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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번 가보고 싶었어, 태국 명상여행 (1)

내가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누군가 나타나 도움을...

"아, 나는 드디어 이 나무 아래 앉게 되었구나. 여기 이렇게 오기 위해, 그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그 많은 인연이 닿은 것일까. 아, 이 후덥지근한 바람, 이 벽돌 바닥. 마침내 여기에 오게 되었구나."


2023년 9월 가을. 사실 이틀 전 방콕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도 내가 어느 곳으로 가게 될지 알지 못했다. 이렇게 태국 아유타야 이름도 처음 들어본 사찰에 몸을 의탁하게 될 줄 몰랐다.


답사로 며칠 전 왔을 때 먼발치에서 본 수행자가 있었다. 나도 저분처럼 여기에 앉아보고 싶다 강렬한 생각에, 망설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명상 프로그램 등록을 마쳤다. 며칠 전 내가 바랬대로 나는 그 수행자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곳에 앉아 있다. 내 몸은 여기 있지만,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중고등학교 오래된 친구 H, 그 친구는 어렸을 때 말했던 대로 진짜 원불교 교무님이 되었다. 그녀는 종교인의 길을 걷고, 나는 나대로 내 삶에 바쁘고. 그렇게 한참 각자의 삶을 살다, 우리는 2여 년 전 거의 20여 년 만에 다시 만났다.


종교인 친구가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큰 행운이다. 다른 친구들과 얘기하지 않는 주제, 이를테면 마음의 평화나 명상, 기도, 영혼의 건강과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니 말이다.

친구는 최근 몇 해동안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종종 들려주곤 했다.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명상이 널리 퍼져 자리 잡았다는 이야기, 베트남, 미얀마, 태국, 혹은 일본 불교가 명상수행으로 꽤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 등등.

친구 따라 쉬러 간 오덕훈련원에서, 위빠사나 명상을 맛보기로 배울 기회가 있었다. 원장 교무님 코칭으로 숙소 뒤뜰에서 걷기 명상도 하고, 뒷산에서 산책하며 명상하기도 했다.


"호흡에 집중해 보세요. 나의 들숨과 날숨. 호흡 그 자체에 집중해 봅니다. 그리고 내 몸의 움직임에 집중해 봅니다.

바닥에 발이 닿는 느낌을 알아차려 보세요. 발꿈치가 닿고, 발바닥이 닿고, 발가락을 떼고. 오른발, 왼발. 무릎을 들고, 발이 닿고, 발을 떼고 그런 나의 몸의 움직임에 집중해 보세요.

잠시 서서 눈을 감고 바람을 느껴봅시다. 바람에만 집중해 보세요. 휘익하고 나무를 흔드는 거센 바람, 내 뺨을 스치는 산들바람, 바람소리, 바람의 느낌. 지금 이 순간, 단 한 가지에 집중해 봅니다."


명상이라고 하면 왠지, 고요하고 적막한 사찰에서 눈감고 꼿꼿이 허리를 세운채 벽면 수행하는 장면이 먼저 떠올라서 그랬는지, 걷기 명상이라는 것은 왠지 생소하게 느껴졌다. 위빠사나, mindfulness, 마음 알아차리기 이런 단어를 들으면서도 그게 명상이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 한 순간, 단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그 기분은 막연하게 좋았다.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온갖 잡다한 생각들을 다 물리치고, 아주 단순하기 짝이 없는 한 행동에만 집중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아, 이런 명상도 있구나. 머리 복잡할 때 다음에 써먹으면 좋겠다. 그땐 막연하게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리고 오후 3시 반 회사 근처에 바람 쐬러 산책 나갈 때면, 가끔 흉내 내보기도 했다.


"오른발, 왼발. 걷는 데만 집중해 보자. 들숨, 날숨, 숨 쉬는 데만 집중해 보자.

발꿈치, 발바닥, 발가락. 발의 움직임을 인식하며 걸으니, 그냥 막 걸을 때와 또 느낌이 다르긴 하네."




친구는 몇 번 미얀마, 태국에서 한 달 수행했던 이야기를 해준 적 있었다. 태국에서 유명한 아잔 차라는 스님이 계셨던 사찰, 외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명상센터 등등, 내겐 그저 신기한 이야기였다.  


"새벽에 일어나 법회에 참여하고, 명상하고, 하루 한 끼 오전 즈음에 먹고, 오후에 차 한 잔이 전부야. 오후에도 명상하고, 법회에 참여하고, 명상하고, 아주 단순한 일정이지.

한 번은 일주일 프로그램 마치고 나오자마자 파인애플 주스를 마셨거든. 온몸에 시원한 주스가 퍼지는 느낌을 잊을 수 없어. 힘들기도 했지만, 잊히지 않는 기억이지. 나 자신에게만 온전히 집중한 시간, 그 이후에 한 잔 주스가 준 기쁨 같은 것 말이야."


내게는 마치 딴 세상 같은 이야기였다. 일주일 휴가 다고 해고, 핸드폰 쓰지 않고, 일 신경 쓰지 않고 과연 명상만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도 왠지, 관광을 위한 뻔한 여행 말고 언젠가 한 번 명상 목적으로 외국 여행을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사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오직 큰 불행에 마주하고 나서야 아 조금 달라질 뿐이다. 그제야 부랴부랴 살 길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전과 다른 방식을 찾게 된다. 나 또한 회사에서 마음 힘든 일이 생기고 나서야, 한 번 정말 떠나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에 치가 떨리고, 얼굴 보고 목소리 듣는 것이 매일매일 고문같이 느끼질 때가 되어서야. 어디든 멀리 떠나야겠다 결심하게 되었다.


친구는 나를 도와주실 분을 소개해 주었다. 원불교 태국 교당에 계신 최 교무님. 교무님은 명상센터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많이 고심하신 듯했다. 불교나 명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태국어도 전혀 못하는 나 홀로 여행객,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슨 추천을 해야 할지, 사실 당황스러우실만하다.

직접 처음 만난 날, 이곳저곳에 대해 제안해주셨다. 아잔 차 스님이 계셨던 Wat Nong Pah Pong 가볼 만하지만, 태국어 못하는 명상 초급자가 혼자 가기엔 난이도가 있을 것 같다 하셨다. 비행기 타고 가야 하는 조금 먼 곳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스님들이 각자 수행하시고, 외국인 방문자 따로 챙겨주거나 하는 분위기는 아닌 데다 적막하기도 해서. 그곳은 나중에 조금 더 명상에  익숙해지면 가보기로 하고.


대신 최 교무님이 이전에 한 번 가보신 적 있다는 있는 아유타야 사찰에 같이 가보자 하셨다. 교무님이 직접 운전하셔서, 마침 원불교 교당에 있던 다른 태국인 Kwan과 미얀마에서 온 Julia도 같이 소풍 가는 기분으로 같이 길을 나섰다. 우리는 한 시간 거리 아유타야를 가면서 꽤 친해졌는데, 그건 바로 K-Drama, K-Pop 덕분이었다. Kwan은 한국 드라마를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고, 가수나 연예인 이름이나 정보도 오히려 내가 배울 정도였다. (나중에는 블랙핑크 리사가 들렀다는 근처 사원도 함께 들렀다. 리사와 친구들이 들렀다고 전신대도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사실 명상 프로그램은 라인 앱을 통해서 태국어로만 등록할 수 있었는데, 함께 간 Kwan 덕분에 그 자리에서 바로 등록도 마쳤다. 생년월일을 불교식 연도로 써야 하는데, 이런 걸 나는 알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태국의 지인, 연락처 란에도 자신의 이름과 정보를 다 적어주었다.

이 분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곳을 혼자서 검색해서 알아내지도 못했을 것이고, 등록도 못했을 것이다. 입소 즈음 되니, 이곳에 온 건 내 선택이라기보다는, 내 운명 같은 느낌까지 든다.



그리고 마침내, 아직은 햇살 뜨거운 아유타야. 황폐해 부서진 어느 탑 앞에 나는 앉아있다. 드디어 평화롭게 혼자 앉은 시간. 마치 순간을 위해서,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고, 누군가의 소개로 명상을 알게 되고, 이곳을 소개해주고 등록을 도와주는 분들을 만나게 되고. 오랜 시간 차곡차곡 인연이 이어져왔구나 싶다.


불행을 피할 수는 없다. 고통도 피할 수가 없다. 항상 승승장구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진실로 원하면 우주의 어떤 에너지들이 모여 내게 힘을 준다. 절실히 구하면, 도움 주는 이가 나타난다.  세상에 선한 이들이 있음을, 어떤 선한 의도가 있음을 믿는다면 말이다.

마치 미리 준비된 것처럼. 차곡차곡 쌓아온 인연들이 한순간 퍼즐처럼 맞춰져서.


나는 그렇게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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