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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륜 Jun 04. 2021

사는 것처럼 살기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 에스터 페렐

  알랭 드 보통의 사랑 에세이 같은 책인 줄 알았다. 커피 한잔하며 볼 디저트로 빌린 책이다. 이 책은 불륜의 심리학을 다뤘다. 불륜에도 심리학이 필요한 걸까? 그전에 불륜의 기준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저자는 독자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두었다. 이 책에서 외도란 부부 사이에 한정하지 않고, 성관계뿐 아니라 넓은 의미의 배신을 가리킨다.     


  이 책을 보면서 파괴적 창조를 떠올렸다. 피터 터친은 <초협력사회>에서 전쟁이 창조적 파괴가 아닌 파괴적 창조라고 했다. 그는 전쟁을 옹호하는 뜻은 아니라고 말했다. 창조적 기능을 재조명해보자는 관점이었다. 이 책의 부제인 Rethinking Infidelity를 봐도 알 수 있다. 불륜의 서사는 바람-배신-파괴-이별로 단순히 정리하기 어렵다. 커플에서 배제된 내연자의 상처도 존중해야 한다고 나온다. 나는 이러한 관점이 신선했다. 저자가 바람을 부추기는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음의 문장을 보면 안다.     


  ‘많은 사람이 치료가 어려운 질병을 겪으며 인생이 바뀌는 긍정적 경험을 한다. 그렇다고 내가 암에 걸리는 것을 추천하지 않듯, 외도 또한 추천하지 않는다.’ (p. 27)     


  책에서 외도란 계약 위반과도 같다고 했다. 배신의 핵심은 신뢰의 위반이다. 믿음을 저버렸다는 사실이 큰 문제가 된다. 그런데 각자의 규칙이 다를 수 있고 이 둘을 합의하기도 어렵다. 타인과의 스킨십이 배신이라는 규칙에는 거의 모두가 동의하지만 SNS, 포르노, 채팅까지 범위를 넓히면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스마트폰으로 쉽게 연결되며 외도가 늘었다. 어느 코미디언은 "데이트 바를 늘 주머니 속에 갖고 다니는 것"이라고 했다. 책 83쪽에서는 "외도를 용납한다기보다는 외도를 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편에 가깝다."라는 문장도 보았다.     


  ‘우리는 내가 선택한 사람이 안정과 안전, 일관성, 믿음을 주길 바란다. 모두 정착과 관련된 경험이다. 한편 우리는 바로 그 사람이 경외와 미스터리, 모험과 위험도 주길 바란다. 내게 안락함과 강렬함을 줘. 내게 익숙함과 새로움을 줘. 내게 지속성과 놀라움을 줘. 오늘날 연인들은 아주 오랫동안 따로 떨어져 있던 욕망들을 한 지붕 아래 묶어 놓으려 애쓴다.’ (p. 76)     


  ‘요즘 사람들 대부분은 수년간 성적으로 유목민 생활을 한 후 결혼식장에 입장한다. 결혼을 할 때쯤에는 이미 원 나이트 스탠드와 데이트, 동거, 이별을 여러 번 경험한 상태다. 과거에는 결혼하고 처음 섹스를 했다. 이제는 결혼하면 다른 사람과의 섹스를 그만둔다. 성적 자유에 고삐를 채우겠다는 자발적 결정은 진지한 태도로 관계에 임한다는 증거다. (…) '선택받는다'는 경험은 이전에 없던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독점적 관계는 신성불가침한 낭만적 이상이다. 우리의 특별함을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p. 85)     


  이 책에 따르면 외도는 섹스보다는 욕망에 관한 문제이며, 단순한 사랑의 상실이 아니라 자아의 상실이다. 외도를 한 쪽은 새로운 자아를 탐색했으며 당한 쪽은 새로운 자아에 몸을 욱여넣어야 한다. 삶의 일부를 상대에게 위임하고 역사를 써 왔는데 알고 보니 서로 다른 생각을 했다면 나를 지탱하는 다리 하나가 사라져 삐걱거리게 될 것이다.     


  ‘외도는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바람을 피우는 수많은 사람이 비슷한 단어로 그 경험을 설명한다. 다시 태어난 것 같다, 젊어진 것 같다, 강렬하다, 활력을 되찾았다, 새로워진 느낌이다, 생기가 돈다, 자유로워졌다, (…)’ (p. 251)     


  나는 이 단락에서 외도를 예방하는 법을 생각해냈다. 사람이 사는 것처럼 살지 못할 때 다른 생각이 난다. 자신을 챙기고 여가를 허락하면서 살아 있는 기분을 종종 느껴야 한다. 이와 함께 외도의 범위를 넓게 잡은 뒤에 외도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편이 어떨까. 사전에 방지하되 문제가 생길 경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당사자 간 충분히 대화하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이에는 관리자가 없다. 재판관도 없고 법도 없다. 사람은 인공지능과는 달리 한 번 잘못을 학습하고도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 이를 받아들이고 각자 영역을 존중하며 만났을 때 듬뿍 사랑해 주길 바란다.     


  사랑에 관한 참신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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