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선칠집중수행 첫째날, 존중하되 믿지 말라니!

 선칠집중수행 1일차

"그래, 명상 좋지. 봉암사도 스님들 수행하시는 명망있는 곳이고. 하지만, 네가 율리아나라는 사실은 절대 잊으면 안 된다."

부모님은 직접 운전해서 세계명상마을에 바래다주셨다. 천주교인 부모님은 불교에 대해 큰 반감은 없으시지만, 내심 걱정되긴 하시나 보다. 혹시나 명상하다가 불교에 너무 빠지는 건가. 중학교 때부터 냉담 중인 딸을 아직도 포기하지 못하시나 보다.

차라리 종교적 신앙을 가지면 좋으련만. 카톨릭 유아세례도 받고, 기독교 재단 대학교도 다니고, 하물며 메노나이트 관련 단체에서 자원봉사도 해보고. 개인적으로 템플스테이도 종종 가보는데도 종교적 믿음을 갖긴 참 어렵다. 신앙을 갖고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내 마음도 편하련만.

그러니, 어쩌면 내겐 이 정도 명상수행이 적절한 수준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뜬금없이 7박8일 선칠수행이라니. 예상치 못한, 새로운 경험이다.




1. 사교하지 않는다.
2. 묵언,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나의 내면에 집중한다.


세계명상마을 선칠집중수행 오리엔테이션. 각산스님께서는 맨 처음 수행할 때 지켜야 할 두 가지 원칙을 강조하셨다. 스님들은 밥을 많이 먹지 않고, 잠을 많이 자지 않고, 일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추가적인 수행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일반인 수행자들은 이 두 가지만 제대로 지키면 된다고 하셨다.


"오직 나 자신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사람들과 사귀려 하고, 대화를 나누려 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놓치게 됩니다. 여기 있는 동안만이라도 자신에게 집중해 보세요."


처음 3일은 초기불교 수행법인 안반선, 즉 아나빠나사띠 수행에 집중한다 하셨다. 오직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며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관찰하는 명상법.


허리를 곧게 세우고, 등을 가슴 쪽으로 살포시 민다는 느낌. 그리고 자신의 속도에 맞게 호흡하기.
지난번 태국에서 배운 위빠사나 명상법과 비슷한 것 같지만 각산 스님께서는 "느슨하게" 명상하는 것을 강조하셨다. 호흡을 굳이 천천히 하려 하지 않아도 되고, 만약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 좀 더 수면을 취하거나 편히 쉬고 와도 된다고 하셨다.


"몸과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편한 상태로 명상하면 됩니다. 

종교가 있다면 자신이 믿는 신에게, 만약 종교가 없다면,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하며 향을 피운다"는 마음으로 수행하면 됩니다.
호흡할 때 필요하면 "붓따"라고 이름을 붙여서 집중하면 좋은데, 자신의 종교에 따라 예수, 마리아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 자신에게 편한 방법을 택해서 하세요.

마음을 지배하려면 호흡을 지배하면 됩니다.
호흡을 지배하면 마음을 지배하게 됩니다.

명상은 무엇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도를 가지지 않아야 합니다. 무심의 경지로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두 가지를 배워야 합니다.
첫째, "이대로 좋게"
둘째, "다만 할 뿐"


지금 이대로 좋다는 마음으로, 그냥 하면 됩니다. 자신의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앉아서 하는 명상이 50분이면, 걷기 명상이 10분. 앉아있는 시간이 길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오래 앉아있는 게 쉽지 않기도 하고,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 중간중간 숙소로 돌아와 한숨 자기도 했다. 몸과 싸울 필요 없이 쉬어도 된다고 하셨으니 그래도 괜찮겠지.



아나빠나사띠. 아나빠나나는 들숨 날숨.

"사띠 (sati)"는 영어로는 mindfulness. 각산스님께서는 띠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불교 용어가 미국 등 외국에서는 mindfulness로 해석되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서는 '알아차림,' '마음챙김'으로 해석되고 있는데, 사실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셨다.

1) Mindfulness, 알아차리고
2) Attention, 관심을 갖고
3) Awareness, 알고 인식하며
4) remembrance, 기억하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


이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사실 mindfulness 보다는 contemplation '염두'라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번역이라 하셨다.


스님은 사띠와 호흡을 송아지 길들이기에 비유해서 설명해주셨다.

"송아지는 본능적으로 어미소에게 이끌립니다. 어미소는 인간이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끌리는 명예, 권력, 재물, 사랑,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그런 욕망을 상징합니다.
그 욕망에 끌리지 않기 위해서, 송아지에게 필요한 말뚝은 "호흡," 송아지를 매어둘 끈은 "띠"라 보면 됩니다."


내 마음이 정처없이 망상에 빠져들 때, 송아지를 데리고 오는 것은 호흡 그리고 나의 마음을 매어 두고 지켜보게 하는 것이 사띠.


솔직히 말해서, 호흡에 집중하는 것도 쉽지 않다. 바로 온갖 생각, 감정들이 휘몰아친다. 내 마음속의 송아지는 아주 천방지축 말괄량이.

이렇게나 주의력 결핍이란 말인가! 차라리 책을 읽거나, 취미로 배우는 악기를 연습하던가, 그러면 집중이 잘 되는데. 그냥 이렇게 앉아있으려니 오롯이 내 마음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제발 멈추고 싶어. 그만 좀, 다 멈추었으면.




첫날 법회시간 때, 각산스님은 문득 인간관계 원칙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나만의 "법"을 찾아야 한다는 말씀 하시다가 꺼내셨던가.


"인간관계에 대해서, 서로 존중하되 믿지 마십시오.
믿지 않아야 제대로 살필 수 있고, 인간관계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습니다.
오늘 좋은 사람이 나쁜 인연이 될 수 있고, 지금 나빠 보이는 사람이 나중에 좋은 인연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
99가지 잘해주어도 한마디 말에 이제껏 좋았던 마음이 한순간 변하는 게 사람 마음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을 대할 때 존중하되 믿지는 마세요." 


아, 이걸 내가 몰랐구나. 인간관계에 너무 지친 내게, 뭔가 비법을 알려주시는 기분이었다.


그랬어야 했다. 그냥 내가 직접 뽑은 사람이니까,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하는 동료니까 어련히 내 사람이겠거니 했다. 내가 먼저 호의와 선의를 베풀고, 배려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면 내 진심 알아주겠지. 서로 맞춰가며 잘 지낼 수 있겠지.

그녀는 나를 전혀 신뢰하지 않았고, 마음 주지 않았고, 경계하며 내 말 하나, 행동 하나 다 기록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대로 제멋대로 해석하고, 남을 앞세워 나를 공격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내 앞에서는 전혀 티내지 않았다. 주위에 어느 누구에게도 힌트 주지도 않았다. 주위 사람 모두 우리가 정말 잘 지내는 줄 알고 있었다. 너무 사이좋아 보인다며 질투 난다는 말까지 들었다. 인사과 미팅이 있는 날까지도 어떤 눈치도 채지 못했다.

그것은 나의 잘못. 존중하되 믿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 사람은 아무것도 내게 보여준 적 없었는데, 나 혼자 신뢰하고, 마음 주고, 도와주려 했다. 그것도 최선을 다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스님의 말씀은 내게 충격이었다. 명상시간 내내 그 말씀이 떠나지 않았다.

호흡에 집중하려 해도, 그 말씀이 맴돌아서 힘들었다.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것처럼, 다시 고통이 몰려왔다.


그런데 정말 맞는 말이다. 

"존중하되 믿지 않는다." 이것을 내 인간관계 철칙으로 삼아야겠다. 

첫날부터 아주 중요한 교훈을 하나 얻었다.  

이전 11화 이직 아닌 퇴사, 이번엔 국내 명상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