 사연까지 가진, 처참하도록 입체적인 삶을 살아온 일본인 여인을, 도대체 어떻게 이 배우에게 맡길 생각을 하셨으며, 이렇게 완벽하게 소화할 줄 알고 계셨던 건가요?



저는 그녀가 연기하는 가네코를 보면서 머리 털나고 처음으로, 식민지를 지배하는 일본의 여인이 되어보는 상상을 했습니다. 나라면? 내 나라의 식민지 국민을 위해 죽을 수도 있을까? 과연 나라면, 내 남자와 함께 나에게도 사형을 내려달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을까? 나라면, 조선으로 팔려가는 그날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 않고 저리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었을까?





감독님. 저는 법정에 처음 들어서던 그녀의 모습을 보자마자 이번 신인여우상은 그녀의 것이겠구나 직감했는데, 감독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하나 덧붙여 묻자면, 동주의 박정민 그리고 박열의 최희서 같은 배우들이 자신의 영화 속에서 그들의 잠재력을 갑자기 최대로 폭발시키는걸 실시간으로 현장에서 지켜보는 기분은 도대체 어떤 건가요? 네? 대답을 좀 해보세요, 이 세상 부러운 사람아.









‘이제훈의 박열’에 대한 소회

솔직히, 저에게는 배우 이제훈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연기는 아니었습니다.(단호박) 앞으로 이 배우가 어떤 연기를 보여줘도 파수꾼의 기태를 제 마음과 머릿속에서 밀어낸다는 건 어려울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고, 파수꾼 속에서 연기하는 이제훈을 제 마음에 너무 깊게 새긴 탓도 있겠지요.




뭐가 어찌 됐건, 그의 필모 최고의 연기라고 말하기엔 여러모로 망설여집니다만 갑자기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영화라는 대중매체가 제 아무리 '오롯이 관객의 것'이라곤 하지만, 가끔 '배우의 것'일 때도 있는 것 아닌가 하고요. 이 '배우의 것'이라는 시각으로 봤을 때는 이제훈 배우에게 최고의 작품은 아니어도 세 손가락 안에는 드는 작품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 싶은 다소 이상한 생각이, 들어버린 거예요.




그러다, 두 번째로 든 이상한 생각은 배우가 ‘인생 연기를 보여주겠다’는 목표만을 두고 작품을 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흔히들 말하는 ‘딱 떨어지는 정확한 연기’에 앞서, 다른 더 큰 목표지점이 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 혹은 더 큰 시야가 제 안에 생겼어요. 정말, 이상한 생각이죠?




그래서 감독님께 묻습니다. 이제훈 배우와 박열을 하기로 마음먹으셨을 때,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요. 아니, 이렇게 써놓고 보니 꼭 마치 이제훈 배우가 연기를 '못한 것 같이' 보이는데 그런 얘기는 절대 아니고요.




제가 영화 속 주인공들의 연기를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눈물을 얼마나 잘 흘리는지 집중을 얼마나 잘하는지가 아니고 '대체 불가능한'이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물론 한 영화의 모든 주인공들이 이 기준을 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손에 꼽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감독님의 바로 전작과, 그 이전작과, 제가 가장 사랑하는 한국영화 한 편은 이 기준을 완벽히 만족시켰네요. 세상에.) 그럼에도 감독님에 대한 기대치가 워낙 높은 관계로, 두 주인공 중 한 명만 제 기준을 넘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에 대해 여쭤보고 싶은 거랍니다. 감독님에게는 그가 박열에 ‘대체 불가능한’ 배우였던 건지, 아니면 저와는 다른 기준이 있으신 건지요.




아, 그렇다고 '그동안은 그냥 얻어걸린 거야~' 이러시진 말고요.... 흑흑.










참, 오늘 정말 감명 깊은 글귀를 만나고 메모까지 해두었는데 하필 박열을 보게 되다니. 정말 운명이란 이런 건가 봅니다. 그 글귀는 이러합니다.  



사람이란 거의 다 이상하다.
나와 맞는 이상함을 좋아할 뿐이다.
매력을 느낀 사람의 이상함을
눈감아줄 뿐이고.



감독님이 보시기에, 이 사랑스러운 커플의 '괴짜력'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해줄 말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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