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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행성 Sep 27. 2024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아기를 낳으면 낳자마자 모성애가 샘솟을 줄 알았는데, 키우면서 제대로 사랑에 푹 빠지는 순간들은 이후에 따로 있었던 것 같다.

어젠 멘토링 받던 아이가 나더러 "살면서 제일 돌아가고 싶은 행복한 순간" 이 언제였냐고 묻는데, 아무 지체 없이 사진 속 저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좀 당황스러웠음. 저 때를 내 뇌가,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맙소사 ㅎ 진짜로??

아이가 80일쯤 됐을 때다.
실은 체력적으로 매우 매우 힘들었을 때였다. 출산휴가를 다 못 쓰고, 회사에서 두 달만에 SOS 호출해서 일도 할 때임. 낮에는 그래도 봐주시는 분들이 계신데, 퇴근하고 9시가 좀 넘으면 남편 포함 모든 가족들이 자 이제 네 차례다 하는 식으로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그 때부터 아이는 온전히 내 몫. 밤새 안 자고 보채는 아이와 오롯이 적막 속에 남겨진 그 시간들이 참 외로웠다. 예민하고 불안이 높기로 유명한 아들램. 성격은 또 어찌나 급한지 배고플 때 몇 초 안에 타다줘야 하는데 그것도 다 내가 할 일.

낮에는 일하고... 밤마다 얘가 이러니까. 너무 수면 부족이 심해서 얘 우유 주다가도 몇 초씩 깜빡 깜빡 졸면서 그 몇 초 사이에 꿈도 꾸고 그렇게 되더라.

얘 어릴때 등 센서는 또 좀 심해? 아기 침대 샀는데 거기서 한 번도 못 재웠다 ㅋㅋㅋㅋ 초우량아여서 100일에 이미 10키로였는데 6개월 될 때까지 배 위에서 재웠음. 매일 매일 폭삭 늙는 느낌이었음. 엄마 되긴 정말 힘들구나...

잠은 또 어찌나 안 자는지.. 통잠도 5살 되어서 잤다. 밤에 한 번 재우려면 업고 매일밤 40분 넘게 동네를 돌았다.

이렇게 몸도 마음도 잔뜩 지쳐있던 어느 날의 고요한 새벽, 얘가 또 안 자고 말똥말똥한데. 가만히 그 보드라운 손바닥으로 내 팔을 가만히 세 번 쓰다듬어 주더라. 엄마, 힘내... 하는 것 같았지. 그게 뭐라고, 엄청 위로 받았었다.

그 때부터 알았던 것 같다.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아이가 먼저 훨씬 더 엄마를 많이 사랑해주고 매일 용서해준다는 사실을.

나중에 모든 기억이 사라져도 이 장면은 남을 것 같음. 이 때의 아기 냄새가 가끔 너무 그립다.
아직 와서 안길 때 실컷 안아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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