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한 대책 없이 결연한 다짐 하나로 독립생활이 시작되었고, 아빠는 분명 아무 말이 없었다. 내게 무엇을 묻지도 당부도 요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독립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빠에게 문자가 왔다. 내가 겪은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빠진 채로 태연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피가 끓어 넘칠 것 같은 분노가 치밀었다. 동생의 연락처는 진작에 차단하고 삭제했지만, 아빠의 연락처는 삭제했어도 차단하지 못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혹시나 싶어서. 혹시나 돌아가셨을 때 내가 후회할까봐.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못했다는 것에 대해 후회가 남을까봐 차단까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빠의 반응을 보고 난 후로 아빠의 번호도 차단해버렸다.
그러나 핸드폰 기기를 바꿀 때마다 번호 차단이 풀렸는데 그때마다 아빠에게 문자가 왔다. 아빠는 내게 전화는 걸지 않고 문자만 보냈는데, 주로 명절과 어버이날 같은 기념일에만 연락이 왔다.
짜증스러워도 내 부모이기 때문에 아빠를 이해해보려 애쓰기도 했었다. 그 노력 중 하나로 문자로나마 대화를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말은 썩을 년이었다.
아빠는 내 감정이나 상태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러면서 대체 무슨 대화를 하자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