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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웅식 Aug 11. 2023

검은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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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우물


 수술이 끝나 수술실에서 나온 황 노인은 소리를 질렀다. 전신마취가 풀리지 않은 상태여서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아들인 현수가 어렴풋이 보이자 황 노인은 자신을 묶은 사람들을 고발하겠다는 말을 내뱉었다. 현수에게 이 병원에 데려와서 자기를 죽이려 했냐고 따졌다. 현수는 수술 잘 되었다고,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는 말로 황 노인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이동침대에 실린 황 노인이 6인실로 갔다. 현수 어머니는 멍하니 황 노인을 가끔 쳐다볼 뿐이다.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서서 현수에게 말했다. 환자가 물을 먹고 싶다고 하면 물을 묻힌 거즈로 환자의 입술을 두드리라고, 많이 아프다고 하면 진통제를 투여하는 버튼을 눌러주라고 하고는 병실을 나갔다. 황 노인은 아이고, 라는 말을 외쳤다. 황 노인이 아파, 아파, 라는 말을 연이어서 하자 현수는 링거줄을 잡고 링거줄에 달린 버튼을 눌렀다. 진통제가 황 노인의 손목으로 이어진 줄을 타고 혈관으로 들어갔다. 황 노인은 상체를 좌우로 뒤척거렸고 천장을 주시하기도 했다. 사람들과 눈을 맞추지 못했다. 또다시 자신을 죽이려 했다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옆 침대에 있는 다른 환자의 보호자가 현수에게 다가와 수술하다가 무슨 문제가 생긴 거 아니냐고 물었다.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자신의 남편이 잘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현수는 6인실인데,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수술은 잘되었다고, 좀 기다리면 조용해질 거라고 응수했다.


 황 노인은 불타는 집에 있었다. 천장을 장악한 불길이 나무로 된 기둥을 타고 사방으로 번졌다. 황 노인은 아이였다. 아이는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기둥에 옮겨붙으며 집을 활활 태우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불은 뱀의 날름거리는 혀처럼 아이 앞으로 다가왔다가 멀어져 갔다. 아이는 저 불이 자신을 덮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가만히 서 있었다. 밭을 태우는 불이 아이의 머리에 떠올랐다. 어른들이 해묵은 풀을 모아 한 곳에서 태우면 풀 냄새가 났다. 아이는 멍하니 사방에서 몰려오는 불을 쳐다보기만 했다. 문득 이 집을 누가, 왜 태우려고 하는 것인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이는 어른을 찾았으나, 연기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숨을 쉬기가 불편해서 콜록거렸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두 손이 나타나 아이를 안았다. 아이는 그 두 손이 누구의 손인지 알 수 없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을 안은 사람이 남자라고 생각했다. 

 사내의 두 발이 움직이자 아이가 출렁거렸다. 연기를 헤치며 뛰는 달음박질은 재빨랐다. 아이를 두 팔로 감싼 사내가 불타는 집에서 빠져나와 바닷가 쪽으로 달렸다. 아이의 집을 뒤로 하고 바다 냄새가 나는 곳으로 뛰었다. 

 사내의 헐떡이는 숨소리가 커졌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내의 등 때문에 아이는 덜렁거렸지만 사내는 그때마다 아이를 부둥켜안았다. 

“느영 나영⋯”

 아이를 감싼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아이는 자신을 구한 그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어른들이 자신의 집을 왜 불태웠는지, 집에 있는 할머니는 어떻게 되었는지 묻고 싶었다. 사내는 뛰는 속도가 느려지지 않게 발에, 아이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는 죽창이나 총을 든 사람이 마을을 돌아다닌 것을 보았다. 무장 경찰들은 총의 뾰족한 끄트머리로 누군가를 찌를 듯 마을 사람들을 위협했다. 그들에게 발각되면 사내는 처형당한다고 생각했다. 해안가를 뒤덮은 물안개가 보였고 사내와 아이는 물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두껍게 깔린 물안개는 그들을 감추어 주었고 젖은 공기가 사내의 열기를 식혀주었다. 사내는 물안개 속에서도 미친 사람처럼 뛰었다. 몸으로 형체 없는 안개를 밀어내며 앞만 보고 뛰었다. 

 사내의 발걸음이 아이를 저 멀리 데려가고 있었다. 아이는 사내의 등 너머로 불타는 집을 보려 했으나 보이지 않았다.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안개를 간혹 흩트렸지만 이내 안개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안개 속에서도 뜀박질하는 사내의 발소리가 아이에게 선명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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