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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바써니 Aug 19. 2021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렇게 여성의 집에서 어색한 생활을 시작했다. 여성의 집은 대체적으로 결혼한 주부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나는 그곳이 더욱 낯설었다. 그래도 밝게 지내려고 애썼다. 내 짐은 단출한 옷가지와 간신히 챙겨온 노트 1개, 색연필 약간이 전부였지만 나름 청소 당번과 식사 당번의 규칙을 따르며 무료한 시간을 어떻게든 채워 보려고 했다.     


시간이 갈수록 방에서 혼자 우는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단체생활이라는 게 영 불편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곳에서 영원히 살 수는 없었다. 임시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정도의 장소였기에 언제고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곳에 오는 분들은 하룻밤만 자고 가는 경우도 많았고, 재방문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곳에서 지낸 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때, 어느 날 수녀님이 내게 말했다.     


“너는 잘 적응하고 있는 게 아니라, 적응하고 있는 ‘척’을 하는 거야.”     


그 말이 내게는 약간 충격이었다. ‘이곳에서의 나는 부자연스러워 보였던 걸까?’하는 생각에 지난 두 달이 다소 허무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수녀님의 그 말을 계기로 두려워서, 너무나 두려워서 계속 미루던 세상으로 뛰어드는 일을 더 이상 피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을 나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혼자 살려면 생계를 위한 직장과 집을 구해야만 했고, 가급적 타지로 면접을 보러 다녔다. 오라는 곳은 제법 있었지만, 고향에서 멀어질수록 월세 부담이 너무 컸다. 내가 가진 돈으로 보증금, 첫 달 월세, 첫 달 생활비, 생필품과 최소한의 가전제품 등 생활하는데 필요한 초기 비용을 모두 해결해야만 했다. 누구의 손을 빌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스스로 그것을 원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으로 면접을 보러 다니고, 취업이 결정되자마자 또다시 원룸을 보러 다닌 끝에 세상으로 내던져질 준비를 마쳤다.     


드디어 여성의 집을 떠나 이사를 하는 날, 아침 일찍부터 한여름 장마로 매서운 비가 내렸다. 집을 비운 시간만큼 낯선 느낌이 드는 낡은 연립주택으로 들어가니 그날은 아빠와 동생 모두 집에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았다. 오랜만에 집에 온 나를 보러 나오거나 인사를 건네는 일조차 없었다.

이삿짐센터 사장님과 내 방의 짐을 나르고 또 날랐다. 최대한 전부 가져가고 싶었지만 말 그대로 내 방의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것은 무리였기에 고등학생 때 그리던 그림과 선물 받은 그림, 침대 프레임 같은 것들은 두고 왔다.     


그렇게 나는 넷에서 셋으로 줄어든 가족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한 마디 대화도 나누지 않은 채 집을 나왔다. 열쇠도 방에 던져두고 나왔다. 이제 두 번 다시는 이 집에 올 일도, 이 사람들을 볼 일도 없다는 마음을 먹었다. 여성의 집에서 지내는 동안 그런 미래를 떠올려 본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이미 굳게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에 도착을 하니 거짓말처럼 퍼붓던 비가 그쳤다.

이제, 정말 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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