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동생은 내가 집에서 나가버리길 원했겠지만, 사회로 내던져지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던 나는 집에서 나가지 못했다.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아빠는 그림 그리는 일을 반대하며 그것을 직업이나 일로 인정해주지 않았고, 계속해서 취업을 요구했다. 그런 아빠와 갈등을 겪을수록 나는 작아져갔고 내 방으로 숨어들어가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을 찾지 못할 만큼 소극적이었다.
그런 나를 동생은 투명인간 취급하면서도 자기가 필요할 때는 말을 붙이고 이용했다. 그렇게 서먹한 듯 서먹하지 않은 듯 이상한 줄다리기를 가족 간에 하고 있던 어느 날 새벽이었다. 그 무렵 아빠는 인근의 다른 지역에서 지내며 일을 하고 있었고 그날도 아빠는 부재중이었다.
동생은 새벽 5시에 다짜고짜 월드컵 개막식을 보겠다고 나섰다. 우리 집에서 아빠 다음으로 스마트폰을 쓰게 된 건 동생이었고, 그걸로 충분히 볼 수 있는데도 동생은 큰 화면으로 개막식을 보겠다고 거실 불을 켜고 소리를 크게 틀었다.
오래된 연립주택에 살고 있을 때라 문틈 사이로 빛이 다 들어오고 방음도 되지 않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는 동생이 인터넷을 못 하게 했고, 그러자 동생은 TV 볼륨을 최대로 키웠다. 집 밖에서도 TV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다. 리모컨을 뺏으려고 하자 나보다 키가 20cm가 큰 동생이 나를 죽일 듯이 내려다보기 시작하며 내 양 손목을 붙잡았다. 도망가려고 했지만 동생의 손에서 손목을 빼내는 것조차 하지 못했고, 나는 아빠와 싸울 때면 그랬던 것처럼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내 방으로 도망치려 했다.
그런데…, 동생에게 양쪽 손목을 모두 붙잡힌 채로 내 방으로 온 것은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 침대 위로 무섭게 나를 짓누르는 동생에게서 나는 더 나쁜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직감을 느꼈고, 동생도 아차 싶었는지 그제야 나를 놓아주고는 TV 앞으로 가버렸다.
무서웠다. 그날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고, 동생이 하루 종일 월드컵 보는 소리를 들으면서 방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먹지도 마시지도 화장실을 갈 수도 없었다. 손목이 뻐근했다.
찌는 여름에 내 방에 있는 문이란 문은 모조리 잠그고 식은땀을 흘리며 몽롱한 정신으로 할 수 있는 건 핸드폰뿐이었다. 소리가 날까 봐 전화도 하지 못했다. 아빠에게 문자로 상황을 알렸지만, 반응이 없었다. 아빠에게 뭐라고 답장이 오긴 했지만 내가 했던 이야기에 대한 제대로 된 언급은 없었다.
누군가에게 더 이야기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서울 친구에게 내가 안녕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전했다. 나대신 친구가 냉정한 생각을 해주었고, 여성의 전화를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