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쩌다 보니 대치동 -2

ㅡ 고3이 되었습니다.

by Anne

엊그제 고등학교 입학한 것 같은데 고3은 금방 찾아왔다.
엄청나게 무섭고 떨릴 줄 알았는데 너무 스르륵 찾아와서 '훗 별거 아니군. 고3 되면 엄청 바쁘다더니, 똑같잖아.'

고2 올라가는 방학즈음부터 대치동 고3커리큘럼이 이미 시작 됐으니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됐다. 우리 아이는 주말반으로 몽땅 몰아서 듣기로 해서 주중엔 자습하고 토, 일요일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3 타임씩 꽉꽉 채웠다.
힘들지 않겠냐고 하니 그냥 자기는 주말에 몰아 듣고 주중에 숙제하고 자습하는 게 편하다고 한다. 이제 머리가 다 커서 머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다.

동네 내신을 다니다가 대치 일타강사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며 달라진 게 몇 가지 있다.

일단 선생님과의 상담이 없다.
각 선생님들의 조교 선생님들이 있긴 한데 학부모와의 소통보다는 아이들과 출결체크, 성적점검, 질문등을 봐주신다.

두 번째는 학원비가 타임당 결제시스템이다.
어플을 통한 출결체크는 물론이고 혹시 아프거나 사정이 있어 결석해야 한다면 어플에서 결석신청을 하면 바로 다음 회차로 1회 미루기나 수업영상자료 받기로 선택을 할 수 있어서 좋다. 데스크에 전화해서 이러쿵저러쿵 할 일이 없어졌다. 물론 아이가 제시간에 들어가지 않으면 전화를 주시기는 한다.

세 번째는 수업자리 신청 시스템이다.
대형강의이다 보니 앞자리가 아니면 칠판글씨나 선생님을 보기 어렵고 중간중간 티브이 화면을 봐야 한다. 또 인기선생님들 중 이원화수업을 하셔서 앞타임은 현강을 뒷타임은 라이브로 화면을 봐야 하니 자리가 나름 중요하다. 학원마다 방법의 차이가 있는데 우리 아이가 다녔던 학원은 정해진시간에 좌석예약시스템이 열리면 원하는 자리를 영화표 예매하듯 한자리 맡으면 된다. 아이가 원하는 자리는 맨 앞자리 약간 오른쪽이었는데 보통 전날 저녁시간에 좌석오픈이라 학생이 하거나 부모님이 해줄 수 있다.
아이가 몇 번 해보다가 시간 맞추기도 어렵고 원하는 좌석이 거의 1분 컷이라 내가 해주었는데 진짜 매번 콘서트 티켓 끊는 맘으로 열심히 클릭해 주었다.

네 번째는 라이딩의 지옥을 견뎌야 한다.
대치동수업은 보통 오전 9시, 1시 반, 6시 반 3타임으로 정해져 있다. 그래서 수업시작시간, 마치는 시간대 교통지옥은 각오하는 게 좋다. 어떤 날은 은마사거리에서 한티역롯데백화점까지 30분도 걸렸으니 미리 일찍 도착하도록 내려주던가 한두 정거장 전쯤에서 지하철을 태워 보내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주말은 지방에서 주말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많고 6월 이후는 반수생들 유입도 엄청나서 몇 번 다녀보면서 아이와 동선계획을 잘해보는 것도 요령이라면 요령이다.
나는 그래서 고사미와 몇 군데 장소를 약속해 놓고 차가 많아서 빠져나가기 힘든 날 복잡한 길을 피해 약속한 장소에서 태워가기도 했다.

고3아이에게도 변화는 있었다.
내신반은 재학생만 있지만, 수능반은 N수생도 함께 듣는 경우도 많아서 분위기가 다르다고 한다. 매번 테스트를 할 때 이미 완성형인 N수생 형누나들이 있어서 자극도 되고 긴장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단점은 대형강의이기 때문에 스스로 잘하지 않으면 수업에 집중하기 힘들고 일일이 개별지도를 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자리 앉아 의욕적으로 수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일타선생님 눈 한번 맞추기도 어렵다.
나도 아이도 모든 것이 처음이라 이렇게 일 년을 듣고 수능까지 잘 유지할까 가 걱정이었는데 어느덧 수능날짜를 코앞에 두었으니 이만하면 잘 적응하고 따라온 것 같다.

무엇보다 선생님을 좋아하는 아이는 자신이 선택한 선생님을 너무 좋아해서 매수업 때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나 선물등을 보여주며 우리 선생님 수업이 얼마나 재미있고 좋은지를 이야기하며 만족해했다. 수업을 듣지 않는 나는 모르는 내용이지만,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인성 좋은 조교선생님들의 질문답변시간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선생님들이 한 번씩 굿즈를 선물해 주신다. 주로 티셔츠나 가방, 텀블러, 키링등이었는데, 무슨 아이돌 굿즈를 받은 것처럼 신나 하며 티셔츠를 입고 다니고 키링도 달고 다니고, 여하튼 선생님을 향한 팬심과 함께 소소한 즐거움과 재미도 있었다.
다만, 선생님을 선택할 때 유의할 점을 하나 꼽자면, 내 아이와 맞는지 여부는 미리미리 인강이나 모의수업으로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리 아이도 몇 분의 선생님들을 고민했었는데 그중 한 분을 오래오래 대기했다가(1월에 대기번호 500번대) 6월쯤 연락받고 현강 듣기 전에 라이브신청해서 들어봤는데 아이하고 잘 맞지 않아 교재만 받고 강의는 듣지 않은 수업도 있다. 유명한 선생님이라 해도 아이의 수준과 스타일을 잘 살펴야 한다. 가령, 수능만점을 목표로 하는 백분위 99%를 무리 없이 찍어내는 아이들의 수업을 백분쉬 80-90%를 겨우 넘는 아이는 소화할 수가 없다. 차라리 내 아이의 수준에 맞는 강의를 선택해서 내가 가진 점수를 탄탄히 유지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는 말이다.

끝으로 대치동 맛집 몇 군데를 소개하며 이번 편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재학생은 윈터스쿨, N수생은 종합반을 다니면 끼니걱정이 없지만 대부분은 점심, 저녁을 사 먹어야 한다. 사실 밥을 두 끼나 사 먹어야 한다는 거는 어쨌든 일이다. 그리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입이 짧고 까다로운 아들 녀석이 맛있게 먹은 맛집, 내가 가끔 같이 먹으면서 맛있었던 곳을 소개하면

생선구이, 찌개가 맛있는 [밥 짓는 집]
파스타가 먹고 싶을 때 대기 없이 먹을 수 있는 [롤링파스타]
일식 덮밥이 맛있는 [동경규동]
맛있는 특별한 김밥이 먹고 싶을 때 [오로라김밥], [오토김밥]
김치볶음밥이 맛있는 [미스꼬레아]
뜨끈한 국물의 라멘이 당길 땐 [키와미라멘]
중식이 당길 땐 [이비가짬뽕]
그 외 각종 패스트푸드점(맥도널드, 버거킹, KFC, 프랭크버거 등), 한티 롯데백화점 푸드코트에 샤부샤부집이나 초밥집
시간이 넉넉하다면 은마상가지하에 맛집 튀김아저씨, 칼국수, 수제비...


어디까지나 나랑 아들의 입맛이긴 한데, 정해진시간 안에 빨리 먹고 다음 수업을 가야 하니까 차분히 둘러보고 할 시간이 없어서 보통 근처 먹거리로 해결했다. 사실 대치학원가에 학원만큼 많은 것이 밥집과 카페라 아이들이 밥 못 먹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학원수업료 못지않게 밥값이 좀 부담될 뿐이다. 아이가 카드로 밥값을 썼는데 행여나 편의점에서 3-4천 원 결제한 알림이 뜨면 밥도 먹을 시간이 없었나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아이아빠는 돌도 씹어먹을 나이에 밥 한 끼 덜먹었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며 "걱정일랑 접어두고 당신이나 잘 챙겨 먹어. "한다.


이제 수능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일타 선생님들의 강의도 종강준비를 하고, 학원가는 27, 28학년도 아이들을 위한 설명회 준비로 분주하다. 뭔가 어마어마하고 대단할 것 같았는데 고3의 시간이 생각보다 빠르게 그냥저냥 잘 지나가고 있다.


좌석신청 포도알찾기.


keyword
이전 10화어쩌다 보니 대치동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