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핵심 챕터이자 여러분들께 꼭 전달하고픈 메시지를 담은 장입니다.
참 신앙인으로 사는 것은 무엇일까 깊이 묵상하고 생각하며 수많은 설교자들의 가르침과 말씀 읽기, 신앙서적과 조언을 통해 정리해 보며 견해를 적어보았습니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기도제목들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꼭 기도응답이 있어야만 좋은 기도일까요
기도도 죽은 기도가 있고 하나님께 상달되는 살아있는 기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죽은 기도라는 의미는 말 그대로 개인의 욕심이 많이 들어간 불순한 의도로 구하는 기도입니다.
주님이 받으시는 살아있는 기도란 진리의 말씀에 근거한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기도응답의 유무보다도 기도 자체가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함으로써 이미 그 기도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다면 이루어진 줄 알고 하는 기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도만큼 많이 해도 나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을 동의하실 겁니다.
기도 응답을 99프로 받는 어느 모 교수님께서는 늘 감사와 순종하는 마음으로 마음속에 욕, 불평, 불만을 일절 하지 않았을 때 응답을 줄곧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데 왜 낙심하고 살아가나 우리는 그 부분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낙심과 신뢰는 반대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신뢰하면 기대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낙망하고 넘어져서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고 회복해야 합니다.
또한 자아를 깨뜨리고 죄인임을 회개해야 합니다.
예전에 자아실현을 추구하고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에고라는 적이라는 책 제목도 있듯이 완고한 자아는 신앙생활의 걸림돌입니다.
안타깝게도 자아가 강하고 본인의 의가 세면 셀수록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어려워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과 그분의 음성을 청종하는 자를 사용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내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 사랑하며 예수 외에 사랑하는 것들을 내려놓고 우상이 되지 않도록 우선순위를 점검해야 합니다.
회개하며 그동안 하나님 외에 우선적으로 행했던 모든 부분에 대해서 철저히 회개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다윗의 밧세바 사건처럼 하나님께는 뻔뻔하다시피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에 울부짖음을 들으십니다.
회개할 때 악한영이 빠져나가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경중에 따라 들어주시거나, 용서하지 않으시고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도 기억지 않으시는 그분께 모든 죄를 맡겨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참신앙인으로 바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방법 중에는 재차 강조하지만 미디어금식이 핵심 관건입니다.
미디어를 자주 접하면 분별력이 떨어지고 사고능력이 현저하게 낮아집니다.
또한 세상에는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 육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철저히 미디어 금식하며 간절함으로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한 와중에 곡기를 끊고 생명을 걸고 하는 금식기도라던지, 밤을 새워 드리는 철야기도, 일을 중단하고 기간을 정해서 하는 작정기도, 항상 위급할 때나 어떠한 상황이든지 신속한 기도응답을 구하는 화살기도를 통해 자주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가진 것이 너무나도 많고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 모든 걸 챙기고 휘둘리며 살자니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이도 저도 못하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많은지요.
하나님 외에 모든 불필요한 것은 버리고 필수적인 것들만 선택해서 그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기다려주시지만 세상에서의 시간은 유한합니다.
당장 오늘이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는데 우리는 영원할 것이라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지금 당장 버릴 것을 버리고 가장 소중한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또한 명확하게 목표설정해서 한 가지만 몰입해야 합니다.
그 한 가지는 바로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훈련시키시기 위해 극단적인 상황으로 연단시키십니다.
우리는 그러한 연단의 과정 속에서 순도 백 프로의 순금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그 변화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아침 눈뜨자마자 말씀 읽으며, 하루에 시작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아침에 먹는 가장 첫끼가 중요하듯이 우리의 영성을 위해 말씀을 먹고 생활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몰입할 수 있도록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동시다발적으로 필요한 작업입니다.
또한 이 모든 것이 루틴이 된다면 그때부터는 포기 말고 더 간절히 끈질기게 구하면서 영적 근육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절박함이야말로 예수님을 만나 동행하며 진정으로 거듭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입니다.
이제는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큰 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민족을 살리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우리 신앙인의 정체성입니다.
우리의 자아는 죽고 오직 예수로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삶입니다.
하지만 악한 사탄 마귀는 항상 그분과 분열시키려고 날마다 매시간 틈타고 있습니다.
예수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마귀를 매 순간마다 대적하시길 바랍니다.
사랑의 성령님은 분열이 아닌 늘 연합을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명인사를 우리가 다 알지만, 친분과 연락처는 없듯이 우리가 성령 하나님과 그러한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개인의 신념은 바뀔 수 있지만 진리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은 자기가 죽은 만큼만 순종할 수 있습니다.
믿음과 순종은 한 세트입니다.
이제는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삶이 아닌 부르심의 삶으로 순종하며 살아가시길 원합니다.
그 정체성 싸움에서 자존심과 자아를 내던지고 하나님을 언약을 믿으며 따라가길 소망합니다.
언젠가 하나님을 대면하고 인격적으로 체험하면 기도와 말씀 생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은 행위로 받을 수 없고 오직 행함으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는 것들의 실상임과 같이 그 행함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닌 진정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론 말에도 힘이 있고 그 사람의 세계와 한계를 보여주며, 혀의 권세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언행 역시도 신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말로써 빛과 어둠, 하늘과 바다 온 우주 천지창조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우리는 돈 빌려간 자를 탕감하는 비유와 같이 예수님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함 받았으므로 우리 역시도 타인의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못함은 결국 스스로에게 불행을 초래합니다.
상대방은 피해를 입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용서하지 못함은 스스로 갉아먹고 피폐해져 가는 것입니다.
용서는 죄사함입니다.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십자가의 대속을 말합니다.
죄사함은 대가가 필요하고 결국 내 자아가 죽어야 됩니다.
감정적으로가 아닌 이성적인 용서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상대방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 역시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본인이 살기 위해서라도 꼭 용서하셔야 됩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진정 신앙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말씀은 생명입니다.
육의 양식이 밥이라면 영의 양식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말씀과 기도는 동전의 양면성과 같기에 말씀만 읽고 기도를 안 한다거나, 말씀 읽는 생활이 없는 기도는 한 면만 있는 위조 동전과도 같습니다.
말씀과 기도의 능력을 동시에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굳건한 믿음이 있을 때 사탄마귀의 역사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무한하십니다.
그러니 성령 충만할 때까지 모여서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전도도 좋고 교제도 좋지만 먼저 기도의 불이 붙어야만 합니다.
물질까지 같이 심는 기도를 하신다면 당장에는 거두지 못하더라도 나중에는 더 큰 응답으로 주실 겁니다.
안되면 금식을 해서라도 영을 살리는 기도의 기름, 연료 공급을 해야만 합니다.
단, 금식기도는 노력이 아닌, 성령의 감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창조자의 목적대로 살 때에 생깁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제멋대로 살아봐도 사실 만족감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크로노스의 때가 아닌 하나님의 카이로스의 때가 무엇인지 구하며 살 때에 참 은혜와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작은 여우 한 마리가 포도농장 전체를 망치듯이, 항상 빈틈을 경계해야 합니다.
악한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늘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회개하며 마음을 깨끗하게 청소하고도 성령이 채워지지 않으면 악한 귀신 일곱이 더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육신의 연약함 또한 끝까지 돌파해 내면 평안 해집니다.
늘 신앙의 위기는 찾아오기에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다니면서 어떤 누군가로부터 열매와 성과의 대접받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그 상급은 오직 하나님께만 받는 것이며 하나님 사랑이 먼저 된다면, 내 몸 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며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하는 것을 주님께 하는 것임을 늘 인지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찾아올 고난이 주님 앞에 더 몰입하게 하는 기도의 동력으로 쓰임을 늘 알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성령님의 내재와 소통을 구해야 합니다
문제를 주시는 하나님의 원래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끌어오시기 위함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보통 대부분은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계속 반복하며 제자리걸음 하는 링반데룽의 신앙이 아니라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함으로 질병의 치유와, 인간관계나, 금전적인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 상급을 받는 것입니다.
탁월함과 생명력을 전달하기 위해서 늘 책과 말씀을 가까이하며 기도하고 전달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참 신앙인의 원칙은 먼저 하나님과의 인격적교제과 되는 신앙생활 하기, 가정을 세우고 지키기, 부르심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겸손과 순종 및 정직의 삶을 살고, 건강 관리(육체를 주님 주셨고, 성령 거하실 거룩한 성전)를 늘 생각하며 우리가 그리스도의 군사로 마귀를 죽이는 하나님의 불화살로 사용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내면의 모든 상처와 쓴 뿌리를 제거하고 오직 개인과 가정, 교회와 일터,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나가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의 생명력은 교회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민족입니다.
기도로 대한민국의 역사는 지금도 쓰여 가고 있습니다.
개인 다음으로 가정의 자녀 역시 가장 큰 숙제입니다.
자녀와 열방을 동시에 변화시켜야 미래 세대는 희망이 있습니다.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비밀병기는 우리와 우리 자녀, 가정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물질로 풍요롭게 키우지 말고, 자립성 키워주며 경제적 환경 안된다면 사랑을 풍족하게 줌으로써 예절과 가정 식탁에서 크리스천의 정체성에 대해 교육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무조건 미디어를 금식시켜야 합니다.
인권보다는 더 먼저 신권, 하나님과의 수직적 구조라는 문화가 인지되어야 합니다.
그 신앙 전수를 위해서 반드시 가정예배로 소통하고 같이 모여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주일 성수는 하나님이 영광 받으심도 있지만 주일예배를 지킴으로써 우리의 가정예배가 지켜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쉽게도 지금 역시 마귀의 군대도 정렬 중입니다.
적그리스도를 통한 마지막 때의 환난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지만 분리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빛이자 소금인 우리의 역할은 앞으로 에 있어서 더욱 빛을 발할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용서하며 회개로 매듭짓는 인생 되시길 바랍니다.
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은 이 사랑과 용서에서 판별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가치관이 변하고 진정 용서할 수 있습니다.
절박함으로 주님의 마음을 간구하며 버릴 것을 버리고 작은 것으로라도 가장 낮은 자리에서 주의 일을 해야 합니다.
교만하지 않도록 늘 경계하고 죄를 범하였다면 철저한 회개 해야 합니다.
성령님과 친밀해져서 카톡이나 전화하듯이 자꾸 얘기하면서 어색한 관계와 침묵을 깨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며 슬퍼하실만한 걸 버리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길 힘써야 합니다.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며 제일 천한 낮은 곳에서 섬기면서 변명하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혹여나 억울한 일이 생기더라도 주님은 다 알고 계신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은 고난이라 여겨야 합니다.
진리를 전하는 일에 즐기고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물질은 고이지 않고 흘러가도록 하며,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주를 잊게 하므로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따르는 자녀들을 끝까지 책임져주십니다.
무엇이든지 진정 하나님의 일인지 분별하는 능력을 키우며 십자가와 부활의 믿음 없이는 절대로 거듭날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늘 하나님의 일만 생각하며 자기 부인이 완전하게 일어나야 합니다.
더러운 마귀 사탄은 자아에 붙어 있고, 단순히 축사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 섭섭한 마음이 들고 자주 낙심하게 된다면, 우리의 자아와 욕망은 십자가로 쳐야 합니다.
금식과 기도생활, 구제는 늘 은밀하게 하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외식하지 말아야 합니다.
중도 포기가 아닌 끝까지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자아실현이 아닌, 자아 숭배가 요즘 시대의 가장 큰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과 겨뤄 이기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과 불순종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소망은 오늘을 살게 하지만, 야망은 우리의 삶을 더 복잡하게 만듭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십자가를 지지만, 나중에는 십자가가 우리를 지고 갑니다.
안되면 울면서 기어서라도 주님께로 가야 합니다.
주님은 얼마나 늠름하게 가는가 보지 않으십니다.
순종하고 경험한 만큼이 딱 내 믿음인 것입니다.
고난과 눈물의 기도로 훈련했던 것이 삶으로 나오는 것이 영성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자의로 하든 타의로 하든지 다 씨를 뿌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선택해도 받을 고생은 다 받는다.
연단의 과정을 인내하며 잘 견뎌야 합니다.
하지만 여호와이레는 사탄의 머리를 밟기에 그분의 준비하심을 늘 기다려야 합니다. 지금의 현대사회는 말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의 산 증인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세계는 인과관계가 반드시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때,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부흥은 살아계신 하나님만 하실 수 있으며, 주님의 임재가 강력하게 임할 때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평양대부흥과 같은 은혜가 교회벽을 넘어 밖으로 나감을 볼 수 있듯이 성령의 바람은 재미와 흥행을 따라가지 않고 사랑과 갈망이 필요한 곳으로 흘러갑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절대 주권을 믿고 신뢰할 때에 부흥이 일어나고, 그 부흥은 세상이 가장 어두울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무늬만 종교인은 참된 예배자를 공격합니다.
지금의 현대 교회의 적은 교회며 서로 시기하고 시샘하며 몇몇 종교인들은 성령의 역사 없는 거짓선지자임을 자처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사람을 통해서 그분의 영광을 보여주시기 때문에 확연하게 티가 납니다.
장군들은 전쟁에서 길러진다고 하듯이 고난 받는 중에 기도로 참 성도가 길러지는 것입니다.
기도의 갈망이 길을 만들고, 혼자 그 길을 가다가도 수 없는 준비된 동역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눈물로 회개할 때 악한 영이 빠져나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왜 오직 예수여야 하냐면 그 누구도 아닌 우리가 미래와 희망을 가지고 은혜로운 삶을 살기를 가장 기뻐하시는 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포기 말고 죽는 그날까지 기도로 승리하는 군사들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