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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웅식 Sep 09. 2024

마녀를 주머니칼로 찌르다(9)

 나는 차가운 물을 틀고 샤워기를 갖다대었다. 가슴을 쓸어내리자 젖꼭지가 바짝 곤두섰다.  젖꼭지를 검지로 누르니, 딱딱한 촉감이 내 손에 전해져왔다. 젖꼭지가 봉긋 부풀어 올랐다.

 내 몸이 딱딱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단단한 몸을 가진다면 마녀와 싸울 때 이로울 텐데.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다. 모처럼만에 엄마와 아빠, 단 둘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나를 데리고 부모님은 여행을 가려고 했으나,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거절했다. 엄마는 나의 손을 끌었으나, 나는 엄마의 손을 할퀴었다. 엄마가 얘가 요즘 사춘기냐고 했고 가기 싫냐고 아빠가 물었다. 나는 에라고 대답하고 고개를 앞뒤로 격렬하게 흔들었다. 부모님의 날이니 좋은 시간 보내시라는 말을 내 행동으로 전달하려고 했다. 나의 고개가 앞뒤로 계속 흔들리자 아빠는 싱긋 웃음 지으며 화답했다. 아빠와 엄마는 저녁이라는 짧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집을 나갔다. 

 나는 화장실을 청소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었다. 깔끔한 화장실은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선물이다. 나는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서 벽에 묻은 때를 제거했다. 손에 힘을 주어 박박 문지르니까 곧 바깥으로 튕겨져 나올 것처럼 파란 실핏줄이 도드라졌다. 대야에 물을 받고 바가지로 물을 떠서 냅다 던졌는데 물이 벽에 튕겨 내 얼굴로 뛰어올랐다. 지워지지 않는 때는 솔로 또 밀었다. 수챗구멍을 막고 있는 머리카락 뭉치를 손톱으로 긁어내었다. 머리카락 뭉치를 잡고 휴지통에 집어넣었다. 손을 씻은 다음, 바가지에 담긴 물을 발에 끼얹었다.

 나는 발가벗은 채 베란다로 나갔다. 햇살이 내 몸을 외투처럼 감싸자 온몸에서 생기가 돌았다. 조그마한 창문을 여니 바람이 뛰어들어와 내 머리칼을 뒤로 날려보냈다. 바람에 꽃향기가 실려 있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젖은 내 머리칼을 햇살에 말렸다. 꽃에서 흘러나오는 꽃씨처럼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휙 떠날 수 있으면 나는 마녀를 손쉽게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누나.”

 “에.”

 "학교에서 빨리 왔어?"

"에."

 문을 빠끔 열고 고개를 내밀어 나를 쳐다보는 동생이 보였다.

 “옷 벗고 뭐해?”

 “우.우.”

 동생이 큰 수건을 갖고 와 내 몸을 감았다. 내 손에 수건을 쥐어주면서 내 손을 잡고 내 몸을 닦으려 하여, 나는 남동생의 손을 뿌리쳤다. 내가 혼자 집에 있으니까 학교가 끝나자 바로 집으로 온 모양이다. 동생은 나를 내 방으로 밀어놓곤 옷 입으라고 했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 집에 아무도 없어서 나는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로 있었을 뿐이다. 또한 옷을 입고 청소하면 옷이 젖기 때문이다. 나는 오해가 생길 것 같아 동생 말을 빨리 따르기로 했다. 

 동생이 나의 목을 조르고 죽으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벤치에 앉아 꽃향기를 맡고 있던 때였다. 나는 꽃과 교감을 나누고 있었고 봄의 화려한 빛깔에 몰입되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가족들은 경찰서에 신고하고 나를 찾았다.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은 동생이었다. 동생은 나의 가슴을 두드리다가 내 목을 졸랐다. 차라리 죽어버리라고 발악하듯 목청껏 질렀다. 동생이 멱살을 쥔 손을 풀자 나는 숨을 토했고, 동생은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동생의 어깨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는 주먹으로 내 머리를 마구 때리면서 동생 입에서 다시는 험악한 말이 튀어나오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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