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

그는 뚜벅뚜벅 입국장을 빠져나갔다

by 아륜

출국하던 날 흩날리던 오른손을 기억한다. 미련 없는 손짓 아래 움직이던 어깨가 선명하다. 그가 떠난 지 이백팔십일이 지났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잃은 곳에 돌아왔다. 그는 낯선 곳에서 일 년 가까이 머물렀다. 낯선 공간을 빠르게 익히고 나를 지웠다. 내가 오늘 괴로워할 때 그는 어제에서 여유를 부렸다. 어디도 거치지 않고 목적지로 오는 비행기는 하루 한 대다. 그의 SNS 계정에서 오늘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라와 도시, 그다음은 몰랐다. 토마토 스파게티를 맛있게 만들어 주시는 주인아주머니 집에 세 들어 산다는 것밖에. 한 달이 지났을 때부터 연락이 잘되지 않았다. 다른 시간에 맞추려 새벽에 깨 있기도 하고 수업이 한창일 때 진동 세기를 최대로 하고 기다리기도 했다.


해 지기 조금 전 착륙한다는 항공편을 찾아서 왔다. 보고 싶어서 왔지만 마주하는 순간이 두려웠다. 사람들 사이에 몸을 숨겼다. 그와 헤어진 다음 구입한 모자를 썼다. 깊숙이 눌러 쓴 캡이 얼굴에 그늘을 드리웠다. 가리면서도 알아보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여기 어딘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의 가족들이 나와 있을 거였다. 어머니, 아버지, 두 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고 들었다. 가족으로 의심 가는 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귀국 날짜가 바뀌었나 했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침착하게 나왔다. 차분하지 못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모르는 얼굴들 사이에서 하루도 잊지 않은 얼굴을 검색했다. 그가 쉽게 눈에 띄지 않아 한편으로 안심되었다.


시선을 떨구자 새빨간 캐리어가 굴러 나왔다. 캐리어를 쥔 손을 따라 위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사 준 가방이 그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옆에는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피곤해 보이지만 여전한 그를 눈에 담자마자 뒤돌았다. 말 걸 틈도 없이 그는 뚜벅뚜벅 입국장을 빠져나갔다. 야속한 두 다리가 굳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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