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인이라면 응당 자아가 완전히 죽은 상태여야 합니다.
자아실현이 아닌 자기 부인, 정체성의 싸움과 영적 전쟁에서 질 것인가, 이길 것인가 그것이야말로 참 성도로 가를 수 있는 판별 요소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우리는 자아실현에 대해서 학교에서 배우고 그것이 인생 최대 목표인 양 깨닫고 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기 부인의 크리스천 세계관은 우리가 알던 것과 전혀 다른 세계관입니다.
자아를 오히려 주저앉히고 사람의 모든 욕구와 욕망, 자기애, 자기 주도적인 삶이 아닌
자아가 죽은 상태로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시는 길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자기 부인이라는 개념이 도통 이해가 안 될 수 있지만 우리의 탐심과 탐욕, 하고 싶은 것만 추구하며 허둥지둥 허송세월 노력만 하며 살았던 인생이 하나님께 주도되어 완전히 의탁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키우는 고양이가 쥐를 잡아와서 주인한테 보여주며 자랑하듯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아를 죽인다는 건 내 안에 마귀를 깡그리 잡아서 하나님께 내다 바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세신사로 비유하자니 좀 그렇지만 몸이 근질거리면 때를 밀러 목욕탕에 가서 세신사에게 몸을 맡기듯이
죄라는 때를 벗기러 교회에 가서 예수님께 다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에 따른 상급으로 성령을 부어주심 같습니다.
설사 성령 체험을 경험했어도 수많은 은사를 가졌어도 합당하게 사용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경험만으로 끝이 아닌 성령의 9가지 열매(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맺는 삶이어야 합니다.
성경 인물 중에도 시작은 거창했으나 끝이 초라했던 삶을 살다가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근래의 유명한 선교사님 한분도 아직은 과정 중에 있으나 실족하여 회개 중에 있는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유년부터 노년을 지나 죽음 직전까지 우리는 열매를 맺고 드러나는 삶이어야 합니다.
제대로 영접하고 믿기만 하면 강력한 성령의 불로 악한 마귀를 불태우십니다.
라이터에 시퍼런 불처럼 겉불꽃 속불꽃이 있듯이 지옥의 타는 불과도 다르고 더 뜨겁고 강력한 성령의 불일 겁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이 무언가에 있어 하수는 분주하고 요란하며 번거롭고 기복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수는 간결하고 심플하며 단조롭고 평온합니다.
진리를 믿고 사는 사람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요즘 몇몇 사람들과 자기 부인과 영육의 강건함을 위한 훈련방을 만들어 서로 나누고 동역하는 중입니다.
영적인 분별력을 떨어뜨리고 둔감하게 만드는 디지털, 미디어를 금식하면서 대체로 신앙적으로 유익한 거나 업무적으로 꼭 필요한 것만 나누는 모임인데 큐티 나눔이나 말씀 통독 같은 것을 공유하는 모임입니다.
시각적인 효과로 폰 배경에 시작 날짜 디데이 설정하고 큐티 점검, 말씀 몇 장, 정시에 기도 시작해서 몇 분을 했는지, 가정예배 시행유무, 영육의 강건을 위한 운동 시행유무까지 다채롭게 나눕니다.
프로필 사진이나 배경사진은 은혜받은 말씀으로 고정해 놓고
미디어로 말씀찬양 하나님관련된 이외의 것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나 주의할 점은 아침에 일어나서 눈뜨자마자 폰 보지 않기가 핵심입니다.
9시 12시 6시 10시 이런 간격으로 업무상 연락은 제외하고 되도록이면 5-10번 넘지 않도록 절제합니다.
안드로이드는 설정에서 디지털 웰빙, 아이폰은 스크린 타임 설정으로 체크를 할 수 있고
웹툰, 넷플, 유튜브 쇼츠 지우기와 구독취소, 인스타, 페북, 당근, 카톡채팅방 친구목록 숨기기 등등 다양하게 접목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도 여느 스펀지솜과 다를 바 없이 쭉쭉 빨아들이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알약을 안 먹다가 먹으면 결핍되었던 것들이 충족되듯이
인풋 아웃풋 개념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너무나 중요합니다.
먹물이나, 흙탕물에 맑은 물을 계속 공급하면 맑아지듯이 기도와 좋은 말씀 설교 같은 것을 계속 입력시키고 받아들이면 이야기를 하고 나눌 때에도 좋은 것만 흘러넘치게 됩니다.
하지만 계속 구정물을 투입한다면 나오는 것도 더러운 것들 일 수밖에 없습니다.
암이 걸려서 생사고비를 넘긴 시한부인생도 아니고 살면서 크고 작은 차 사고의 위험이나 위기 또한 있었지만,
세상에 기준으로 봤을 때 저는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시편 1편과 같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을 알아가며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사는 사람이 되어감이 진정 복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서야 복 중의 최고의 복은 예수 잘 믿는 복이였음을 깨닫고 사는 중입니다.
가인과 같이 불순종의 아이콘이 아닌 순종의 모습으로 주어지는 복과 은혜를 다 누리며 감사의 삶을 사는 모두의 인생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존 비비어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순종하지 않는다는 기가 막힌 비유로는 집을 지어서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데 집 바깥에는 강도와 살인자와, 강간범이 돌아다니는 상황에서 대문과 출입문이 없음을 의미하는데 마음속의 굳게 닫혀 있던 순종의 문을 활짝 열어 온갖 더러운 마귀들이 쏟아져 들어옴을 인정하며 죄를 허락한다는 것이고 더 이상 하나님께서는 자유의지를 주셨으므로 그때부터는 개입하시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우리가 고향에 타지에 사는 친구가 놀러 오면 구석구석 데리고 다니며 소개해주듯이 복음도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본인이 은혜받고 채워지면 나누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고 기도 말씀 복음의 산증인 되는 겁니다.
일평생 불신자로 본인의 니즈대로 충족시키며 살았던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안타깝게 살았던 것일 수도 있지만 결국 하나님 외에 우상 숭배에 빠져 살았다고 하면 너무 과격한 표현인지요
맛집이라 하면 줄지어서 몇 시간이나 웨이팅 하고 로또 1등 명당이라고 하면 너도나도 줄을 서는데
모든 만물을 주관하고 창조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면 다들 배척하고 기피하는 건 왜 그런 것일까요
이제는 진리를 모르는 것도 죄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모르는 이들에게 아는 이들이 전파하지 않는 것도 죄라고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알고도 모른 체하는 이들은 더 큰 죄며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 주며 그들의 영혼 구제에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