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오후 명상은 4시쯤 끝났다. 시원한 차를 한두 잔 마시고 숙소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5시부터 다시 연못가에서 명상, 그리고 바로 6시 즈음 법당을 들어갔다.
큰 연못 가 명상하던 자리. 물고기들이 뛰어노는 것이 보이는 평화로운 곳. 한 시간 정도는 사회자의 리드에 따라 (기도문인지, 명상관련한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명상을 한다. 다음 한 시간은 다 같이 기도문을 읽고 찬불가를 부르고. 다음 한 시간은 스님의 말씀.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세 시간 꼼짝없이,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 채 정자세로 앉아있었다.
태국어는 하나도 못 알아듣겠고, 기도책에 쓰여있는 페이지를 보고 숫자라도 공부해야겠다. 200 몇 페이지 되는 책의 숫자들을 다 한 번씩 따라 써보고, 쉬는 시간에 옆에 친절해 보이는 아주머니께 숫자 쓴 걸 보여주면서 한 번 읽어달라 부탁드렸다.
능, 쏭, 쌈, 씨, 호, 혹, 쨋, 빼, 카오, 0은 씹. "쏭쏭빼"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리면, 228페이지를 금세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태국어에는 동그라미와 곡선, 구불구불한 선들이 많다. 어려운 글자지만, 온화한 느낌이 담겨있다.
외부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으니, 내 안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우선 가장 먼저 느낀 건 내 몸의 변화. 여기 오기 전까지 일 년 내도록 매주 각각 다른 병원을 전전했고, 무슨 종류 든 간에 약을 안 먹는 날이 없었다. 출국 직전 장염 때문에 계속 설사를 하는 바람에, 수액을 맞고 일주일치 약도 받아왔다. 하지만 태국에 도착한 이후 3일 동안 한 번도 설사를 하지 않았다. 이것저것 잔뜩 싸 온 약통을 열어보지도 않았다.
내 몸이 정말 아팠던 것일까, 아니면 내 마음과 의식 때문이었을까.
카카오톡 프로필에 핸드폰 사용 안 된다고 문구를 남겨놓긴 했는데, 나와 이렇게 연락이 단절되는 동안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사실, 대부분은 내가 이렇게 여행 가서 연락 안 되는 상황인 것조차 모를 것이다.
문득, 얼마 전에 알게 되어 친해지게 된 사주 선생님 말씀도 떠올랐다. 그분은 우리가 이 생에 태어나기 전에 이미 태어날 날을 정해서, 그날에 정해진 운명을 선택해서 태어난다고 하셨다.
"아니,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우리는 왜 노력을 해야 하는 걸까요, 이미 그 삶이 다 프로그래밍되어 있다면 그 삶을 왜 굳이 살아야 하는 걸까요."
그분은 사주팔자는 바코드와 같다고 했다. 모든 사람은 이 삶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자신만의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신에게 맞는 사주팔자를 선택해서 태어난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태어나는 순간, 그 목적을 다 잊어버린다고 한다. 그렇게 잊은 채고 방황하며 자신의 목표를 찾아나가는 거라고.
이건 증명할 수 없는 것이므로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갑자기 이 생에 태어나기 전에 나는 무슨 목적을 이루고 싶었을까 궁금증이 든다. 뭘 이루고자 이 운명을 택한 걸까. 부자도, 유명인도 되지 못할 평범한 운명. 아무리 노력해도 항상 아쉬운 결과. 일복은 많은데 인복은 없고, 고독하고.
온갖 생각들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답 없는 생각들이 팝콘 튀겨지듯 마구마구 뻥하고 나타났다 사라진다. 집중이 쉽지 않다.
드디어 9시, 세 시간 법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몰래 챙겨놨던 두유 하나를 마시고 곯아떨어졌다.
새벽 3시 반쯤 옆자리 34번 친구가 나를 조심스레 깨웠다. 아니 법회는 4시 반이라며, 왜 이리 일찍 깨운 거니. 어제저녁처럼 또 지루한 법회다. 아침 명상 한 시간, 기도문과 찬불가 부르는 데 한 시간. 몽롱하다.
마치고 한 줄로 길게 서서 사찰을 크게 돌면서 걷기 명상. 그리고 갑자기 정문 밖으로 나가, 조그만 상점에 줄 서서 들어간다. 작은 플라스틱 바구니 하나씩 들고 계란, 음료, 봉지에 든 생선, 파타야 이런 음식들을 산다. 이 상점 말고도 주위에도, 작은 책상 펴놓고 음식 파는 분들도 있다. 시끌시끌한 아침. 이렇게 각자 아침식사는 사서 먹는 건가? 나는 내가 먹을 계란 몇 개와, 두유, 물, 필요한 휴지와 20밧짜리 작은 연꽃 다발을 샀다.
한국 김도 있던 작은 상점. 사람들은 여기서 먹을 것을 사서 탁발식 때 나눈다.
계산을 마치고 나가니 사람들이 파란 플라스틱 의자를 하나씩 들고 길가에 일렬로 줄을 선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 줄에 같이 끼여 섰다. 사람들은 신발을 벗고 맨발로 선다. 바구니를 들어 머리에 댄다. 두 마리 개들이 앞서고, 저 멀리서 흙빛 색깔 옷을 입은 스님들이 한 줄로 다가온다.
아, 탁발식이 었구나!
나처럼 물건을 산 사람들도 있지만, 동전 몇 개 내고 밥그릇 하나씩만 산 사람들도 있다. 스님들이 오면 사람들은 스님들의 탁발에 한 숟가락씩 밥을 덜고, 자신이 산 음식이나 물건, 꽃 같은 것들을 접시에 담아드린다. 그러면 스님들은 그것을 중간중간에 놓인 큰 플라스틱 박스에 다시 담는다.
아, 어제 먹은 식사가 이것이었구나. 내가 먹을 사는 게 아니었다. "우리가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을 사는 거였다.
탁발식 마치고 돌아오니 따뜻한 두유와 작은 빵이 준비되어 있다. 바깥에서 사 온 음식을 먹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따뜻한 두유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아무 생각 없이 나 먹을 만큼만 음식 산 것이 너무 부끄럽다. 이렇게 곧 먹을 게 나오는 줄도 모르고 내 생각만 했다.
왜 음식일까? 음식을 나누는 것은 특히 이렇게 무더운 나라에서 비위생적이고 비효율적인 행위이다. 큰 솥에 밥을 하고, 그것을 다시 일일이 작은 밥그릇에 담아서 각자 나눠갖고, 다시 한 숟가락씩 한 명, 한 명 스님들 탁발에 담는다. 스님들은 그 음식을 다시 큰 밥솥에 다시 담는다. 위생적으로는 별로다.
음식이 남아서 다시 화폐로 교환한다고 해도 그 화폐가치는 매우 낮다. 게다가 오늘 아침에 사람들이 상점에서 받은 바구니는 그리 크지 않다. 내 앞에 바구니 가득 담은 사람이 250밧 정도 내는 것을 봤다. 더 비싼 음식을 가득 채워도 300밧, 만 원 정도도 안 될 것이다. 그냥 돈으로 내면 간단하고 더 효율적이고, 더 큰돈을 모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이 수고를 하는 것은 "함께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 위함 아닐까.
누가 얼마어치 음식을 샀는지, 무엇을 냈는지 알 수 없다. 익명성을 지키면서, 누구나 자신이 낼 수 있는 만큼 함께 먹을 것을 나눈다.
태국 친구 말로는 태국인들은 소원을 빌 때 사찰에 큰돈을 낸다고 한다. 소원이 이뤄지면 더 큰돈을 헌금하고. 그런 걸 보면 세속적인 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탁발식만큼은 고집스레 불교의 원칙을 지키는구나 싶다.
음식은 상점에서 스님들의 탁발을 거쳐, 다시 우리 식탁으로 온다. 우리가 산 것이, 스님들의 탁발을 거쳐, 다시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스님에게는 불교의 원칙과 전통을 고수하는 일, 수행자들에겐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나눔을 부끄럼 없이 베푸는 일.
둘째 날 아침, 마음 준비 없이 마주한 탁발식은 충격이었다. 부끄러움이었다.
오전 명상을 마치고 다시 11시 식사시간이다. 내 옆자리 아주머니가 짧은 영어로 말을 거신다.
"어디서 왔나요? 어제저녁 법회 때 보니까 마스크 안 쓰고 왔던데. 노 마스크? 내 것 하나 줄게요, 받아요."
"이건 매운 건데 괜찮겠어요? 외국인한테는 너무 매울 텐데 이것 말고 다른 소스 넣어봐요."
"몇 살이에요? 아이는 있고? 아는 태국어는 있어요? 전혀 못하는군요. 한국에서 왔다고 했죠. 아 맞다, 블랙핑크 리사 아나요?" (50대 태국 아주머니도 리사를 아시는구나! 블랭핑크도 감사!)
밥 먹다 말고 한 마디씩, 태국어에 영어 단어 하나씩 섞어 쓰는 식으로 띄엄띄엄 말을 걸으신다. 태국에도 아주머니들은 오지랖이 넓으신 건가. 아이 있는지 묻다가 없다고 하자, 머쓱하셨는지 다른 화두로 돌리시려 하시는 게 귀엽다.
원래 명상 수행 중에는 대화 금지.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 말 걸어 주고 친절을 베풀어주는게 마냥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