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금 ‘살아내기’만 하고 있어

by 괜찮지않은사람

아침에 눈을 떴다. 자고 일어난 것뿐인데도 마치 전쟁을 치른 듯 지쳐 있었다.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출근 준비를 하면서 스스로에게 수없이 말했다.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이 말도 이제는 효과가 없다. 그저 의무감처럼 입 밖으로 꺼내는 습관일 뿐. 정말 괜찮은지 묻는 사람이 있다면, 솔직히 대답할 수 없다. 나는 그냥 ‘살아내고’ 있다. 오늘 하루를,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통과하는 데 온 힘을 쓰고 있다. 그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전부다.

사람들은 말한다.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와.” 그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 이유는, 좋은 날이 오기 전에 오늘도 견뎌야 한다는 현실 때문이다. 먼 미래의 희망보다는 지금 눈앞의 막막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나는 미래를 꿈꾸기보다 하루를 무사히 끝내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밥을 먹고, 일하고, 퇴근하고, 씻고, 잠드는 일상. 그 반복 안에서 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감각. 거창한 꿈 같은 건 없다. 그저 내일도 살아 있어야 하니까, 오늘을 버티고 있을 뿐이다.

‘살아간다’는 말과 ‘살아낸다’는 말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살아가는 사람은 방향을 가진다. 목표가 있고, 기대가 있고, 나아감이 있다. 반면, 나는 그냥 살아내고 있다. 벼랑 끝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느낌.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하루가, 내게는 끊임없는 싸움이었다. 감정을 숨기고, 체한 말들을 꾹 삼키고, 웃는 얼굴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그 모든 순간이 나에겐 버거운 전투였다. 아무도 몰라도 괜찮다. 아니, 모르는 편이 나았다. 누군가의 걱정을 받기엔, 나는 이미 너무 지쳐 있었으니까.

“왜 이렇게 힘들어?”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너무 많은 게 겹쳐 있고,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고, 설명한다고 해서 누군가가 이해해줄지도 확신이 없다. 그래서 그냥 웃는다. “그냥 조금 피곤해.” 그렇게 말하면 대화는 끝난다. 나의 고통은 여전히 내 안에 있고, 누군가는 ‘그 정도면 괜찮네’ 하고 넘어가겠지. 나는 그게 억울하지 않다. 억울하다는 감정조차 낭비처럼 느껴질 만큼 감정이 마모되어 있다. 공감받고 싶은 욕구도 언젠가 놓아버린 지 오래다.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버겁기 때문이다.

하루하루를 채워가며 나는 나를 깎아낸다. 더 이상 뭘 해낼 수 있다는 믿음도 없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으려고 해도, 비교는 끊임없이 따라온다. SNS 속 웃는 얼굴, 성취와 변화의 소식, 그 안에서 나는 항상 뒤처진 기분이었다. 나만 정체되어 있는 것 같고, 나만 제자리인 것 같고, 나만 실패한 사람 같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알고 있다. 다들 비슷하다는 걸. 말하지 않을 뿐, 표현하지 않을 뿐,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살아내는 중’이라는 걸. 그 사실이 조금은 위로가 된다. 혼자만 이런 게 아니라는 그 느낌이, 다시 하루를 시작하게 만든다.

“요즘 어때?”라는 말이 부담스러운 이유는, 솔직하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좋지도 않고, 나쁘다고 하자니 애매한 상태. 그저 살아내고 있다고 말하면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그래서 나는 늘 무표정한 얼굴로 ‘그럭저럭’이라고 대답한다. 그 말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들어 있다. 외로움, 두려움, 분노, 체념, 그리고 아주 조금의 희망. 나는 알고 있다. 이 무표정한 ‘살아내기’의 나날이 언젠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 거라는 걸. 당장은 몰라도, 언젠가는 그럴 거라고 믿고 싶다.

살아내는 하루는 거창하지 않다. 늦잠을 자지 않고 일어난 것, 밥을 챙겨 먹은 것, 사람들과 갈등 없이 하루를 마무리한 것. 그런 평범한 일들이 내겐 기특한 성취다. 남들이 보기엔 아무 일도 아닌 순간들이, 나에겐 용기였다. 눈물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버겁고, 그럼에도 울지 않는 내가 애처롭고 대견하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하루였지만, 나는 안다. 오늘도 내가 나를 이끌고 끝까지 왔다는 걸.

나는 아직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도 아니고, 미래를 계획하며 발돋움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살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게 실패는 아니다. 살아내는 것 자체가 충분히 의미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는 것, 하루를 무사히 끝내는 것, 그것도 분명 하나의 ‘성공’이다. 나는 그 사실을 기억하고 싶다. 다른 사람의 속도나 방향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리듬대로, 이 느린 살아내기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이 살아내기의 끝에서 나도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은 살아가는 중이에요”라고. 그 말을 웃으며 꺼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지금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괜찮을지도 모르니까. 아니, 꼭 괜찮아졌으면 좋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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