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삶의 빛나는 순간들
로렌스 옙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버펄로에 있는 뉴욕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미국으로 이민 온 중국인 영씨 가문을 다룬 소설로는『뱀의 아이들』『산의 불빛』『부엉이의 아이』『바다 유리』『마음의 도둑』과 뉴베리 명예상을 받은 『용문』이 있습니다. 로렌스 옙은 소설뿐만 아니라 극본도 많이 썼는데,『용의 날개』도 극본으로 만들어 링컨센터와 케네디센터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그는 미국 내 아시아 이민자들 연구로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분교와 산타바바라 분교에서 강의를 했으며, 1990년 전미교육협회 지원대상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캘리포니아주 퍼시픽 그로브에서 같은 작가인 아내 조애너 라이더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출처: 소년한길 / <용의 날개> 소개란
사실 소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현실에는 소설보다 소설 같은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작가의 성향에 따라 지나치게 한쪽 부분이 강조된다. 소설보다는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상상할 수 있는 범위가 더 크다고도 할 수 있다.
다만 소설을 읽는 이유는, 다른 사람은 일어난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용의 날개>는 중국인들의 미국에 진출하는 시대의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의 모티브는 간단하다. 작가는 신문에서 비행을 시도한 한 중국인 기사를 보았고, 그의 삶이 어땠을까를 고민한 것이다. 그는 이 이야기를 이방인들이 어떻게 새로운 환경에 정착하는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는지,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다양한 장면들을 보여준다.
작가는 모든 불행에서 희망의 씨앗을 찾는다.
그러고 보면 현실적 삶 속에서 '동화'를 찾는 사람처럼 보인다.
양귀들의 집은 아주 이상해 보였다. 집이라고 하는 게 꼭 상자처럼 생긴 데다 뜰도 없었다. 그걸 보니 양귀들은 신선한 공기를 싫어해 가방 같은 곳 안에 갇혀 사나 싶었다. 집에는 장식이라곤 하나도 없고 칠해 놓은 색도 칙칙하기 짝이 없었다. 작은 상자 모양의 집들이 얼마나 갑갑하게 보이던지 그 안에 사는 양귀들이 불쌍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자기 가감 옥에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살아가는 죄수들 같아서.
-소년(월영, 주인공)이 바라본 미국의 집들을 묘사하는 장면
그러나 우리는 감옥 같은 곳에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폭발적인 인구성장과 수도 집중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 대랑의 다세대주택을 공급했던 우리나라의 정책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전통적인 삶의 형태를 잃어버린 것은 현재와 미래의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매우 치명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통적인 삶의 형태라는 것을 박제하진 않더라도, 흔적 정도는 남겨두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아마 도시 정책이나 근대의 우리나라 건축가들이 이런 것들을 고민했더라면, 북촌의 한옥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관광객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민속마을촌과 같은 기형적인 마을이 생길 필요도 없지 않았을까?
물론 쓸데없는 가정이긴 하다.
하지만 최근에 유행하듯 번져가는 '공유하는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들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은 사라진, 익숙한 것들을 찾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용이란 항상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닐 거고, 항상 못된 것도 항상 친절한 것도 아닐 거야 자연의 움직임과 연결된 어떤 동물이 아닐까? 자연이란 말이지, 좋을 때는 정말 좋다가도 끔찍할 때는 너무 끔찍하지. 나는 네 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면 아버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 때문에 네가 다칠지 몰라
-미국에서 만난 아줌마(휘들러)가 소년(월영)에게 전하는 조언
관계라는 것이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또는 나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형성되기 시작하면, 모두가 상처받기 일쑤이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이름에 걸맞은 행동을 하기를 원한다. 아들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부모라는 이름에 걸맞은, 학생에 이름에 걸맞은 행동들. 이러한 시도는 대부분 개인에게 삶의 형식이나 행동 양태를 고정적으로 만든다.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이름을 받으들이려하지, 이름 뒤의 복잡한 존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어쩌면 복잡한 존재와 마주하여, 복잡한 감정이 드는 것을 기피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있는 그대로'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이상적일 수 있다. 환상일 수 있고.
아는 것은 쉽지만, 행하기 어렵다.
세상의 모든 진리는 그런 종류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살아가는 내내 삶이라는 게 너무나 하찮게 보일지라도, 이따금 고 귀하고 아름답고 순수한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 모두가 그 하찮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깨달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하늘을 날든 날지 못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가게 사람들이 이렇게 모두 힘을 합쳤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 온 것은 90%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역사서에 기록되지 않는다. 90%의 희생 속에서 만들어진 1%의 영웅들만이 기록된다. 개인의 삶은 하찮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삶이 하찮지는 않을 것이다. 현대의 사람들에게는 '나'가 아니라 '우리'가 필요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소년한길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꿈과 희망,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책을 출판하고 있다.
언젠가 독서 모임에 나오신 분들과 '데미안'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 있었다. 참석하신 많은 분들이 학생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어른이 되고서야 이해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더 인상 깊었다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아마 그때 당시 어른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책을 학생들에게 읽혔을 테고, 학생들은 너무 어려운 이야기에 학을 떼며 책을 멀리하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한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그 나이에 어울리는 책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용의 날개>는 그런 점에서 청소년에게 어울리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