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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번 가보고 싶었어, 태국 명상여행 (2)

(굳이 그러고 싶진 않긴 하지만...) 불행에도 감사할 것은 있다

5성급 호텔부터 허름한 게스트하우스까지. 웬만한 여행지, 숙소에서든 다 잘 지내는 편이다. 어떤 외국 음식도 잘 소화하는 편이고. 그래서 사실 태국 사찰에 있는 명상센터에서 머무르는 것 정도는 걱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소개받아 명상프로그램 참여 등록 마친 왓 마해용(Wat Maheyong) 사찰은 역사가 오래된 곳이고, 시설들도 크고 매우 깔끔하게 정돈된 곳이었다. 소개해주신 최 교무님 말씀으로는 몇 해전에 여기서 큰 불교 행사도 열렸다고 한다.  


하지만, 아뿔싸, 이건 조금 상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렇게 백 명 넘는 사람들이 다 같이 방바닥에 매트 하나만 깔고, 설마 정말 선풍기 몇 개 틀고 지내는 건가. 종이로 엉성하게 만들어진 파티션, 내 몸 하나 딱 누울 정도 자리. 따로 캐리어나 가방 보관할 곳도 없고. 잠깐 당황했지만, 뭐 괜찮다. 수행하기 딱 좋은 환경 아닌가!


다른 사람들은 바닥에 깔 장판과 얇은 매트리스와 베개를 하나씩 자연스럽게 찾아간다. 나도 따라서 이것저것 챙겼는데, 막상 내 자리를 모르겠다. 뻘쭘하게 서 있으니 여기 사감으로 보이시는 분이 손수 내 자리로 이끌어주신다. 33번 자리. 아, 명찰에 있는 ๓๓ 태국글자가, 33이었구나. 아라비아 숫자를 안 쓰는 건가. 태국어 기본이라도 공부했어야 했나, 아찔했다.



금요일-일요일까지 2박 3일 코스, 그리고 월요일-목요일까지 3박 4일 코스. 우선 두 과정을 모두 등록했다. 명상 프로그램 참여하는 동안 옷 두 벌은 무상으로 대여해준다고 한다. 더 필요하면 개인적으로 구매하면 되고. 그리고 이 모든 프로그램 참여비는 마치고 떠나는 날 기부금으로 낸다고 하면 된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젊은 친구가 나타나 등록과정을 도와줬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바로 자신을 Pop이라고 부르라며, "언니"라고 부른다. 알고 보니 한국 드라마 팬이고, 강하늘 씨가 나온 드라마를 좋아한다나. (강하늘 씨, 감사합니다!) "잘 자요, 사랑해, 보고 싶어" 이런 한국어들 안다며 말한다. 발음이 좋은 걸 보니, 로맨스 드라마를 한 두 편 본 실력이 아니다.

덕분에 등록 마치고, 핸드폰은 작은 파우치에 담아 물쇠로 잠근 뒤 다시 돌려받았다.


작년에 중앙아시아, 중동 국가들 여행할 때 정말 한 글자도 모르는 러시아어, 아랍어도 구글 번역 앱 도움받아 편하게 여행 다녀서, 태국에 와서도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핸드폰과 데이터만 있으면, 세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현대 문명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간 이곳. 이제부터 영어 하는 누군가가 있길, 친절한 누군가가 있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여기에서는 "묵언수행"이 기본이라, 모두가 침묵을 지켜야 한다. 내가 무엇인가를 영어로 묻게 되면, 그분의 명상수행에 민폐가 된다. 도움을 청하기도 어렵다. 아, 망했다. 자,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눈치 싸움이다.


태국분들은 친절하다. 불자이고 명상수행하시는 분들은 더 친절하시겠지. 불쌍한 중생을 내치진 않겠지. 그러니 내가 먼저 최대한 겸손하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자. 모든 예법을 따르자.

내가 그들의 친절과 배려, 이해를 바란다면, 나 또한 그에 합당하게 행동해야 한다. 누군가는 우상숭배에 가담한다고 비난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존중과 존경, 감사의 마음을 표할 것이다. 그럼 이들도 나를 존중해 주겠지.


어린 친구들 따라 옷 빌리는 데 가서, 흰 수행복 두 벌 받아왔다. 상의는 입었는데, 치마는 그냥 큰 옷감 하나다. 어떻게 입는 것인가! 우선 어떻게든 입고 나왔다. 살색이 드러난 채 나타나니, 화장실에 있던 분들이 아연실색이다. 어떻게 입어야 제대로 입는 걸까요, 바디 랭귀지로 물어본다. 천 중간 공간에 몸을 집어넣고, 남는 옷감은 오른쪽으로 한꺼번에 접어 끈으로 묶으면 된다고 몸소 보여주신다. 아, 너무 긴데? 이상하다 싶어 뒤적뒤적하는데 옆에 계신 분이 대신 끈 묶어주고 접힌 부분 보이지 않게 돌돌 말아준다. 치마 길이를 이렇게 조절하는구나. 어깨에 두르는 긴 천조각도 있다. 옆에 있는 다른 분들 따라 해 본다. 왼쪽 가슴 앞쪽에 천을 조금 내리고, 등 쪽으로 천을 넘긴다. 그리고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천을 넣고 왼쪽 어깨로 다시 올린다. 그새 천이 어깨에서 미끄러진다. 옆에 있던 분이 고정할 수 있는 핀을 말없이 건네준다.


아까 나무 보드판에 있는 참석자 리스트를 보니 대략 300여 명. 영어로 쓰인 외국인 이름은 나 하나. 둘러보니 피지컬 좋은 군인들이 한 그룹 보인다. 타이 항공사 직원들도 참여한다고 한다. 여긴 이렇게 회사 차원에서 같이 명상수행도 오나 보다.

하기야, 태국은 불교가 국교이고, 남성들은 살면서 무조건 한 번 이상 단기 출가를 해야 한다는데, (여성은 아니지만) 그래서 이런 모든 게 자연스러운가, 추측해 보았다.



첫째 날, 아침 8시 즈음 등록 시작해서 짐정리 마치고, 옷까지 다 갈아입자 이제 슬슬 사람들이 움직인다. 야외에 큰 불상이 있는 넓은 공간이다. 누군가는 방석을 가지고 가서 앞쪽에 앉고, 뒤쪽 의자에 앉는 사람들도 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주로 의자에 앉지만, 그렇다고 해서 젊은 사람들이 못 앉는 자리는 아닌 듯하다. 태국식으로 몸을 옆쪽으로 비스듬하게 앉는 방식은 조금 어색해서, 자연스럽게 의자로 간다.

그런데 갑자기, 스테프로 보이는 남자분이 와서 옆자리로 옮겨달라고 한다. 무심코 오른쪽 앞에 앉았는데, 실수한 모양이다. 눈치껏 보니, 남자는 오른쪽, 여자는 왼쪽이다. 자리부터 실수다.


오리엔테이션인 건 확실한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책을 하나씩 나눠주는데, 기도문과 찬불가 같은 것 같다. "끄랑"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바짝 몸을 접어 머리를 바닥에 닿게 절한다.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두 손을 맞대고 깊게 허리 숙여 절한다. 나도 따라서 깊이 몸을 숙여, 절한다.


큰 스크린에 화면을 띄운다. 스크린 속의 노승께서 아주 천천히, 낮은 목소리로 무엇인가 말씀하기 시작한다. "위빠사나"라는 단어는 알겠다. 위빠사나 명상에 대해 알려주시나 보다. 명상 참여자들은 모두 일어나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나도 따라 맨발로 더운 열기 머금은 흙바닥을 걸어본다. 예전에 언뜻 배운 대로 천천히, 내 다리와 발의 움직임을 알아채면서.


11시 즈음되니 점심을 먹으러 간다. 남자 한 줄, 여자는 두 줄 따로. 남자분들이 먼저 식사하러 간다. 뷔페식으로 차려진 데로 가니 머리 짧게 깎은 여승께서 표시판을 두 개 들고 있다. 한 줄은 길고, 다른 한 줄은 짧다. 표지판에 뭐라 적혔는지 모르겠지만, 이럴 땐 무조건 긴 줄로 가는 게 상책이다. 마스크를 쓰고, 손에 소독 스프레이를 한 번씩 뿌리고 긴 줄을 따라 걷는다.


내가 이전에 갔었던 태국 식당들에서는 보지 못한 음식들이 놓여있다. 가정식 음식인가 보다. 배춧국 같은 것도 있고, 잘 모르는 야채가 들어간 음식도 있고, 고기, 생선 요리도 있고. 내가 선택한 긴 줄은 고기가 들어간 일반식, 옆에 짧은 줄은 채식 식단 같다. 여기 불교에서는 고기를 꼭 금하지 않는다 했지. 이것저것 담고 수박, 용과, 람부탄, 포멜로, 작은 바나나 같은 열대 과일들도 잔뜩 담았다. 봉지나 플라스틱 상자에 담긴 태국 디저트, 빵들도 있다. 두유, 주스, 물도 잔뜩 있다. 오늘 마지막 식사라 그런지 이상하게 식탐이 생긴다.

여행객으로 다시 찾았을 때, 여승들께서 식사 준비하는 과정을 몸소 보여주시고 체험하게 해 주셨다.


눈치껏 사람들이 뿌리는 소스도 따라 뿌려봤다. 분홍색 소스 그냥 봤을 땐 몰랐는데, 고춧가루보다 더 맵다. 콧물 주르륵, 눈물 찔끔하며 물을 들이켜는데, 맞은편에 앉은 한 아주머니가 "Hot, Hot?" 이렇게 말을 조심스레 건넌다. 눈물 날 정도로 매워요라고 바디 랭귀지를 보낸다. 아주머니는 자신의 물 한 통을 웃으며 건네주셨다. 용과도 몇 개 주셨다.


생각보다 음식이 많다. 양도 많고 종류도 다양하다. 그런데 매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것인가? 이 음식들은 어디서 오는가. 불교는 태국의 국교니까, 정부 지원금이 나오는 걸까. 아니면 이 사찰이 꽤 커 보이던데 신도도 많고 헌금도 많이 거두나?


식사 후 식판을 씻고 숙소 안에 들어와 누웠다. 쉬는 시간이 몇 시까지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제 일정표를 구글 번역 앱으로 캡처해서 저장해 뒀었는데 외우진 못했다. 바깥에 일정표가 적혀 있지만 읽을 수 없다. 지금 그 핸드폰은 자물쇠로 꼼꼼히 잠겨 내 가방 안에 있다. 몇 시에 일정이 다시 시작되는지 모르니, 깊게 잠들 수는 없다. 덜덜덜, 선풍기가 돌아간다. 그래도 습도가 높지 않아서, 실내는 그럭저럭 시원하다.




핸드폰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우선 시간을 알 수 없게 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손목시계를 가지고 올 걸 그랬나. 야외에도 시계들이 있긴 한데, 드문드문이다.

답답하지만, 어떻게 보면 시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시간에 얽매일 필요도 없으니 좋다.


핸드폰이 없으니 내 일상의 배경음악이 되는 음악도 사라지고, 매 순간순간 남기고 싶은 사진도 찍을 수 없게 된다. 사진을 찍는 대신 지금 내 눈에 모든 걸 상세히 담고 기억해야 한다.


메모를 할 수도 없다. 나는 상점에서 보라색 바탕에 흰 토끼들이 그려져 있는 귀여운 20밧짜리 노트와 10밧짜리 펜을 샀다. 평소 같으면 이런 귀여운 아이템들은 쳐다보지도 않는데 어쩔 수 없다. 여기에는 한 가지 모델밖에 없다. 노트북이나 핸드폰이 아니라, 직접 손글씨로 노트에 글을 써보는 게 오랜만이다.


연결된 모든 사람들과 소통이 단절된다. 문자도, 전화도, 카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메시지도 없다. 세상 뉴스를 체크할 수도 없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이야기 대신, 나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보게 된다.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집중하게 된다.

시간, 기록과 기억, 소통, 외부 정보, 모든 것들로부터 단절이다. 생각 외로 나쁘지 않다. 한 번쯤 필요했던 일이라는 생각 든다.



오후 1시부터는 야외에서 명상시간이다. 녹음된 낮은 목소리가 나온다. 아까 그 큰 스크린에 비쳤던 스님 목소리인가. 사람들은 큰 홀에 방석 깔고 앉기도 하고, 의자에 앉기도 하고, 그냥 나무 밑 바위에 앉기도 한다. 나도 나무 그늘 아래 바위에 방석 하나를 깔고 앉았다. 눈을 감고 예전에 배웠던 호흡법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들숨, 날숨에 "붓또"였던가. 아랫배가 볼록하게 나오도록 깊게, 숨을 쉬어본다.   


아, 마침내 나는 이 나무 밑 그늘에 도착했다. 편안한 마음이다. 설풋 잠이 들었는지, 망상인지 한 장면이 지나간다.


"내가 어디를 다녀왔는데, 인상적인 곳이 있었어. 수백 명 사람들이 모여 맨발로 걷기도 하고, 앉아서 있기도 하고. 평화로운 곳이었어. 다음 생에 내가 너를 거기 가도록 이끌어줄게.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너도 한 번쯤 거기 가보면 좋을 것 같아. 어떻게든 네가 거기 갈 수 있도록 도와줄게. 내가 인연들을 만들고 준비하고 있을게."       


언젠가, 내 친구는 먼 생 어딘가에서 나와 만났을 때 이렇게 약속했을 것만 같다. 그 친구는 이곳에 온 적도 없고, 여기를 알지도 못하지만 말이다.

 

사실 좋은 마음으로만 여기를 찾은 건 아니다. 사실 지난 한 해는 매우 고통스러운 나날들이었다. 내 사람이라고 철떡 같이 믿었던 직원이 상상치도 못한 방식으로 비수를 꽂아, 매우 난처하고 곤란한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진심으로 걱정하고 도와주려는 사람, 앞에서 티는 안 내지만 조용히 뒤에서 도와주는 사람, 앞에서는 걱정하는 척 하지만 뒤에서 은근히 이 상황을 즐기고 이용하려는 사람, 아예 딱 거리 두려고 하는 사람, 그저 자신의 일에 불편이 생길까 봐 애매하게 구는 사람, 겉으로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척하면서 필요할 땐 나한테 자신이 원하는 걸 다 얻어가려는 사람, 내 얘기 들어주는 척했지만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관한 사람. 몇 달에 걸쳐 내 주위 사람들을 달리 보게 되었다. 어떤 사건보다 그게 너무나 마음 아팠다.


하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끝까지 내 주변 사람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다 잘 지내고 있는 줄 착각하고 있을 뻔했다.

정말 떠나야 할 때가 되었구나, 절실하게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휴가 때도 항상 핸드폰을 놓지 못하고 절절매던 내가,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기로 결심하진 못했을 것이다. 일이 아닌, 나 자신을 진심으로 보살펴야 한다는 걸 머리로 마음으로 알고 있었지만, 실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모든 불행에도 감사할 것이 있다. 아니, 그냥 그러기로 했다.

쉼 없이 뛰어오기만 한 내가 혼자 힘으로 멈추어 없으니,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내가 이 중년의 나이에 진심으로 변해야만 하기에, 뼈저린 교훈을 주기 위해 생긴 일이다. 내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깨달아야 하기 때문에. 내가 남은 삶을 진정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  

나를 힘들게 했던 이들을 통해 계기를 얻었다. 그리고 선한 이들을 통해 도움 받았다. 이 또한 그렇게 누군가의 배려와 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 여기 있다.                    

아직 태국어-한국 번역은 좀 어색하지만, 그래도 꽤 쓸모 있다. 구글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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