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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7 여의도 불꽃축제

ㅡ 이촌 한강공원 명당입디다.

by Anne

어제저녁부터 분주하게 가방을 풀었다 열었다 하더니만은 둘째 녀석 가방에 뭘 그리 넣었는지 2박 3일 여행 가는 줄 알것다. 해마다 가을이면 한강여의도공원 쪽에서 불꽃축제를 하는데 둘째 녀석이 거길 친구들이랑 가겠다는 거다.
나도 아주예전에 남편이랑 연애할 때 갔었는데 무척 좋았지만 많은 인파 속에서 빠져나오느라 한 시간을 걸었던 기억이 있다.
"아니 그냥 유튜브 실시간 찾아보는 거 어때? 니들끼리 가면 위험할 텐데 에휴..."
"아니. 엄마! 유튜브라니요.. 진짜를 봐야죠!"
"그런데 거기 사람 너무 많고 여고생들끼리 있으면 위험하고, 화장실도 불편할 거고, 7시 시작이라는데,. 몇 시부터 가있겠다는 거야?" 블라블라블라....
엄마잔소리가 극에 달아 터지고 있다.
'아휴.. 안 갔으면 좋겠는데....'

"아니 당신은 애들이 잘 다닐 텐데 뭐 그런 걱정을 해. 재밌게 보구와. 대신 연락 자주 하고, 덥거나 추울 수 있으니 잘 챙겨가고! 끝나고 나올 때는....."

당신도 별 수없구먼.
당부에 당부에 당부말을 늘어놓으면서.

결국 아침 일찍 연습을 하고 친구들이랑 가겠다고 하는 널 말릴 수가 없어서 허락해 주었다. 남편은 '그냥 지하철 태워 보내지' 했는데, 엄마가 한강공원까지 데려다 주기로 하고.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는데 반포대교를 건너다보니 이미 차들이 올림픽대로, 강변북로에 많다. 원래 토요일 이 시간 차가 많은 시간이긴 한데 왠지 다 놀러 가는 차 같고 다 설레 보이네. 나도 오랜만에 다리 건너 달리다 보니 괜히 신이 나고 차에 탄 여학생들도 꺄르륵꺄르륵 신이 나셨다.

"물 챙겼어? 선크림은? 보조배터리 있지? 음식은 뭐 시켜 먹을까? 과자도 살까?! "

이촌한강공원 주변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북적였고, 주차장 주변은 이미 돗자리와 간식거리를 양손에 가득 들고 삼삼오오 다니는 사람들의 들뜬 웃음소리와 어딘가에서 들리는 노랫소리로 가득했다. 아직 해가 중천인데 딸아이는 친구들과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설레는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살피고 있고, 나는 그 모습만으로도 '그래 오길 잘했구나. 니들도 해볼 만한 경험이겠구나.' 했다.

차에서 내린 아이들은 몇 발짝 떼기도 전에 먼저 도착한 친구들의 손짓이 보이자, 금세 나를 잊은 듯 환하게 웃으며 달려간다. 손을 흔들며 "다녀올게" 한다.
이제는 친구들과 자기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아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돌아오는 길은 묘하게 한산했다. 반대차선은 불꽃놀이를 보러 가는 사람들로 가득한데 집으로 가는 길은 허전하다.
"재미있게 놀다 와" 하고 쿨하게 돌아섰는데 아이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서 아이가 어느덧 훌쩍 자라 버린 시간이 보이고, 나는 그만큼 물러서며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부모의 자리는 언제나 그렇게 조금씩 비워가는 쪽에 있는 거라는 것을, 이렇게 돌아오는 길에서야 깊이 실감한다.

선선한 가을 저녁 하늘에 커다란 불꽃이 터져 오르겠지. 그 빛 아래에서 딸아이는 친구들과 환하게 웃고 있겠지.
나는 그 웃음을 직접 보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떠올릴 수 있다.

어쩌면 부모란, 함께 서 있지 않아도 아이의 기쁨을 온전히 상상하며 웃을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9시가 조금 넘었나...

상기된 목소리로 너무 멋있었다고, 사진 같은 걸로는 담을 수 없었다고, 내년에는 여의도로 가겠다고 한다.

에효. 거긴 엄만 포기.


엄마는 유투브라이브로 봤.....

불꽃이 터지는지 낮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강공원을 가득 메우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지 전혀 모르고 10시에 학원수업 끝나고 나온 고사미가


"엄마 오늘 무슨 날이야? 얘는 왜 이렇게 화장을 했어? 너 어디서 놀다 왔어?"


아들아! 너도 내년엔 꼭 보러 갈 수 있기를!

오늘도 수고했어! 맛있는 거 먹고 일찍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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