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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YNO Nov 24. 2024

31살에 수영을 배우다 펑펑 울었다 - (2)

물속에서 내 팔다리로만 유유히 움직이는 희열, 그 자유로움

지난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notyoungnotold/17




지난 글에서의 쪽팔림과 호통 이후 나는 오기가 잔뜩 차올랐다.

댓글로 많은 분들이 지적해 주셨듯이 분명 강사의 잘못이긴 했지만 그대로 수영장을 도망치듯 그만두기도, 그 상태로 풀이 죽어서 계속 지지부진하게 수영을 배우기도 싫었다.



그때부터 난 모든 수영 유튜브를 섭렵했다.

일단 다음시간 수업을 가기 전까지 발차기에 관해 미친 듯이 찾아봤다.

아래의 선생님들 포함 알고리즘에 뜨는 영상은 죄다 봤는데, ‘자유형 발차기’ 하나는 아래 영상이 감각을 찾는데 제일 도움이 됐다. 나는 이 영상도 까먹지 않게 여러 번을 반복해서 봤다.

https://youtu.be/fipv3wUXDq8?si=vVbXiKj_gZltrHfh



매일매일 영상을 찾아봤던 내 유튜브 수영 선생님들. 역시 물에서 몸 쓰는 것도 배움과 연습만이 답이었다.



사실 엄청 많은 사람들이 함께 듣는 강습이었다 보니, 수업 시간에는 자세히 가르쳐주는 게 없었다.
내가 계속 발차기를 제대로 못하니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발을 ‘동동 동동’ 차라는데, 동동 동동…? 내가 그렇게 한 방에 동동 동동을 알아듣고 할 수 있으면 이렇게 처절하게 배우고 있겠냐고요..ㅎ



그런데 유튜브를 열심히 보다 보니 그 ‘동동 동동’의 느낌을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영상에서 배운 대로 가서 시도해 봤는데, 몸이 훨씬 더 잘 쑥쑥 나갔다!!! 유레카를 외치게 되는 그 희열은 엄청났다.
그렇게 내 수영 실력은 강습을 갈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그땐 정말 하루 종일 수영생각을 했다.
출근길에, 점심시간에, 퇴근하고 수영장 가면서, 끝없이 영상을 보고 그걸 따라 몸을 움직이는 감각을 상상했다. 매일 엄청난 양의 영상 섭렵과 이미지 트레이닝의 힘으로, 결국 나는 울고 난 뒤 몇 번의 수업만에 초보반 줄의 거의 최상단 자리로 이동했다.
(모르는 분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수영강습은 일렬로 늘어서서 차례로 출발하는 방식이라 자연스럽게 선두에는 빠른 사람들이 서고 느릴수록 뒤에 서게 됩니다. 앞에서 늦으면 뒤에서 계속 밀리니까요! 그래서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기분을 느끼며 열심히 할 수 있게 됩니다..ㅎ)




수영은 마치 나와 밀당을 하는 것 같았다.


빨리 늘지 않으니까 답답하고, 힘들고, 샤워를 2번 하느라 한참 걸리는 것도 매번 피곤했다.
가기 싫은 기분이 자주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또 엄청 가고 싶었다.
땅 위에서 땀 흘리는 것이 아니라 물에서 버둥대며 운동하는, 수영만이 주는 독특한 감각이 있었다. 몸이 노곤해지면서 개운한 ‘물 마사지’의 느낌을 나는 알게 되었다.

또 갑자기 물속에서 몸이 조금 더 잘 나가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주말이나 수업 없는 날 조금 쉬면 갑자기 막 물에 뛰어들고 싶다가도, 또 막상 가면 하기 싫어지고를 반복했다.



내 생각엔 수영은 완벽한 계단식 성장 운동이다. 한참 똑같다가 갑자기 쑥 느는.

그러니까 인내가 많이 필요하다.

유튜브를 섭렵하며 이론과 이미지 트레이닝을 반복한 결과 절대 안 되던 발차기가 갑자기 힘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잘 나가게 되고,

자유형은 키판 없이 맨몸으로 하는 게 너무너무 힘들고 버둥대기만 하는 느낌이었는데 어느 순간 물을 밀어내며 팔을 뻗은 뒤 몸이 쭉 나가는 글라이딩 감각이 확 왔다.

평영은 발차기도 항상 제자리걸음에, 팔을 같이 하려니 과부하가 와서 3번을 연속으로 나가지 못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팔다리가 리듬을 찾아 움직이며 몸이 웨이브를 타고 나아갔다.



실력이 늘지 않고 답답한 순간을 버텨내고 묵묵히 계속하다 보니 결국 발전하는 순간이 왔다. 그런 답답한 순간 뒤의 성장과 성취는 훨씬 더 달콤했다.

내 몸이, 물속에서 아무런 도구의 도움 없이 물을 가르며 나아가는 느낌은 신세계였다.




그렇게 4개월. 나는 여전히 힘들게 나아가긴 했지만, 자유형-배영-평영까지 할 수는 있게 되었다.
이젠 수영강습의 목적 중 하나였던 호텔 수영을 시도해 볼 차례였다.

나는 혼자 여행하는 걸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다. 아니, 혼자만의 해외여행이 꼭 필요하다.

아무도 날 모르는 낯선 곳에 혼자 떨어져서 정말 나의 순수한 모습으로, 새로운 것들을 보고 경험하는 게 참 좋다. 그 시간 속에서 그동안 맴돌던 생각들이 정리되고, 나와의 대화를 깊게 하며 에너지를 충전한다.


그런데 동남아 휴양 여행은 아직 혼자 가보지 못했었다.
모름지기 휴양 여행이란 리조트에 틀어박혀서 수영하고, 마사지받고, 책이나 잔뜩 읽고 푹 쉬는 것인데 수영조차 할 줄 모르면 너무 심심할 것 같았기 때문.


그런데 이젠 수영을 배웠으니 혼자 휴양 여행을 가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나는 그 해 늦은 가을 한국의 추워진 공기가 싫어졌을 때, 베트남 나트랑으로 혼자 여행을 갔다.


2일은 시내에서 관광을 하고 2일은 리조트에서 혼자 쉬었는데 그 리조트에서의 2일 동안 나는 원 없이 수영을 했다. 리조트 안 3개의 수영장을 돌며 몇 시간 동안 물에서 한참 헤엄치다가 나와서 선베드에서 몸을 말리며 책을 읽고, 다시 들어가서 수영하고를 반복했다.

넓은 풀에서 자유형도 하고 평영도 하고 유유히 배영을 하며 누워서 하늘도 바라보며 마음껏 물장구를 치는 기분은 꽤 황홀했다.

정말 천국 같았던 나트랑 리조트



매년 다시 오고 싶을 만큼 혼자 하는 휴양 여행이란 건 끝내주게 멋진 것이었고, 용기 내어 도전한 수영이 그걸 할 수 있게 했다.

용기 내서 수영을 배우지 않았다면, 쪽팔린다고 중간에 그만뒀다면, 절대 느껴보지 못했을 경험이었다.


그렇기에 울면서 힘들게 배운 수영이지만, 수영을 배운 것은 내가 작년에 제일 잘한 일이다.

나는 좀 더 자유로워졌다. 내 세상은 땅 위뿐만 아니라 물속까지 넓어졌다.

힘들었던 처음의 순간을 이겨내고 계속 강습을 나갔던 스스로가 꽤 대견하게 느껴진다.

역시 처음은 누구에게나 힘들기 마련이고, 그 구간을 견뎌내고 계속하다 보면 힘들고 불편한 일도 편해진다는 걸 수영을 하며 다시 한번 배웠다.



 인생이란 참 정직해서,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해내면 결국엔 재밌는 것이다.



수영 강습에 대한 비판을 하려고 시작한 글은 전혀 아니었는데 이전글이 갑자기 너무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어요..!ㅎㅎ 전 그저 수영을 배우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배우면 너무 좋다고 추천해주고 싶었답니다?ㅎㅎ 혹시나 제 글을 보고 수영 강습을 고민하다 포기하시는 분들이 있을까 봐 걱정되어요ㅠㅠ 어디까지나 제가 겪은 수영장, 강사 1명의 사례일 뿐이라는 걸 꼭 기억해 주세요!!
저 같은 경험이 걱정된다면 일단 강습을 1번 들어보고 수영장을 결정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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