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시시모

by 아륜

어디선가 들리는 음악 소리에 이끌려 방향을 바꾸어 걸었다.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잠깐이니 들어볼까 하고 서 있다가 약속을 놓쳤다. 연주를 들으며 내가 누구와 어디서 만나기로 했는지 잊었다. 연주자는 점점 세게 건반을 두드렸다. 언젠가 들었던 곡인데 이 부분에 크레셴도가 있었나 궁금했다. 나는 악보를 확인하러 가까이 다가갔다. 악기 앞에 다다랐을 때 마주한 것은 악보가 아니라 책이었다. 책에서 찢은 몇 쪽의 글이었다. 문장을 보고 어떻게 연주하지? 어떤 문장이길래? 아니 어떤 사람이길래.


이 곡은 어떻게 연주하나요?


여기에서 디미누엔도로 여려지다가 마지막에 피아니시시모로 끝나요.


다음 장이 있는 것 같은데요.


다음 장은 없어요. 있기는 있는데 책에서 찢어온 부분은 이게 전부라 지금은 여기까지만 연주할 수 있어요.


책을 통째로 가져오지 그랬어요.


책이 무거워서요. 연주를 포기할 수도 없고. 일단 읽을 수 있는 만큼 읽는 거예요.


그렇게 치면 들리나요?


들리죠. 치고 있는데.


안 들리는데요.


가까이 들어야 들려요. 아주 여리게 치고 있거든요. 한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연주를 안 하는 건 아니에요. 다시 한번 들어보세요.


연주자는 내가 듣지 못한 처음부터 다시 연주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디미누엔도가 시작되었다. 연주자는 점점 여리게 곡을 읽었다. 힘을 빼는 대목에서 더 힘들어 보였다. 두 손을 간신히 건반에 얹은 채였다.


나는 연주자의 표정을 관찰했다. 어느덧 아주 여리게 곡이 끝났다. 연주를 마친 연주자는 글을 두고 떠났다. 그가 일어난 자리에 앉아보았다. 건반 위에 오른손을 올리고 발견한 것은 나의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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