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엄마, 니체를 알아요?

by 아륜

부모와 의견을 좁히지 못한 채로 고등학교를 마쳤다. 합격이 확정된 친구들은 조심스레 소속을 교환했다. 샛노란 꽃다발 앞에서 입꼬리를 당겨 사진을 찍었다. 나는 대학에 갈 생각이 없었다. 대학이 필요하지 않았다. 대학교는 나와 같은 입학생들이 꼭 필요하겠지만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란 규격에 순응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능하거나 무책임한 학생으로 남기도 싫었다. 선택의 진정성을 숫자로 증명해야 했다. 주어진 시험에 응시했고 못나지 않은 결과를 얻었다. 성적표를 출력하던 날 하얀 종이를 코팅하고 구직 사이트에 들어갔다. 관심 있는 분야 회사들의 채용정보를 수집했다.

졸업 시즌 뷔페는 가족들로 붐볐다.

"그래서 대학 안 가고 도대체 뭐 할 거야?"

몇 시간 참아왔던 엄마가 격앙된 목소리로 물었다. 친구 딸들은 어디 어디 몇 학번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아빠가 빈 접시를 들고 자리를 비웠다. 나는 좋은 소식을 가지고 있었다. 아빠가 다시 앉기만을 기다렸다. 아빠가 오자 엄마가 가슴을 치며 일어섰다. 엄마를 따라가 하얀 접시 위 대게를 담아 주며 말했다. 엄마, 니체를 알아요? 나는 웃으며 내 자리로 돌아왔다. 엄마가 자리에 앉자마자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여행과 글을 둘 다 좋아해요. 여행작가가 꿈이랍니다. 여행작가가 되려면 여행 경험과 글 솜씨가 필요해요. 여행을 하려면 시간과 돈이 필요해요. 글 솜씨에는 꾸준한 글쓰기 연습이 필수이고요. 글을 쓰려면 역시 간접적으로 시간과 돈을 써야 해요. 그런데 대학교를 팔면 시간과 돈을 얻을 수 있어요. 돈은 엄마아빠 것이지만 시간은 내 거예요. 나는 새해 성인이 되었고 내 시간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엄마아빠, 그래서 저 취직했어요. 호프집이 아니고요. 회사예요. 인턴이기는 하지만요. 인턴이라는 자리가 없었는데 여행사에서 나 때문에 만들었다고 해요. 다음 주에 첫 출근이에요. 아빠 덕분이에요. 아빠 따라 간 몽골에서 저 느낀 게 많았거든요. 그때 감상문을 포트폴리오로 제출했어요. 대학 등록금은 글쎄요. 돈 굳었죠. 다음에는 제가 밥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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