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도, 아니 혼자라서 더 재밌는 여행

유흥에서 고요한 밤으로, 변해가는 나를 발견하는 여행

by NYNO


발리 도착한 지 딱 7일째 되는 날.

느지막하게 일어났다. 어젠 아침 일찍 요가를 하고 숙소까지 옮기느라 꽤나 피곤한 하루였기에 오늘은 좀 쉬어가기로 한다. 여유롭게 조식을 먹고 아궁라이 뮤지엄 산책을 위해 나섰다.


이 숙소는 요가반 후문 골목 바로 옆에 있는 아늑한 방이었다.

바로 위에 코코마트가 있고, 걸어서 몽키포레스트를 갈 수 있었지만 조금은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어 꽤나 한적했다. 왕궁 근처라 활기차고 번잡했던 이전 숙소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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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 쪽으로 내려가는 길도 북적이는 시장 근처와는 다르게 조용했다. 아기자기한 길을 따라 오전 10시쯤 뮤지엄에 도착. 이 시간엔 뮤지엄도 사람이 거의 없었다. 조각가 아저씨가 나무를 깎는 소리, 동동 거리는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소리, 닭장 안의 닭 소리, 분수의 물소리 외엔 고요한 숲 같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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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9162.JPEG 뮤지엄만큼 좋았던 뮤지엄 안 카페에서의 여유.


2시간 정도를 뮤지엄에 전세 낸 듯 돌아다녔다.
텅 빈 전시실에서 작품을 보며 사색에 잠기고, 무료 커피 1잔을 제공하는 뮤지엄 안 카페에서 나무랑 물가에 비친 햇빛의 울렁거림을 보며 멍도 때렸다. 뮤지엄을 나와 들른 카페도 매우 세련됐지만, 사람이 거의 없었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 엄청나게 맛있는 뺑 오 쇼콜라와 아이스 라떼를 마시며 글을 썼다.
숙소로 돌아와 쉬다가 오후 5시에 느지막히 인요가 클래스를 들었다.


수업을 마치고 나니 벌써 저녁 7시.
해는 이미 다 져 있었고, 몸은 아주 개운하면서도 노곤했다. 숙소로 가려니까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는데, 그마저 운치 있었다. 젖은 채로 들어와 샤워를 하고 나오니, 마침 그랩으로 시킨 치킨사테와 새우볶음밥이 도착했다. 저렴한 와룽 음식이었지만 놀랄 만큼 맛있었다. 그렇게 맥주 한 캔과 저녁을 맛있게 먹고, 포만감을 만끽하며, 물기 어린 머리를 말리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웠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채 그치지 않은 빗소리만이 고요 속을 메우고 있었다.


그 순간, 아주 잔잔하지만 진한 행복감이 퍼졌다.

문득 깨달았다. 아무도 만나지 않은 하루가, 이 고요한 밤이 이상하리만치 좋았다.

예전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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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부터 혼자 여행을 참 많이 다녔다. 나에겐 여행이란 혼자 떠나는 게 디폴트 값이었다.

혼자 떠났지만, 떠난 곳에서도 늘 혼자이진 않았다.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는 게 그렇게 재밌었다.


독일 교환 학생 시절엔 틈날 때마다 혼자 유럽 곳곳을 여행하면서 호스텔 친구들과 맥주 한 잔, 클럽까지 이어지는 일정이 기본이었다. 호스텔에 외국인 친구가 없으면 네이버 카페에서 한국인 동행을 찾았다. 그렇게 프라하에서 유명한 클럽도 가고, 리스본에서 야경 투어도 했다. 직장인이 되고 난 후에도 치앙마이에서 야시장 팟을 구했다가 그 동행들이랑 며칠을 놀러 다녔다.(여행 내내 취해 있었다는 소리다ㅎ)


그런 내가 지금, 발리에 와서는 거의 갓생을 살고 있었다.

격일로 새벽 6시에 일어나 요가를 하고, 하루 종일 혼자 구경하고 밥을 먹고, 밤이면 조용히 숙소에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든다.

굳이 같이 놀 사람을 찾고 만나느라 에너지를 쓰고 피곤해지기보다는 혼자 시간을 차분히 보내는 편이 훨씬 좋았다. 물론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쓸쓸하거나 적적한 순간이 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고요함조차도 피하지 않고 느껴보는 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변한 스스로를 자각하고 나니 문득 놀라웠다.

어쩌면 예전의 여행은 세상을 만나고 사람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면, 지금은 ‘나‘를 더 깊게 만나는 게 필요한 시기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금 떠올렸다. 사람은 이렇게 계속해서 변하는 존재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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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처럼 밤마다 동행을 찾아다니던 나도, 지금처럼 조용한 방 안에서 혼자 있는 나도, 모두 나다.

그저 다른 시기의 내가 필요로 했던 방식일 뿐.

지금은 여행지에서 혼자 오롯이 시간을 보내며 차분하게 힐링하는 게 좋지만, 또다시 누군가와 시끌벅적한 여행을 좋아하게 될 날도 언젠가는 올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놀기 좋아하는 나도, 고독을 즐기는 나도 그저 ‘이 순간의 나’ 일뿐이니 모두가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저 지금 순간의 내가 필요한 대로, 억누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행하는 삶을 앞으로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면 순간순간의 다른 내가 모여, 나이가 들수록 더욱 단단하고 다채로운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분명한 건, 그 여정을 나 스스로 충분히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그때그때의 나를 온전히 살아내고 싶다.

그게 내가 바라는 단 하나의 인생 여행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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