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이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에 글을 올린 이후로 5개월 동안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브런치가 싫어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올린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들께 죄송한 마음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지만 왜 브런치가 싫어졌는지에 대한 말 한마디 쓰지 않고 그냥 그날 이후로 브런치를 열지 않았습니다. 올라오는 글들을 모두 읽지 못한다는 부담감이 뒤돌아 보고 싶은 마음을 단호히 밀어냈던 것 같습니다. 뭐, 제 성격 탓이기도 합니다만. 쓰는 것은 그나마 짬을 낼 수도 있지만, 제 글을 구독해 주시는 분들의 글을 모두 읽지 못하는 마음의 짐은 어떻게 해소가 안 됐습니다. 전화기에서 브런치 앱도 삭제했습니다. 브런치가 정말 미웠던가 봅니다.
이유 1 - 제 글을 구독해 주시는 분들의 글을 모두 다 읽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 개의 프랜치하이즈 식당을 관리해야 하고, 2살 반 된 둥이까지 보살펴야 하고 자원봉사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본연의 창작활동인 그림도 그려야 하는 제 일상 속에서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읽을 시간이 물리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림 작업도 제대로 못하고 있으면서 ㅉㅉ) 심지어 미국이란 나라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최소한의 신문도 읽지 못합니다(사실 요즘은 이꼴저꼴 차라리 안보는 것이 속이 편하긴 합니다 ㅠ)
이유 2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의 글을 읽으려고 노력하는데 어떤 때는 끝까지 다 읽지도 못하고 '구독'을 누르는 제 자신에게 '이래도 되나?'라는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진심으로 글 쓴이의 마음을 헤아리며 읽기보다는 빨리 읽고 댓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컸습니다.
이유 3 - 글을 쓰는 것 자체에 편안함과 창작이라는 삶의 노력보다는 브런치에 들어왔으니 개인의 계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상한 압박감이 일상에 더해졌습니다.
이유 4 - 브런치가 삶에 큰 영향을 받은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저에게는 브런치에 왜 글을 써야 하는지 의문이 생겼습니다.'개인의 홍보 및 브랜드화' 뭐.. 이런 것들이 중요한 이 시대에 살고 있지만, 구독자수, 댓글수.. 이런 것들 보다는 그래도 얼굴 맞대고 차 한잔 마시면서 나누는 정겨운 수다를 그리워하는, 아직도 아날로그식을 버리지 못하는 저에게 '브런치'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글이 매끈한 실타래처럼 술술 풀리는 경우는 절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던 다른 곳에 글을 올리던 글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쉽고 편한 일이 아닐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것은 아마도 모두들 자신들의 것을 토해낸 뒤의 오는 개운함과 삶의 교감 그리고 자신의 영혼 성숙에서 오는 행복감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은퇴할 나이에 빡빡하게 돌아가는 일상생활에서 잠은 무조건 최소한 6시간을 자려고 하는 것조차 사치였습니다. 그럼에도 글을 쓴다는 것은, 그 바쁜 일상 속에서 창작을 했다는 성취감 그리고 또 다른 나와의 교감이라는 스스로의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 봄날 님 :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냐며 우리들의 영혼을 달래주는 글에 매번 위로를 받았습니다. 추운 계절에도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 주는 온기와 같아 읽는 이의 마음을 감싸 안아 주는 글입니다. https://brunch.co.kr/@romeocho80/520
- 무한소 님 : 때로는 글에 등장하는 수학공식이 어려워 흰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며 이해하려 애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ㅎ. 수학에 삶과 철학에 자연스럽게 녹여 우리 인간들의 본성을 찔러주는 글은, 수학을 못했다는 어리석음 속에서도 밑줄 그으며 읽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얼굴도 모르는 둥이 할머니를 귀엽다고 해주셔서 아주 신이 났었습니다.
https://brunch.co.kr/@makwan7373/333
- 초들 님 : 그 시절 옆에 있는 사람에게 써준 가슴 시린 러브레터를 읽으며, 러브레터라고 달랑 한 장 받고 가슴이 떨리던 저만의 로맨틱한 시절을 떠올리며 보았습니다. 이 글은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모아 놓은 사랑의 백과사전입니다. https://brunch.co.kr/@chodeul/405
- 꽃보다 예쁜 여자님 - 버켓리스트에 여행지를 자꾸 더하게 만들고, 알려주는 여행지를 그때그때 따라가긴 하지만 모두 읽지를 못해서 매번 쳐지면서도 시간만 나면 발자취를 따라가게 했습니다. 꽃보다 예쁜 분이 사랑도 많아 매 글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아름다운 사랑에 마음이 훈훈해지는 글들이 모인 곳입니다. https://brunch.co.kr/@0afe4f4ba5ef4a2/147
- 청년 클레어 님 - 시간이 많이 걸리는 숙제였지만 숙제 한편을 끝내고 나면 내 영혼이 좀 더 풍요로워졌습니다. 긴 호흡을 내 쉬며 잠들려고 했는데 자꾸자꾸 생각하게 만들어서 잠이 잘 오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https://brunch.co.kr/@kimmiracle/564
- 장익 님 - 노바보다 훨씬 늦게 공부하시는 분, 늦깎이의 심정을 충분히 알기에 늘 응원하는 마음으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은 바이러스가 되어서 온 사방에 퍼지기를 바라는 글들입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020504.
- 류귀복 님 - 어떤 내용을 써도 계속 다음 편을 읽게 만드는 매력(?), 책을 낼 마음이 없는데도 괜히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마력, 해피 방사선이 온몸에 쫘악 퍼지는 것과 같은 필력, 이런 것들이 모두 끊임없는 노력이구나를 일깨우게 하는 글, 하지만 출간이라는 운명을 타고 나신 분.
https://brunch.co.kr/@gwibok/118)
- 민법은 조변님 - 손오공처럼 본인을 늘릴 수 있나? 하루가 48시간인가?라는 의구심이 매번 있지만 법률조언, 음악, 육아, 살림 게다가 박사과정과 나라 돌아가는 일등 다양하게 써주는 내용들을 모두 읽지 못해 늘 아쉬움으로 되돌아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댁 부인은 조변을 어떤 식으로 Assi 할까 궁금하기도 했답니다. ㅎ
(https://brunch.co.kr/@lawschool/439
- 은수님 - 제 아이는 친정엄마가 키워주신 덕분에 정작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종일 둥이들을 돌보면서 요즘 아이들의 이야기를 참고하며 육아에 책임감을 느끼면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https://brunch.co.kr/@seminij15/665#comments
- 마음씀님 - 이런저런 삶의 경험에서, 기억에서 나오는 사유들.. 외우고 싶은 문장들, 반성하게 만드는 문장들, 무릎을 치게 만드는 문장들 그리고 문득문득 생각나는 문장들 때문에 마음을 뺏기는 글들입니다.
https://brunch.co.kr/@photothink/993
- 채수아 님 -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아주 큰일이 아니라 작은 관심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하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마음의 희생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본보기의 글입니다. 최근에는 출간도 하셨나 봅니다.
https://brunch.co.kr/@todaynamaste/832
- 현월안 님 - 아주 조금이 아닌 크고 넓은 삶의 철학을 담은 삶에서 만나는 이야기들, 소소하다지만 전혀 사소하지 않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들에서는 잔잔함이 출-렁하고 오는 글입니다.
https://brunch.co.kr/@qyy918/773
- 평론가 청람 김왕식 님 - 많은 글에 놀라면서도 이유 없이 이 분 글은 그냥 읽고 싶어 지더라고요. 문학 평론가의 글과 평론은 지적 호기심을 발동시키거든요 ㅎ. 많이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글이기도 합니다.
https://brunch.co.kr/@3cbe431230de42b/4713
- 페르세우스 님 - 쌍둥이네의 모든 생활을 보여주, 드라마로 만들어도 될, 정말 쌍둥이 교육에 진심인 아빠의 글. 둥이 할머니라서 이 분의 글을 읽으면 summary 해서 둥이 아빠인 아들에게 옆구리 찔러 들려주곤 했으니 둥이 교육의 멘토인 글입니다. (울 아들은 뭘 하는 건지.. ㅉㅉ)
https://brunch.co.kr/magazine/twi-personality
딸그림아빠글 - 딸의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느끼게 하는 글이어서 읽고 나면 반성의 침묵으로 보낼 때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가르치는 글이어서 화를 내려다가도 화가 사르륵 가라앉게 됩니다. 따님의 그림은 추상동화처럼 아주 독특한 그림입니다.
https://brunch.co.kr/@685cc1cc752d4bd/340
- 박기련무소주부님 부부 - 처음에는 도대체 이 사랑은 어디에서 나오는 거지? 하며 호기심으로 시작했는데 그 호기심이 이제는 아내사랑 부분 '인간문화재'로 추천하고 싶은 작가입니다. 매번 처음으로 글을 읽게 만들었던 브런치 동생작가! (사실 브런치 때문에 동생이 생겨서 브런치를 미워하면 안 되는데 ㅠㅠ), 건강이 좀 안 좋았는데 많이 좋아졌기를 바랍니다. 마눌님 오래 사랑하려면 건강하셔야 합니다. (한국 갈 때 테킬라 안 가지고 갈 겁니다 ㅎ).
https://brunch.co.kr/@af414d9aef7b470/541
구독을 누르던, 누르지 않았던 제가 즐겨 읽던 글을 써주시는 분들입니다.
위의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지인들의 글도 여러 편 읽고 읽었습니다.
또한 오며 가며 흥미로운 글들도 잠깐씩 읽고 흔적도 남기곤 했습니다.
제가 즐겨 읽던 글을 더 이상 안쓰시는 분도 계십니다.
구독을 눌렀지만 제가 더이상 흥미를 느끼지 않는 글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다들 그래요... 구독자가 몇천이 되는 분들도 모두 다 읽을 수 없어요, 그냥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거죠. 쓰는 것이 목적이니까 그냥 쓰면 돼요"라고 한다. "그렇게 심각하게 느끼거나 부담감을 느끼지 않아도 돼요"라기도 한다. 사실 심각하게 느낄 틈도 없지만, 성격 탓이던 성향 탓이던, 마음이 불편한 것은 숨길 수가 없었다. 며칠 전, 구글에서 어떤 내용을 search 하는데 'Brunch'가 나왔다. '브런치에 글 올리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책을 낼 것도 아니고, 또한 미국에서의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고' 등등.. 글을 올리지 않는 핑계를 이래저래 만들어서 애써 외면했던 단어인데, '브런치'라는 글씨를 보는데... 문득 그곳이 그리워졌다. 그곳에 글을 쓰던 '사람들'이 그리웠다. 비록 얼굴은 모를 수도 있고, 사진으로만 보아서 만나도 잘 알아보지 못할 분들이지만 길에서 마주쳐 '아무개입니다'라는 필명을 들으면 그냥 덥석 안을 것 같은 생각에 입가가 올라갔다. 짧은 댓글 안에서 느껴지던 그 잠깐의 진심, 그 소박한 온기가, 진심이 그리웠나 보다.
나의 별 시답지 않은 개인적인 핑계는 그렇다 치고, 브런치의 글을 읽으면서 '참 많은 분들이 글을 쓰는구나' 하고 놀라웠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사실 우리 인간의 본질과 깊이 연결하려는 행위여서 우리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세상을 이해하고 그리고 다른 이들과 연결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러한 행위를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가 확인되면 그 깨달음이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하도록 이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을 시작으로 마침내 책을 출간하는 분들의 고통스럽지만 빛나는 아름다운 여정을 본다. 글을 씀으로써 작은 창조의 불꽃으로 사회를 비추려는 경이로운 실천을 하는 여정을 볼 수 있어서 그분들에게 일어나서 갈채를 보낸다.
내가 브런치에 온 것은 어떤 이의 권유로 시작되었지만 글을 쓰는 것은 순전히 내 의지이다. 글을 쓰는 동안은
행복하다. 내 의지가 온전히 작동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랫폼이라는 시스템은 점점 몸이 점점 삐걱거리고 무거워지는 이 둥이 할머니에게 버겁다. 인스타그램에 그림에 관해서 올리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는 자신의 주제파악을 할 수 있는 나이니까 내 의지로 가능한 일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바는 그림을 계속 짓고 글도 계속 지을 것이다. 더디더라도 내 의지로 가능한 일이니까. 글을 쓰고 그림을 창작하는 행위는 행복하고 그리고 둥이들이 쑥쑥 크는 것처럼 내 영혼도 쑥쑥 겹이 더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자주 쓰지 못해도, 그분들의 글을 모두 다 읽지 못해도, 댓글을 남기지 못해도 그리고 하트를 누르지 못해도 노바가 작가님들의 그 귀한 시간의 진심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려드리고 싶었다.
또 말없이 사라지는 때가 오겠지만... 말없이 오며 가며 신선놀음(?)을 한다 해도 브런치에서 뭐라고 할 사람은 없으니...자유를 느끼니 지금 이 순간이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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