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나로서 살아가기 위한 시간
4. 엄마의 시간

by 이마음

앞서 언급한 40세의 위기와 비슷한 의미로 ‘중년의 위기’라는 용어를 책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제임스 홀리스, 김현철 옮김, (주)도서출판 길벗, 2018)에서 미국 융학파 정신분석가 제임스 홀리스가 ‘중간항로’라고 관점을 달리 하여 칭했다. "흔히들 ‘중년의 위기’라고 하는 이 시기를 나는 ‘중간항로Middle Passage’ 부르고 싶다. 이 시기에 우리는 삶을 재평가하고, 때로는 무섭지만 언제나 해방감을 주는 한 가지 질문 앞에 설 기회를 갖는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과 맡아온 역할들을 빼고 나면, 나는 대체 누구인가?’ 거짓된 자기self를 쌓으며 살아왔다고,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며 잠정적인 성인기를 보내왔을 뿐이라고 깨닫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진짜 존재를 만날 수 있는 2차 성인기에 들어설 수 있다."(p8-9)라며, 저자가 이야기 한 ‘거짓된 자기’까지는 아니겠지만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의 가영이 엄마는 ‘자신의 진짜 존재를 만날 수 있는’ 시기가 딱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중간항로를 지나고 있는 것이다.

“맞아. 어머니 편찮으셔. 그래서 더 내 일을 하고 싶어. 이다음에 어머니처럼 마음의 병으로 지난 일들을 원망하며 살고 싶지 않거든.” p38

저자는 또한 이 중간항로는 “개인이 삶의 의미라는 질문을 새로이 던질 수밖에 없을 때 일어난다. 어렸을 때는 상상하곤 했으나 세월이 흐르며 지워져버린 질문 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려져 있던 문제를 직면해야 할 때도 그렇다. 정체성에 관한 의문이 다시 떠오르며 그 책임을 더 이상 회피할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중간항로는 우리가 ‘지금까지의 내 삶과 역할을 빼고 나면 나는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 비로소 시작된다.”(p37-38)고 하였다. 가영이 엄마는 현실적인 상황에만 집중하여 희생하며 우울해 하는 것이 아닌, 자신조차 잊고 지내던 과거의 꿈을 되새기고 자신의 역할을 가정에만 국한하지 않고, 누구의 남편, 누구의 엄마, 누구의 며느리라는 역할과 더불어 본연의 자기인 ‘윤서영’이고 싶었던 것이다.

집안일로, 할머니 병으로 늘 바쁘게 뛰어다니던 엄마와는 분명히 달랐다.

‘엄마는 저 자리가 좋은 거구나. 지저분한 이 화실에서도 엄마는 저 앞에만 앉으면 우리도 할머니도 아빠도 다 잊는 거구나.’ p112-113

엄마를 따라 화실에 가게 된 가영이는 고등학생들과 농담을 하는 엄마의 모습에 낯선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을 거부감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낯설지만 엄마가 그것을 진심으로 원하며 그것을 통해 그동안 억압되어 있던 것에 대해 자유함을 갖게 되었는다는 느낀 것 같다. 그렇게 가영이는 엄마의 조용히 ‘중간 항로’를 지켜본다.

그러나 아빠는 엄마가 그린 그림을 전시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폭발해 버리고 만다. 그동안 쌓였던 말을 엄마에게 쏟아 부어버리는 아빠. 엄마에게 가정주부, 엄마, 며느리로서의 역할만 강조하며 엄마에게 ‘무조건 다른 여자들처럼 살라’고 하는 아빠에게 가영이는 이질감을 느낀다. 이 부분에서 가영이의 가치관과 태도가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엄마는 화실에 나가지 않을 땐 할머니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나날이 기운을 잃어가는 할머니를 애처롭게 바라보다가 눈물을 짓는 날도 있었다. 어떤 때는 누워 있는 할머니와 그 곁에서 엎드려 우는 엄마가 한 사람처럼 내 눈에 보이기도 했다. p 184

이런 상황에서도 엄마는 의지를 꺾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일을 끝까지 행한다. 전체적인 가정 상황은 갈등으로 인한 혼란에 놓였지만, 가치관이 열리기 시작한 딸들에게는 많은 도전을 주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엄마라는 역할모델이 단지 과거의 현모양처다운 헌신적이고 가정에만 머무는 엄마가 아닌 자기의 삶도 이어가며 열심히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이야 말로 멋져 보였을 것이다.

내 지인 중에 딸을 둔 엄마이며 가정주부이지만 박사학위까지 도전하며 뒤늦게 공부하는 분이 있다. 그 분이 공부하게 된 계기가 딸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하는 것 보다 자신이 공부하는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되지 않을까 해서 공부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분명 가영이와 가희에게도 엄마의 도전정신과 의지가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아빠는 끝까지 엄마를 무시한다. 엄마의 노력의 결과인 전시회 팸플릿을 받은 아빠는 그것을 찢으며 ‘내 집’에서 나가라고 하고, ‘적어도 나를 인정해 주는 거’라며 중요한 전시회라는 것을 거듭 말하는 엄마를 단 한번도 존중하려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장씨 핏줄의 내 딸들이라고. 장가희, 장가영.”

…(중략)…

“그래, 그러네, 장씨 핏줄의 장가희하고 장가영. 그런데 미안하지만, 얘들도 다 여자야. 나도 결혼 전에는 그 성이 굉장히 의미 있는 줄 알았지. 그게 별 필요 없다는 걸 깨닫게 해 준 사람이 바로 당신이잖아. 결혼 전에 있던 내 성이 지금 무슨 의미가 있어? 결혼하고 나면 자식한테 물려줄 수도 없는 성인걸.”

그렇게 크게 싸워 그날 밤 집에 들어오지 않은 엄마. 일주일 동안 엄마 없는 사이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장례식 이후, 친구 주환이를 통해 알게 된 엄마의 전시회에 가서 검은색 원피스에 흰 머리핀을 꽂고 전시장에 있는 엄마를 보게 된다. 그리고 자화상이라는 제목의 엄마 그림 속에 과거의 엄마, 현재의 엄마, 미래의 엄마 세 사람을 보며, 시간을 표현하고 싶었다던 엄마의 말에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제야 나는 엄마 그림을 다 이해한 것 같았다. 엄마는 어린 소녀였다가 지금의 엄마가 되고 또 할머니도 되는 시간을 아무렇게나 그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p209

결국 엄마와 아빠가 당분간 떨어져 살게 되었지만, 엄마의 그림을 통해 가영이는 여자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고, 엄마가 표현한 자신의 삶의 여정을 잘 걸어가고 싶다는 의미를 받아들이며 이해하게 된다. 그런 집안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시간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엄마의 반란 아닌 변화와 엄마가 그린 자화상을 통해 가영이의 정서적인 키가 한 뼘 커지게 된 것이다.

나는 엄마 아빠의 딸이지만 나 혼자 살아가야 할 시간이 따로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다. p210

아마도 윤서영의 딸 장가영은 엄마의 부정적 전철을 밟지 않고 자기의 시간을 잘 지켜가며 균형을 유지하고 살아갈 것 같다. 한국에서 사는 엄마의 역할모델은 현모양처이면서도 자기 일을 잘 해내는 슈퍼울트라 우먼을 요구하고 있지만, 자기만의 중심을 세우고 균형을 맞추어서 혼자 고군분투하며 힘들어 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 여러 면에서 많은 변화가 요구되지만 차츰 그렇게 될 것이라는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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