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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

-아직도 따스한, 열여덟 살이었던 강용주에게-

by 최웅식

제주작가 신인상 수상작 (2)


빈방

-아직도 따스한, 열여덟 살이었던 강용주에게-

최웅식

한겨울만 있는 방

기댈 사람이 없는 방

벽에서 보이지 않는 입들이 튀어나와

내 체온을 빨아먹는 방

0.78평, 누우면 다리가 끝인 방


발끝에 놓인 똥통은 잘린, 새우젓이 담겼던 통

다리로 기어 올라온 구더기가 꾸물거린다

발가벗은 몸을 식판에 구겨 넣고

코로 밥을 먹는다


북한 언제 갔다 왔니

전향하면 빨리 나갈 수 있다는

벽이 밀려온다


도청을 지키자며 받은 주먹밥은 포근하다

싸우기 전에 카빈총을 내려놓는다

내빼버린 나는 광주시민군의 막내

한 줄기 빛이 대낮을 끌고 오는 소리

무서워요

뒷걸음친 나를 안아주었던 엄마

이제 집에 가자


어깨를 헤집는 흐느낌이

나를 쫓아왔다


무장한 형들의 이름을 천장에 적어본다

군화 끈의 매듭을 고발한 건 나의 참회록

내일이 오면 젖은 5월을 알려야 한다

아침을 깨우는 건 죽어간 자의 의지


내 손을 잡았던 형들의 전야

나를 얼룩지게 한 마지막 전투

조여 오는 허공을 한 번 밀어낸 함성

잊지 말라는 절규가

고여 있는 꿈이

진득거리는 피가

빈방에서

쏟아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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