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바늘 포비아도 할 수 있다! 스커트 & 팬츠 제작 수업

"옷은 우리가 세상에 보여주는 우리 자신의 이미지이다." - 버버리

"언니, 예전부터 제빵 배우고 싶다, 옷 만드는 거 배워보고 싶다, 떡케이크 만들어보고 싶다 하더니만 결국, 다 해보는구먼! 회사 다닐 때처럼 바쁜 것 같아, 아니 더 바쁜 것 같아."


생각해 보니,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담백한 빵, 건강하게 만들어먹고 싶다고 이야기한 지도 오래됐고. 내가 좋아하는 딱 떨어지는 스타일의 스커트나 원피스 만들어보고 싶다고 한 지도 꽤 됐다. 하지만, 사실 중고등학교 시절 가장 싫어하고, 가장 성적 낮았던 과목이 '가정가사'라, 내 평생 이런 걸 다시 배울 일이 있을까 했는데.

책을 읽거나, 공부하거나, 글을 쓰는, 그런 머리 쓰는 일이 진절머리 나서 그런가. 그동안 막연히 생각만 했던 것들, 특히 몸으로 직접 무엇인가 만드는 것들을 하는 것은 참 기분이 좋다.


국비지원으로 시작한 스커트 & 팬츠 만들기 수업. 연령대 다양한 열댓 명 여성들과 함께 매주 토요일오후 10주 차 과정이다. 아직 두 번째 시간, 미싱기 사용법도 배우고 패턴 그리기도 배우고.



"가위로 이렇게 사각사각 패턴종이를 자르고, 옷감을 자르는 소리가 심신안정을 시켜주는 백색소음이라고 하더라고요. 옷을 만드는 건 무엇을 생산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여러분들의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도움이 되는 일도 될 거예요."


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플레어스커트 패턴을 종이에 그리고, 하나하나 자르고, 풀과 스카치테이프로 붙이고. 사각사각, 매끈한 패턴 종이를 자르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선 하나하나 집중하다 보니 시간도 훌쩍 지나간다.

이런 평면의 선 하나하나가, 볼록한 배와 허리, 엉덩이, 그런 입체적인 공간을 반영하는 하나의 옷이 되다니. 무엇인가 '창조'한다는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다.


첫번째 시간은 미싱기계에 실끼우고 직선으로 박음질, 두번째 시간은 패턴 그리기!


특히, 옷! 우리가 매일매일 입는 옷만큼 우리 자신을 직관적으로, 바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옷은 우리가 세상에 보여주는 우리 자신의 이미지이다."

버버리의 말처럼, 우리가 선택하는 옷의 색깔, 때와 장소, 상황 TPO에 맞는 스타일, 이 모든 것에 나의 취향이 담겨있다. 나 자신을 세상에 보여주는 나의 이미지, 내가 원하는 '보이는 나'의 모습. 그런 나의 정체성이 반영된 것이다.

그래서, 한 번은 배워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은 무엇인지, 외형(appearance)은 무엇인지, 나의 취향과 이미지는 무엇인지. 나도 한 번 직접 만들어 보다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공업용 미싱기계 다루는 일은 정말 쉽지가 않다. 첫 시간부터 바늘 부러뜨리고, 실이 튕겨나가 막 날아다니고.

직선으로 박음질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옷감 끝부분에 다다르면, 나도 모르게 무서운 마음이 들어 천 조각 잡고 있던 손을 빼게 된다. 바늘 뾰족한 끝을 보면 항상 두려운 마음이 드는데 그 때문일까. 내 손을 쿡 찔러버릴 것 같은 불안.

 엉키고, 천조각도 울퉁불퉁 엉망이 된다. 마치 엉킨 내 마음 같다. 어떤 두려움도 없이 내 마음 고요히 가라앉으면, 이 박음질도 직선으로 잘 마칠 수 있을까?

조금씩, 천천히. 모든 과정을 차분히 따라가 내 옷 하나 만들게 되면 그깟, 바늘 하나쯤은 괜찮아지는 때도 오겠지.



아직은 차가운 공기 가득한 교실, 윙윙 시끄러운 공업용 미싱기계 돌아가는 소리.

갑자기 대학교 때 한창 따라 불렀던 민중가요 "사계"가 생각난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흰구름 솜구름 탐스러운 애기구름, 짧은 샤쓰 짧은 치마 뜨거운 여름

소금땀 비지땀 흐르고 또 흘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바늘을 비추는 작은 불빛 하나, 동동 페달을 밟아야 움직이는 이 작은 기계. 백화점에서 본 팬시한 홈 미싱기계와는 사뭇 다른, 공장용 미싱기계.

옛 민중가요가 생각나다니 나도 옛날사람인가 보다. 멀지 않은 70-80년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이 미싱기계 페달을 열심히 밟았을 언니들. 그 언니들은 지금, 다들 잘 살고 있으려나.


지금 이 수업을 듣고 있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 누군가는 취미로, 누군가는 집안 비즈니스를 이어가기 위해, 누구는 패션 전공생으로, 각기 배우는 이유도 다양하다.

이유는 다 달라도, 이 미싱기계는 예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돌아가겠지.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이전 06화 백수의 특권, 남들 일할 시간에 훌쩍 여행을 떠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