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는 호통을 쳤고, 내 수경은 투명이라 시뻘게진 눈알이 보였고..
수영은 아주 성가신 운동이다.
일단 샤워와 머리감기를 2번 해야 한다. 수업 듣기 전과 후.
챙길 용품은 왜 이리 많은지 샤워용품에, 수영복과 수모 수경에, 화장품에.. 짐이 한가득.
귀차니즘이 심한 나는 수영장을 등록하기까지 큰 결심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번엔 꼭 도전해보고 싶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수영 강습을 다니다 피부병에 제대로 걸려 한참을 고생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수영장 자체를 싫어했다. 딱히 수영을 해야 할 필요성도 못 느꼈다.
그런데 직장인이 되어 호캉스와 동남아 휴양여행이라는 걸 다니면서 약간의 결핍을 느끼기 시작했다.
비싼 호텔은 수영장도 좋기 마련인데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기도 했고, 전망이 끝내주는 인피티니 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발을 동동거리며 걸어 다니는 것뿐이라는 게 좀 슬펐다.
유유히 잔잔한 물살을 만들며 수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멋있어 보이던지.
몇 년간의 결핍이 가득 찼을 때, 마침 새로 시작한 고강도 서킷 트레이닝을 즐기게 되며 나는 운동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고, 새로운 유산소 운동에도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차올랐다.
수영은 그렇게 2023년의 버킷 리스트에 올랐고, 지금이 아니면 또 무한정 미루게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용감하게 배워 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무려 20년 만에.
수영장은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춥고, 나는 너무 헐벗었고, 너무 과하게 밝고, 강사들은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왜 수영 강사님들은 다 그렇게 무서울까..? 아마 잘 안 들려서 맨날 소리를 질려야 하다 보니 일할 때 성격이 점점 날카로워 지나보다..)
나는 쭈볏쭈볏 초급반 강사에게 다가가 처음 왔다고 했다.
“수영 전에 어디까지 배우셨어요?”
“처음인데요.”
“아니 그래도 어릴 때 안 해봤어요 수영?”
“아니 저… 초딩 때 잠깐 해본 게 다인데..”
“그니까 뭐 옛날에 해봤네~ 일단 해봐요”
“...?”
그렇게 나는 수영장에 간 첫날 물속으로 반강제(?) 입수를 당했다.
수업의 시작은 킥판을 잡고 하는 발차기 연습으로, 머리를 물에 박고 발차기로만 가는 것이었는데 발차기를 두 박자하고 고개를 내밀어 숨을 쉬라고 했다. 강사는 내게 킥판을 쥐어 주고 수강생 줄의 가장 뒤에 끌고 가 세웠다. 그리고 저기 레인의 중간에 서서 와보라는 손짓을 했다.
20년 동안 튜브 없이 제대로 물장구를 쳐 본 적도 없는데… 이게 될까?
그래도 일단 해보라고 하니 킥판을 생명줄처럼 부여잡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고개를 쳐 박은 채 발로 벽을 힘껏 밀었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킥판을 잡은 손을 뺀 모든 몸이 가라앉은 채로, 발차기라기보다는 발버둥을 치며 허우적대고 있는 나를 본 강사는 심각성을 깨닫고 나를 다시 불러 세웠다. 그리고 허리에 보조 기구를 달아줬다. 그걸 달고 나니 그래도 몸이 떠서 찔끔찔끔 나아갈 수 있었다.
이 좋은 걸 왜 진작 달아주지 않았담??
나는 신이 나서 열심히 발을 차며 호흡을 내뱉고 나아갔다. 그런데 허리가 뜨니 앞으로 갈 순 있었지만 숨이 엄청 차고 힘들었다.
무엇보다 허리가 너무 아팠다.
물에서 몸이 잔뜩 긴장한 채로 고개를 들어 올리니 숨을 들이쉴 때마다 자꾸 허리가 꺾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있는 힘껏 고개를 빼들고 숨을 쉬지 않으면 질식사할 것 같았기에.. 나는 허리를 포기했다.
첫날은 정신이 하나도 없는 채로 그렇게 발차기를 하고, 허리 통증을 얻고 왔다.
이틀 뒤, 두 번째 수영 수업.
첫날의 경험은 꽤 절망스러웠지만 일단 등록했으니 다녀보자는 굳은 의지로 수영장을 갔는데 시련이 닥쳤다.
강사가 오늘은 2번째 시간이니 등에 아무것도 달지 않고 해야 한다는 말을 했던 것이다. 아주 공포스러웠다.
'수영장이란 곳은 원래 이렇게 무자비한 곳인가? 내가 스파르타 수업에 잘못 들어온 걸까..?'
이미 늦은 온갖 후회를 하고 있는데 어느덧 내 차례가 다가왔다. 걱정이 됐지만 딱히 물 공포증도 아니었기에 ‘그냥 까짓 거 해보지 뭐’, 하는 심정이 되어 그냥 물에 몸을 내던졌다.
역시나 상황은 첫날과 똑같았다.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고 가라앉는 통에 앞으로 나가는 것도 숨을 내쉬는 것도 배로 힘들었다.
그래도 나아가야 했다. 수영장 레일 안에 들어가면 일단 앞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몸이 자꾸 가라앉으니까 연속해서 갈 수가 없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두 번 정도 음-파를 하며 발차기를 힘겹게 한 후 땅에 다리를 짚고 서서 동동거렸다.(이미 거의 다리가 다 내려와 있어서 힘들게 설 것도 없었다) 그런 뒤 숨을 좀 고르고 다시 출발했다.
한참을 그렇게 나름 열심히, 힘겹게 나아가고 있는데 저기 멀리서 강사가 그런 나를 발견하고는 버럭 화를 내며 나에게 소리쳤다.
"아니 회원님!! 왜 자꾸 2번 갔다가 서 버리세요??!!"
그냥 가면 되는데 자꾸 멈춘다, 힘들어도 그냥 해라. 그래야 나아질 것 아니냐..
뭐 이런 내용의 윽박지름(혼냄?)이었다.
‘아니, 안 돼서 그러는 건데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나는 갑자기 내리꽂힌 호통소리에 놀랐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혼나보는 것도 오랜만이라 당황스럽고, 그게 그렇게 화까지 낼 일인가 싶었다.
무엇보다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지금 안 되는 스스로가 제일 답답한데 왜 내게 화를 내는지 서러웠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몸뚱이에 대한 답답함과 힘듦과 짜증이 한꺼번에 차올랐다.
그리고 순간 갑자기, 나조차 당황스럽게, 툭 터지듯 눈물이 고여버렸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별안간 터져버린 눈물은 댐이 터진 듯 확 차올랐고, 이미 눈가에 찰대로 차서 그렁그렁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지 못한 가장 큰 문제는 나의 수경이었다.
수경을 까먹어서 미리 사지 못하고 1층의 용품샵에서 샀는데, 뭣도 모르고 수경을 고르던 나에게 사장님은 ‘잘 보이려면 흰 거 투명이 좋고… 뭐 검정도 있고..‘라며 수경을 소개해줬다.
난 쌩초보라 그저 앞이라도 잘 보고 싶어서 투명수경을 샀을 뿐인데, 수영장을 들어가 보니 다들 밖에서는 내 눈이 보이지 않는 미러 수경이나 코팅된 컬러렌즈 수경을 쓰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몸뿐만 아니라 눈까지 헐벗은 상태였던 거다ㅎ 아주 취약한 상태.
그렇게 나의 수경은 눈물 가득한 내 눈을 여과 없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었고, (아마 수경이 눈을 꽉 눌러 시뻘건 눈이 더 도드라 보이지 않았을까?) 너무 부끄러워서 하늘을 보고 참으려 애썼지만 한 번 차오른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강사도 눈치를 챘는지 목소리가 수그러들며 조금 너그러워졌다. 수업을 이어 나가야 하니 어찌어찌 계속 다음 바퀴를 도는데, 이번엔 "봐봐 할 수 있잖아! 잘하네!"라며 칭찬의 소리를 쳤다..^^
그렇지만 이미 늦었고, 나는 진이 빠졌고, 너무 쪽팔렸고… 어떻게 나머지 수업을 끝내고 수영장을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냥 지치고 힘들었다.
나는 그걸로 성에 차지 않았는지 집에 와서도 기다리던 남자친구에게 그날 일을 쏟아내다가 또 대성통곡을 했다. 31살에 운동 배우다 혼나고 애처럼 펑펑 울다니.. 그게 그렇게까지 서러울 일인가?
보통의 나는 잘 놀라지도 않고 남들 앞에서 울지도 않는다. 호락호락한 성격이 아니라 누군가 내게 화를 낼 때도 같이 바득바득 따지는 편인데, 대체 왜 그랬을까?
진정이 된 후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왜 그렇게 울었는지 그제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실 그 무렵 나는 꽤 애를 쓰고 있었다. 수영뿐만 아니라 내 삶에서도.
나는 물속이 아니라 물 밖에서도 답답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지난번 코치의 충고와 각성 이후로 미친 듯이 일상에서도 일에서도 인풋을 때려 박으며 스스로를 힘들게 몰아붙이고 있었는데, 모든 위대한 일이 그러하듯 당장 눈에 보이게 나아지는 건 없었다.
빠르게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답답해하는 성향을 타고 난 탓에, 그 무렵엔 그 답답함과 지루함을 최선을 다해 견디며 포기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 중이었다. 변화와 성장이 절실했다.
그런데 큰 맘먹고 도전한 수영은 내 몸뚱이마저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좌절을 안기며, 내 답답함을 2배로 만들었던 것이다.
물속에서 나는, 그 즘의 나처럼 열심히 발버둥을 치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거의 제자리에서 머물렀다.
강사의 호통은 내가 스스로에게 치는 호통이 되어 괴로웠던 내면의 한 부분을 툭 건드렸던 것이다.
나는 나조차 애쓰고 있는 스스로를 몰라주고 강사처럼 윽박지르고 있었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한다고 하는데 빨리 잘 되지 않는 걸 당장 어떡하라고!!’
‘겉으로는 티 나지 않아도 내 딴엔 엄청나게 애를 쓰고 있는데. 그걸 왜 몰라줄까??!’
눈물이 터지는 순간 내 안에서 떠오른 이런 생각들은 그동안 수영 강사처럼 스스로를 윽박지르고 있던 나에게 외치는 울분이었다. 그 눈물은 강사 때문이 아닌 그간 눌러왔던 나에 대한 답답함과 이해의 분출이었다.
그날의 쪽팔림은 내 수영 의욕을 꺾었을까?
아니, 난 오히려 오기가 발동했다. 일단 배우기로 결심한 이상 잘하고 싶었다.
‘두고 봐라, 내가 얼마나 잘 해내는지 보여주지!!’ 이런 혼자만의 이상한 오기(?)로 난 물개로 거듭나기로 결심했다.
강사님에 대해 안 좋게 쓴 것 같지만 사실 츤데레 스타일에 나름 잘 챙겨 주셔서 4달 동안 잘 다녔습니다. 수영 강사님들은 왜 고급반으로 갈수록 깡패력이 늘어나는지..? 나의 초급반 선생님은 츤데레 스타일 아저씨였는데 중급반 선생님은 좀 더 과묵하고 카리스마 있었고, 고급반 선생님은 그냥 깡패 그 잡채였음ㅎㅠ 스파르타 강습이 엄두가 안 나서 오리발 사고 중급반 가라고 할 때 수영장 관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