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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웅식 Sep 09. 2024

마녀를 주머니칼로 찌르다(10)

 한 시간 동안 산책을 하러 문을 나섰다.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났고, 아래층에 등이 켜졌다. 또각또각, 구두 뒤축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계단을 세어가며 내려갔다. 마찰음이 점점 가까워진다는 것을 의식한 순간, 올라오는 사람과 어깨가 부딪쳤다. 그녀는 기우뚱 중심을 잃고 벽에 부딪쳤고, 나는 발이 비끗 돌아가며 몸이 허청 젖혀졌다. 나는 넘어질 것 같아 팔을 뻗어 난간을 얼른 붙잡았다. 그녀는 날카로운 손톱을 내 어깨에 꽂고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내 몸을 틀었다.

 “야, 우측통행이라고 몇 번 말했어. 중간으로 다니지 말라 했잖아. 내 말 못 알아듣겠어? 미친년.”

 그녀는 욕지거리를 퍼붓곤 재빨리 사층으로 올라갔다. 나를 다시 쳐다보며 시끄럽게 떠들어대었다.

 “병신같으니라고. 저런 애는 감금시켜야지. 재수 없어.”

 마녀의 하수인처럼 행동하는 사람에게 일일이 대응하면 시간낭비이다. 나는 내 할 일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 마녀를 잡아버리면 우리 빌라는 또는 우리 동네는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일층에 다다르자 성당으로 가는 길이 보였다. 몸이 갑자기 부르르 떨리며 인상이 일그러졌다. 호흡을 가다듬고 주머니칼을 손에 쥐었다. 나는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왼쪽 골목에 평범하게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옆집에 사는 오빠였다. 그 오빠가 간혹 나를 쫓아오고 이상한 눈빛으로 보곤 했었다. 그는 두 손을 땅에 짚어 엎드린 다음 머리를 쳐들고 묘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네 발 달린 짐승이라도 된 듯 두 손과 두 발로 바닥을 짚으며 내 쪽으로 왔다. 그는 기어오면서 개처럼 코를 킁킁거리기도 했다. 그가 벌떡 일어서서 점잖게 나에게 다가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혀를 내밀자 그의 입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나왔다. 내 몸에서 피돌기가 빨라지고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쳤다. 마녀가 히죽 웃더니 개가 덤벼들듯이 날렵하게 내 쪽으로 뛰어왔다.

  마녀에게 몸을 완전히 장악당한 것일까?

 오싹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주머니칼을 꺼냈다. 바람이 휙 골목을 지나갔고 나는 한 발을 내디디며 달렸다. 마녀가 뛰어올라 우악스런 손으로 내 가슴을 움켜쥐었다. 누군가가 입꼬리를 옆으로 잡아당긴 것처럼 웃다가 마녀는 내 입에 자신의 혀를 넣곤 내 바지를 벗겼다. 나는 주머니칼로 마녀의 허벅지를 깊게 찔렀다. 마녀가 나를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나는 벌러덩 넘어졌고 온몸에서 맥이 탁 풀려나갔다. 마녀의 네 발 소리는 들리지 않고 멀어져가는 두 발 소리가 들렸다. 

 마녀는 오빠의 몸에서 뛰쳐나갔을까?

 나는 누운 채 하늘에 떠 있는 하얀 뭉게구름을 올려다보았다. 문득, 하얀 말을 탄 잔 다르크가 떠올랐다. 몸이 욱신거려 서서히 내 상체를 일으켜보았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스팔트길에 주머니칼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마녀는 찾을 수 없었다. 오른손을 땅에 짚어 일어나려고 했는데 팔이 마비된 듯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고개를 기울여 손목시계가 망가졌을까봐 눈여겨보았다. 유리만 살짝 긁혔을 뿐 초침은 일초에 한 번씩 움직이며 돌아갔다. 손목시계는 삼십 오 분 정도의 산책 시간이 남았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성당에 있는 나무 벤치에 앉아 성모 조각상 아래에 놓여있는 촛불을 구경해야겠다. 

 마녀와 맞닥뜨린 날치고는 하늘이 참 맑다. 


                                <2013년 기독신춘문예 당선작, 다시 조금 고침, 한국기독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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