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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YNO Nov 10. 2024

운동에서도 인생에서도,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진 않나요?

‘엄살’을 덜어내면 생기는 놀라운 변화


HB 코치는 참 인상이 밝고 붙임성이 좋았다.

나는 그를 이전 글에서도 잠깐 언급한 고강도의 유산소 운동인 서킷 트레이닝에서 만났다.


수업이 연달아 있어 지칠 만도 한데, 그는 잠깐의 쉬는 시간에도 늘 자리를 지키며 새로 도착하는 사람들을 환하게 반겨줬다. 운동 시작 전엔 한 명씩 일일이 오늘 컨디션은 어떤지, 기분은 어떤지, 꼼꼼하고 다정한 인사를 건넸다.

수업 중에는 세세하게 자세를 봐주고, 각자 맞는 무게를 추천해 주고 때가 되면 적당히 무게를 올려줬다. 그 덕분에 그룹운동임에도 나는 개인 PT 부럽지 않게 정확한 자세를 배우고 운동 실력을 늘릴 수 있었다.


단 하나의 단점은 잔소리가 많다는 것이었다. 지긋지긋하게.

목소리는 또 어찌나 큰지 운동하느라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옆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귀청에다가 잔소리를 때려박으면.. 그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라 아령을 던지다시피 내려놓은 적도 여러번이다.

(엄마랑 싸우고 방문을 ‘쾅’ 닫은 뒤 바람 핑계를 대는 것처럼, 살짝 험하게 두려던 아령이 심하게 던저져 튕기는 바람에 내가 더 눈치를 본 적도 있다..ㅎ)


일단 수업 전이나 중간에 쉴 때라도 어깨나 등이라도 굽어 있으면 바로 잔소리가 돌아왔다.
그렇게 발각된(?) 날은 수업이 끝난 뒤에도 거북목이네 중부승모 때문이네 어쩌네 하면서 스트레칭을 알려주는 걸 가장한 잔소리 폭탄을 추가로 듣고 나서야 귀가할 수 있었다.

또 운동 중에 힘들어서 조금이라도 자세가 흐트러지면 바로 나타나서 엉덩이를 더 빼라, 좀 더 내려가라 등 잔소리를 시전하고 사라졌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내뱉은 잔소리는 스치고 지나가는 짜증이 아니라 오랫동안 머물 각성으로 나에게 날아와 박혔다. 내 인생에 각인될 잔소리였다.




그날은 추석 연휴 뒤 거의 일주일 만에 운동을 나간 날이었다.

연휴로 길게 수업이 없었던 후엔 운동이 배로 힘들다. 몸은 연휴 동안 잔뜩 먹은 음식들로 무거운 데다 운동도 평소보다 힘든 것이 당연.


그런데 HB코치는 꼭 연휴가 끝난 날에는 제일 힘든 하체 프로그램을 시켰다.
오랜만의 운동이니까 살살해줄 법도 한데 말이다.

센터를 다닌 지 1년이 된 나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고, 가기 전부터 그날따라 유독 하기 싫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센터를 들어서며 인사를 건네는 코치에게 피곤하다고 시작부터 투정을 부렸다.

그런데 힘들다고 하면 좀 봐줘야 하는 게 매너 아닌가(?) 그날따라 HB코치는 유독 나에게 더 엄격했다.



실컷 운동을 하다가 너무 지쳐서 조금 무게를 낮춰 다음 세트를 진행하려고 하면, 그때마다 내 앞으로 귀신같이 나타나 무게를 다시 올려놓고 갔다. ‘그때마다’란 말은 내가 꾀를 부린 게 여러 번이고, 그걸 다시 묵묵히 무게를 바꾸고 간 것도 여러 번이라는 말이다.

그날따라 운동이 하기 싫었기 때문일까? 나는 수업 도중에도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런 탓에 수업이 끝나고 나가며 내 표정은 좋지 않았고, 힘들어서 찡그린 얼굴로 다 죽어가는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는 태연하게 ‘운동이 부족한 것 같으면 집까지 워킹 런지로 걸어가라’는 농담을 하는 것이었다.



경악스러웠다. 뻔히 힘들어하는 게 보이는 데 오늘따라 왜 이럴까?
어이가 없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냐’고 참았던 짜증을 터트리려던 찰나,
코치는 자기도 기다렸다는 듯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하고, 헛웃음이 섞인 한숨을 내쉬며 찡그리고 말했다.


00님, 엄살 좀 부리지 마세요… 솔직히 다 엄살이잖아요. 다 할 수 있어요~



HB코치는 나보다도 내 몸을 잘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의 힘듦은 몸의 진지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사실 그 무렵엔 고강도 트레이닝이 꽤 익숙해진 상태였다.

주 3회의 횟수도 나름 습관화되었고, 운동 프로그램도 익숙해졌으며, 내 손 안의 덤벨은 이미 센터에서 중상급으로 커져 있었다. 엉덩이에 볼륨이 생기고, 복근 기립근에 꽤 진한 근육이 잡혔다. 센터에서 여러 사람들이 내 몸이 이쁘다고 부러워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때쯤 나도 모르게 꾀가 생기고 있었다.
'어차피 운동을 해서 보디빌딩이라도 할 게 아니면 계속 계속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은연중에 했던 것이다.


그런 내게 ‘엄살’. 그 단어는 날카롭게 날아와 콕 박혀서, 내가 인생의 많은 부분에서 엄살을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곰곰이 되짚어보게 했다.



사실 내 인생의 화두는 언제나 그거였기 때문이다. 뭐든 적당한 선까지만 하는 것.

끝까지 물고 늘어지기보다는 적당히 잘하게 되면 만족했다. 그건 쉽게 질리는 나의 성향도 한몫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결핍이 생겼다. 나처럼 여러 가지를 꽤 잘하는 것보다, 뭐 하나만 미친 듯이 잘하는 사람이 부러웠다.

그런데 타인의 입에서 진지하게 ‘엄살’ 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나는 삶의 다방면에서 스스로 한계를 두어서 적당히에서 멈추는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분명 더 해낼 수 있는 데 말이다.


그 한계 이면에는 무언가를 미친 듯이 하기 전에 시간의 투자에 대한 ‘가성비’를 따지는 내 오랜 습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많은 시간을 투여할 가치가 있나?’ 하는 생각.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걸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비겁한 변명.
일단 해보기 전에 그런 생각들이 앞섰다.
그런데 그렇게 가성비를 충족하지 못하는 일들을 하나씩 지우다 보면 열심히 많은 시간을 투자할 일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항상.


돈이 풍족하지 않으면 작은 것 하나 살 때도 여러 번 생각하며 시간을 질질 끌게 되듯이,
내 시간의 가치를 요리조리 재보느라 정작 그 시간을 아무 곳에도 쏟아붓지 못하고 어영부영 흘려보내고 있었다는 걸, 나는 별안간 깨달았다.





그날의 깨달음 이후, 나는 열심히 해봤자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해서 어차피 얻는 게 없을까 봐, 지레 겁먹고 나를 적당한 선에 가두며 시간과 노력을 과감히 투자하지 못하는 사람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더 이상 어영부영 살고 싶지 않았다.


내 행동의 디폴트 값을 ‘할까 말까 고민될 땐 무조건 하기’,‘내가 하고 싶은 경험을 일단 마음껏 해보기’로 바꿨다. ‘적당히’를 ‘마음껏’으로. 

가성비를 때려치우고, 시간을 날릴까 봐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이 가는 것에 마음껏, 스스로를 믿고 계속 나아갔다.


‘굳이 이렇게까지 열심히 운동해야 하나?’ 생각하지 않고 일단 재밌고, 해서 보람차니까 되는 데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운동이 좋아졌고, 잘하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피트니스 모델을 할 생각은 없지만, 지금 직무를 살려 건강과 관련된 업계에서 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운동을 좋아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이렇게 생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던 글쓰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 운동을 하면서 정말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내 인생의 다방면에 대해 돌아봤다.
지금 이 글처럼.


이 모든 게 일단 마음껏 해보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이렇게 운동에 흠뻑 빠져 글까지 쓰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사실 글쓰기도 나에겐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가성비를 따지면 효용이 없는 것 같은 일.
 




요즘엔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회의감에 주눅 들기보다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꾹꾹 눌러 담아 매일을 알차게 보내려고 한다.

내 시간이 소중한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엄살을 부렸던 예전의 나는 그저 시간이 흐르는 게 무서웠고, 엄살을 걷어내고 스스로를 믿어주며 '적당히'에서 멈추지 않는 지금은 시간이 빠른만큼 매 순간이 더욱소중하고, 그렇기에 꾹꾹 눌러 담아 밀도 있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혹시 예전의 나처럼 가성비를 따지며 엄살을 부리고 있다면, 적당히를 마음껏으로 바꿔 보시길.
그럼 가성비를 기를 쓰고 따질 때보다 오히려 가성비가 늘어나 버리는 기이한 세상이 펼쳐진다.


그 세상은 꽤 자유롭고 즐겁다.


@Unsplash, Angelo Panta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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