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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R: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의 선택

의료 현장에는 수많은 전문 약어가 존재한다. 그중 'DNR'은 의료진뿐 아니라 일반인도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용어다. 'Do Not Resuscitate'의 약자로, '심폐소생술 거부'를 의미한다. 이 단어 속에는 생명과 죽음, 그리고 인간 존엄성에 대한 깊은 철학이 담겨있다.



'Resuscitate'라는 단어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어원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이 단어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re-'(다시)와 'suscitare'(일으키다)의 합성어다. 'suscitare'는 다시 'sub-'(아래에서)와 'citare'(움직이게 하다)로 나눌 수 있다. 따라서 직역하면 '아래에서 다시 일으키다'라는 의미가 된다. 이는 죽음이라는 가장 깊은 곳에서 생명을 다시 깨우는 의료행위를 정확히 표현한 단어다.


이처럼 'Resuscitate'는 생명을 되살리는 총체적 의료행위를 함축하고 있는 전문용어다. 따라서 DNR(Do Not Resuscitate)은 이러한 적극적 소생술 전체를 시행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된다. 단순히 '소생술 거부'라고 번역하면 놓칠 수 있는 깊은 의미가 이 단어에 담겨있는 것이다.




DNR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1974년 미국 의료계에서다.



DNR 개념의 뿌리는 히포크라테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의사들은 임종이 가까운 환자에게 불필요한 치료를 하지 않았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죽음을 존중하는 의료 윤리의 시작이었다.

현대 의학에서 DNR이 공식화된 배경에는 1960년대 심폐소생술(CPR)의 발전이 있다. 심장이 멈춘 환자도 소생시킬 수 있게 되면서, 역설적으로 '소생을 시도하지 않을 권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의학계에서 DNR은 매우 구체적인 의미를 갖는다. 

심장마비가 발생했을 때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기관 삽관, 제세동기 사용, 승압제 투여 등 적극적인 소생술도 시행하지 않는다. 대신 통증 조절이나 편안한 호흡을 위한 보조적 치료는 계속된다. 이는 '포기'가 아닌 '선택'이며, 환자의 존엄한 죽음을 존중하는 의료적 결정이다.


흥미로운 점은 DNR 결정이 번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나 가족이 마음을 바꾸면 언제든 DNR 지시를 철회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DNR 환자의 약 14%가 결정을 번복한다고 한다. 이는 DNR이 얼마나 신중하게 다뤄지는 결정인지를 보여준다.


최근에는 DNR을 넘어 AND(Allow Natural Death, 자연사 허용)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다. 이는 같은 의학적 결정을 더 인간적인 관점에서 표현한 것이다. '소생술 거부'라는 부정적 표현 대신 '자연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임'이라는 긍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병원경영 관점에서 살펴보자.


사업계획이나 경영전략을 수립할 때 Create(새롭게 도입할 것), Improve(개선할 것), Maintain(유지할 것), Eliminate(제거할 것)라는 네 가지 프레임을 자주 사용한다. 이 네 가지 항목은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전략을 세우는 데 활용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이다. 특히 조직의 문제를 진단하고, 개선 방향을 도출하며,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데 적합하다.



왜 4-Action 프레임워크가 적합한가?  

포괄적이고 균형 잡힌 접근: "창조"와 "유지"는 성장을 위한 긍정적 측면을 다루고, "개선"과 "제거"는 효율성을 높이는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둔다.

간결하고 직관적: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회의나 워크숍에서도 빠르게 적용 가능하다.      

실행 가능성: 전략 아이디어를 실질적인 실행 계획으로 구체화할 수 있다.      

반복 가능성: 정기적으로 이 프레임워크를 사용해 전략을 점검하고 업데이트할 수 있다.





DNR 전략, 즉 제거(Eliminate)는 병원 경영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위 네 가지 중에서 특히 'Eliminate'는 가장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영역이다. 단순히 불필요한 것을 없애는 것을 넘어, 핵심 역량에 집중하고 조직의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강력한 도구이다.

의료 현장의 DNR처럼, 때로는 '하지 않음'을 선택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통찰에 기반한다.


최근 병원들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는 제한된 자원의 효율적 운영이다. 

많은 병원들이 다양한 의료 서비스와 장비를 보유하고 있지만, 낮은 활용도로 인해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다. 이는 단순히 활용도를 높이거나 비용을 절감하는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다.


이러한 상황에서 DNR 전략은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한다.

면밀한 현황 분석을 통해 비효율적인 영역을 파악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예를 들어, 저활용 고가장비의 처분이나 비핵심 진료과의 축소와 같은 결정이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닌, 제한된 자원을 핵심 영역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이렇게 확보된 자원은 병원의 핵심 경쟁력 강화에 재투자된다. 

전문 진료 시스템 구축, 핵심 의료장비 보강, 전문 의료진 육성 등이 그 예다. '모든 것을 갖춘 병원'이 아닌, '전문성 있는 병원'으로의 전환은 장기적으로 의료 서비스의 질적 향상과 수익성 개선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게 한다.


DNR 전략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이러한 결정이 영구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의료 현장에서 DNR 결정이 상황에 따라 번복될 수 있듯이, 경영 전략도 환경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될 수 있다. 이는 전략의 실행 과정에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평가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이처럼 DNR 전략은 병원 경영에서 과감한 결단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접근이다.

 '하지 않을 것'을 명확히 함으로써, 정작 중요한 영역에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해주는 것이다. 이는 의료 현장에서 DNR이 가진 '의미 있는 선택'이라는 본질적 가치와 맥을 같이한다.


'모든 것을 갖춘 병원'이 되려는 욕심을 내려놓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하지만 제한된 자원으로 최상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DNR 전략은 오히려 병원의 경쟁력을 높이는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







DNR의 철학은 개인의 성장 전략에도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가 끝날 무렵, 우리는 늘 이런 질문을 던진다. '오늘도 최선을 다했나?' 분명 바쁘게 움직였고, 많은 일을 했는데도 마음 한켠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더 열심히 했어야 했나, 더 많은 것을 배웠어야 했나. 이런 고민은 끝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잠시 멈춰 생각해보자. 의료 현장에서 DNR은 생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 선택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우리 삶에서도 '하지 않음'을 선택하는 것은 포기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은 더 의미 있는 성장을 위한 전략적 결단이 될 수 있다.


매일 아침 할 일들을 정리하며 우리는 선택을 한다. 

어떤 회의에 참석할지, 어떤 업무에 우선순위를 둘지. 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하지 않을 것'을 정하는 일이다. 불필요한 회의, 형식적인 보고, 분주해 보이기 위한 업무들. 이것들을 과감히 덜어내면 오히려 핵심적인 성과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자기계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트렌드와 기술이 쏟아지는 시대다. 하지만 모든 것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 주변의 시선이나 불안감에 떠밀려 시작한 공부는 오히려 자신의 전문성을 흐릴 수 있다. 때로는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이, 기존의 전문성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길이 된다.


인간관계에서는 이러한 선택이 더욱 중요하다. 

형식적인 모임과 피상적인 관계는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아갈 뿐이다. 진정한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관계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성장을 돕는 현명한 선택이다.


DNR 전략은 우리에게 역설적 지혜를 준다. 

'덜 하는 것'이 때로는 '더 성장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 이는 단순한 포기나 회피가 아닌,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를 더 가치 있게 쓰기 위한 적극적인 선택이다. 완벽해 보이려 애쓰는 대신,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 그것이 바로 DNR 전략이 우리의 성장에 주는 실질적인 가치다.


이제 하루를 마무리하며 던지는 질문이 달라졌다. '오늘 나는 무엇을 하지 않기로 선택했나?' 그리고 그 선택으로 인해 '무엇에 더 집중할 수 있었나?' 이런 물음 속에서 우리는 더 의미 있는 성장의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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