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드립 비커에 있는 작은 그림을 좋아한다. 커피 그라인더 그림이다. 그림을 보면 두 가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학사모. 그리고 정의의 여신이 든 양팔 저울. 두 이미지를 합하면 로스쿨-법조인이 연상된다. 여기에 커피를 내려 마시면, 마치 내가 재판 휴정 15분간 커피를 들이켜며 판결을 고심하는 법관이 된 것 같다.
‘왜곡되어 있다.’ 지난 대화 때 엄마 말씀이다. MBTI 이야기를 하다가 나의 특성인 내향 직관을 들며 정확한 직감도 있지만 틀린 부분도 있다고. 사실이 아닐 수 있는데 자기 생각이 너무 뚜렷하다는 것이다. 엄마 말씀은 틀린 데가 없어 동의했다. 동시에 그 ‘왜곡’이 나의 소설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게 있어서 세상 만물을 독창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가능하지 않았나.
비커에 담긴 콩알 그림은 당연히 드립 커피와 연관 있을 거고 도대체가 그것을 주목할 이유가 없다. 나는 그걸로 판사 놀이를 하고 있다. 엄마가 그렇게 낳았으면서 나보고 왜곡이라 그런다. 왜곡이란 단어를 듣자 소설가로서 칭찬받는 기분이 들어 머릿속으로 그간의 왜곡을 훑어보았다.
참 나는 쉽게 행복해지도록 왜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