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내 나이가 원망스러웠다

by 아륜

누나를 좋아하게 된 건 지난주부터였다. 확실히 그때부터였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내 옛날이야기를 했다. 하라고 한 건 아닌데 말하고 싶었다. 누나에게는 그런 힘이 있었다. 마음 놓고 끈을 풀고 술술 말하고 싶게끔 만들었다. 그 앞에만 가면 긴장이 풀어지고 진솔한 나를 보여줄 수 있었다. 누나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내가 하는 말들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잘 몰라서 얼버무리면 누나가 명확히 짚어주었다. 누나가 이거 말하는 거 맞지, 하면 바로 그거였다. 우리가 에이드 한 잔 놓고 몇 시간 동안 이야기한 그날 나는 누나를 좋아하게 되었다.


지하철역 앞에서 학교 버스를 기다리다 누나를 처음 봤다. 햇볕에 목이 타서 긴 줄도 포기하고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아이스커피를 주문하면서 누나의 눈을 처음 봤다. 앞에서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하고 그 눈이 싱긋 웃었다. 나는 그 순간 몸에 힘이 풀렸다. 누나가 만들어 준 커피를 한 번에 다 마시고 버스를 탔다. 수업이 끝나고 다시 지하철역으로 돌아왔다. 길 건너 가게에 가 보았지만 누나는 없었다. 다음 날 수업이 없었지만 같은 시간에 가서 누나가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 오늘의 커피를 시키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날 기억할 거야. 어제와 같이 주문하면서 몇 시까지 근무하냐 물었다. 누나는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한 시간 후에 마친다고 했다. 구석에 앉아 한 시간을 기다렸다. 누나가 주문을 받고 웃고 음료를 만들고 테이블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았다. 한 시간이 지나고 누나가 모자를 벗고 앞치마를 접은 다음 머리를 풀었다. 나는 그때까지 누나가 그렇게까지 누나인 줄 몰랐다. 어려 보이기는 하지만 십 대는 아닐 거고 스무 살이라고 하기엔 여성스러워서 나보다는 무조건 누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스물둘이나 셋 정도 되지 않았을까 했다.


아직 정식으로 고백하지는 않았다. 누나와 말이 잘 통하고 함께 있을 때 좋고 누나를 잃을까 두렵다고 했다. 누나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누나는 숫자 따위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1학년이라고 했을 때 말을 바꿨다. 스물넷 정도 된 예비역인 줄 알았다고 했다. 나도 네가 좋지만 아무리 그래도 일곱 살 어린 남자는 만날 수 없다고 했다. 누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해두었다. 나는 아직 신입생이고 누나는 대학교도 졸업했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 틈틈이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괜찮은데 누나는 미안해했다. 내 나이가 이렇게 원망스러운 적이 없었다. 누나가 젊어질 수도 없고 내가 빨리 나이 먹을 수도 없었다. 남이 보면 또래인 줄 알 텐데 뭐가 그리 문제인지 알려 달라고 했다. 미안해야 한다면 그건 나라고 했다. 누나는 나를 좋아하지만 상처 주기 싫다고 했다. 그게 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내가 하는 공부에 대해 설명했다. 몇 년 전부터 하고 싶었던 전공을 하고 있고 앞으로 이렇게 성장해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 거라 했다. 누나보다 훨씬 어리지만 하루하루를 책임감 있게 살아가는 성인이고 남자라고 말했다. 누나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했다.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래야 누나가 마음을 열 수 있을지 막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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