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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 아닌 퇴사, 이번엔 국내 명상여행

바른 자세로 앉아 주의를 기울이며 수행을 시작하라. 처음에는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단지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만을 알아차려라.

호흡을 조절하려 하지 말고 근심하지도 마라. 단지 호흡을 알아차리기만 하고 그냥 놓아두어라. 저절로 삼매가 자랄 것이다. 마음을 이처럼 고요히 할 수 있다면 그대는 어디에 든 주의를 모으고서 곧바로 고요한 상태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점에 이르면 팔정도를 어느 정도 아는 셈이지만 감각의 대상들에 대해서는 계속 관찰해야 한다. 그대의 고요한 마음을 보이는 것, 소리, 냄새, 맛, 촉감, 생각, 마음의 대상, 마음의 요소들을 향해 돌려보라. 무엇이 일어나든 그것을 조사하라. 그것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기분이 유쾌해지는지 불쾌해지는지를 알아차리되, 그것에 휘말리지는 마라. 좋아함이나 싫어함은 겉으로 보이는 세계에 대한 반작용일 뿐이다. 더 깊이 꿰뚫어보아야 한다. 이렇게 수행을 하면 머지않아 일시성, 불만족스러움, 비어 있음을 또렷이 볼 수 있는 통찰과 지혜가 일어날 것이다. 이것이 참 지혜의 시작이고, 명상의 핵심이며, 해탈로 인도하는 길이다. 그대의 경험을 따라가라. 그것을 보라. 멈추지 말고 정진하라. 진실을 알라. 버리고, 비우고, 평화를 얻는 법을 배워라.


- 아잔차 스님의 오두막, pp. 142-144



그런데 말이야, 정말 호흡하며 나 자신을 끊임없이 들여다보면, 그러다 보면 정말 무적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될까? 나 자신을 바라보고, 끝까지 바라보다 보면, 그 마음 끝에 지혜와 해탈이 있을까? 그냥 언젠가 자연스레 발견하게 되는 걸까? 그 끝까지 찾기 위해 어디까지 노력해야 하는 걸까?


마음 한편으로는 그런 의문이 있었다. 호흡하며 나 자신을 관찰하고, 성찰하는 것 이상, 무언가 더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그게 뭘까.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간화선'

그래, 남방불교에서 뭔가 하나 배워왔으니 우리나라 불교 전통적인 수행법도 한 번 알아볼까. 그렇게 간화선에 대해 찾아보다 우연히 알게 된, 조계종 봉암사 세계명상마을.

템플스테이처럼 사찰과 불교문화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명상 프로그램에만 집중하는 곳이었다. 선칠수행, 명상입문과정, 명상심화과정 등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있고. 그중 7박 8일 선칠수행이 가장 기본 프로그램인 것 같아서 신청했다.

이번엔 일주일 휴가 받아 명상에만 집중해 보자!



입사한 지 15년 만에 처음으로, 한 달 휴가를 써볼 생각이었다. 일주일 정도 명상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시간 동안 여행도 하고 글도 써야지. 직속상사와 이야기도 끝낸 상황이었다. 하지만 휴가 써보기도 전에, 퇴사하게 되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그렇게 급작스레 결정이 났다.


지금 여기 숨 쉬는데 집중하면 뭐가 달라지나,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텐데. 문제는 여전히 저 너머에 그대로 있을 텐데. 9월 말 태국에서 명상할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었다. 물론, 명상이 문제 자체를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 마음이 달라져 있음을 깨달았다. 짧지만 긴, 5박 6일 온전한 명상이 남긴 흔적이 있다.

더 이상 호흡이 가빠지지도 심장이 제멋대로 쿵쾅거리지 않는다. 힘든 생각이 떠오를 때면 호흡에 집중하면 된다.

지금 여기 나 자신에게 집중!


자신의 잘린 발가락을 보여주며,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관점을 달리 해서 보라" 하셨던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래, 이제 정말 떠날 때가 되어서 이런 일이 생겼구나. 절이든, 성당이든 어디 갈 때마다 "이직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었는데, 내가 막상 주저하고 망설이니, 아예 이렇게 나를 벼랑에서 밀어버리셨구나. 우물쭈물하지 말고 빨리 날개를 펴라고.

다, 내가 바라고 기도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구나 싶다.


또 달리 생각해 보니 안심도 된다.

이제 모든 고통은 끝났다.

고통의 원인으로부터 드디어 벗어날 수 있다. 고문관 같은 사람들, 나를 숨죄이던 모든 환경으로부터 해방이다. 너무나 힘든 지난 몇 달이었다. 상처뿐인 시간.

다 끝났다.


나는 숨 쉬고 있고, 살아있다. 무슨 일이 생겨도, 괜찮다.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린 일. 누군가는 이걸 '정신승리'한다고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어때.

마음이 한결 홀가분하다.


그리고 나는 원래 계획대로 다시 명상하러 떠났다.



세계명상마을은, 불자가 아니더라도, 불교식 명상수행에 거부감 없다면 언제든지 열린 곳이다.

불자가 아닌 나 같은 사람에게, 선칠수행은 조금 낯설지만 한 번쯤 해볼 만한 경험.


여기도 지난 태국 명상센터처럼 핸드폰 반납, 그리고 묵언수행이 기본원칙. 단체방으로 배정되었는데, 스무명 정도 같이 머무르는 큰 방이다. 방도 따뜻하고, 온수도 펑펑. 태국 비하면 여긴 정말 편한 숙소다.


첫날 오리엔테이션, 이 프로그램을 주관하는 선원장 각산스님은 각자 선칠수행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각자의 이유를 먼저 찾아보라 하셨다.


나는 여기까지 왜 오게 되었을까, 무엇을 얻기 위해서?

나의 몸과 마음의 건강, 영혼의 평화.

그리고 평온과 평화 그 이상,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내가 진실로 간구하는 것은 그것이 아닐까.


그렇게 나는 다시 시작한다.

나 홀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명상의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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