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의 흐름 시리즈 중 하나. 책에서 메모.
사람이 사는 데에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짐이 가벼워지니 몸이 덜 힘들고, 계속 걷다 보니 몸이 바뀌고, 몸이 바뀌니 감각이 달라지고, 달라진 감각으로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진 게 적으면 사람이 예민해진다. 작은 변화에도 크게 반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디클렌저 하나로 세수를 하고 머리도 감고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하는 상황에서 보디클렌저가 다 떨어지면 비상사태다. 그러니 늘 가진 것을 살피고 모든 상황을 대비하고 예의주시해야 한다. 늘상 그와 같은 상태로 사는 게 작가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p. 14)
담배를 피울 때는 하루가 피우는 담배 개수만큼 분할된다. 하루에 3개 혹은 12개 혹은 20개로. 하나의 담배와 또 다른 담배 사이의 간격만큼 분할되던 하루가 분할이 안 된 채 붕 떠버린다. 시간관념 체계가 엉망이 되어버린다. 아침 담배와 함께 시작하던 오늘 하루가 시작되지 않는다. 계속 어제를 살고 있는 기분이다. 금연하면 담배 피우는 만큼 시간을 벌 수 있다니, 그런 건 없다. 담배를 못 피우는 시간을 더 얻었을 뿐. (p. 83)
4500원이면 노량진에서 최고로 풍족한 식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밥을 굶고 그 5000원으로 커피를 선택한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가장 값어치 있는 5000원은 커피값이니까. 내 한 시간을 가장 사치스럽게 쓸 수 있으니까. 거기에 500원을 보태서 카푸치노를 마셔야 한다. 먼저 따뜻하고 둥근 잔을 손으로 감싸서 온기를 느끼고, 부드러운 우유 거품을 한 모금 마시고, 또 한 모금 마시고. 그 폭신한 구름이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그런 다음 잔을 내려놓고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올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손바닥에 눈물이 차오른다. 커피값을 줄이라니, 정말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p. 116)
몇 백원 싸다는 이유로 에스프레소를 마시던 정은 작가가 아메리카노를 마음껏 주문하는 장면에서 기뻤다. 비록 친구의 신용카드였지만. 작가에게 커피와 담배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다. 영화 <소공녀>의 위스키처럼 절실한 사치다. 말들의 흐름 에세이 시리즈는 저마다 개성 있는 이야기인데 특히 커피와 담배 편을 재미있게 봤다. 담배의 시작과 끝이 모두 한 남자 때문이라니… 옆에서 같이 피워보려고 작가가 노력하는 장면은 정말… 사랑스러워서 따라 해볼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