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상처를 ‘없애야 하는 것’으로 배워왔다. 아프면 약을 바르고, 흉터가 남으면 가리고, 기억이 괴로우면 잊으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상처를 지우는 게 아니라, 그대로 두는 게 필요할 때가 있다는 걸. 왜냐하면 지운다고 해서 없어진 건 아니었으니까. 지우려 애쓰는 동안, 나는 오히려 그 상처에만 매달려 있었다.
상처를 지우려는 마음은 얼핏 보면 용기처럼 보인다. ‘다시 일어나겠다’는 의지 같고, ‘이제 괜찮아질 거야’라는 긍정 같지만, 그 안에는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 나는 그 불편함이 나를 더 불안하게 한다는 걸 알았다. 감정을 억지로 덮어두면, 그것은 더 깊이 스며들어 예상치 못한 순간에 폭발했다. 마치 지하에 묻은 불씨가 언젠가 바람 한 번에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어쩌면 상처를 지우지 않는 건,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무기력하게 체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용기 있는 선택이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나를 단단하게 세우는 일. 상처가 나라는 사람을 모두 설명하진 않지만, 분명 나의 일부라는 걸 받아들이는 일이다.
나는 상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든다. 억지로 무언가로 채우지 않고, 조용히 그 감정을 마주하는 날들. 그 시간 동안 나는 묻는다. ‘이때 나는 왜 그렇게 아팠을까?’, ‘그 일에서 나는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배웠을까?’. 이런 질문은 상처를 없애지 않지만, 그 모양과 무게를 이해하게 해준다. 그러면 상처는 더 이상 나를 위협하는 그림자가 아니라, 내가 안고 살아가는 하나의 흔적이 된다.
상처를 지우지 않는 건 타인의 시선과도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완벽하게 회복된 모습을 좋아한다. ‘이제 괜찮아 보인다’라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말은 종종 내가 아직 덜 나았다는 사실을 외면하게 만든다. 나는 이제 그 말에 맞추어 웃지 않기로 했다. 내 상처를 가볍게 다루지 않고, 그 무게를 인정하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형태를 바꿔 나타난다. 처음에는 날카롭고 선명하던 것이, 나중에는 둥글고 희미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처는 나를 부드럽게 만들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조금 더 귀 기울이게 하고, 내 안의 취약함을 인정하게 한다.
이제 나는 상처를 없애려 들지 않는다. 대신 그것과 함께 숨 쉬고, 걸으며, 살아간다. 상처를 인정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나를 끌어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걸어온 길을 증명하는 표식이 된다. 상처는 내가 약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내가 끝까지 버텼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상처를 그대로 둔다. 가리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잊으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를 더 인간답게 만들고,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걸 이제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