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18.
모든 이의 가을이 뒤숭숭한 것만은 아닐 테다. 그닥 심신의 움직임이 없는 요즈음의 내가 어쩌다 대하는 가을 또한 산만하지도, 쓸쓸해 뵈지도 않는다. 간간이 울적해지긴 하나, 나도 어느 한때처럼 모질게 계절을 앓진 않는다. 외려 계절을 잊은 채 아니, 잃은 채 살아간다.
솟구치는 욕망이 없어서인지, 아예 체념하고 살아서인지, 이즈막에 대하는 가을은 번뇌 속으로 기어들고 싶어도 어지간해선 들썽이질 않는다. 가지지 않아도 되는 것을 굳이 가지려 애쓰는 부질없는 욕망 따위는, 애초부터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휘황한 옷을 걸친 듯 불편하고 부담스럽다. 앞날을 가늠할 수 없으니 미래의 어느 날 문득 발칙한 욕망을 부르짖다 스러져 갈지 모를 일이나, 여하튼 지금의 나는 욕망하기를 외려 욕구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세월이 내게서 앗아가는 여러 가지 중 반갑기도, 서글프기도 한 하나가 바로 둔감해지는 것이다. 파르르한 노기가 완벽하게 사라졌다 할 수 없고, 냉혹한 기억이 완전히 삭제되었다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럭저럭 세월과 함께 산란하고 탁한 마음을 순하게, 묽게 만드는 기술이 조금씩은 연마되고 있었던 듯하다. 갈수록 무덤덤해지는, 어정쩡한 감성으로 이 계절을 보내고 있는데도 깊은 안도와 가벼운 저항이 나란하게 배치되는 것 또한 그 기술의 발현인 셈이겠다. 전처럼 내 속에 치열한 저항만이 들끓었다면 이 계절을 이렇듯 다소 녹실하다 싶게 보내진 못할 테다.
생각보다 삶은 질기고 제법 찰기도 돌아 내 속에 이는 마른바람과 여타의 거친 바람에 쉽게 부서지지도, 망연히 흩날리지도 않는다. 나를 스쳐간 혹독한 바람도 과거가 되면 한낱 기억으로 자리할 뿐. 어쩌면 내 불가항력의 삶에 대한 저항으로 무수한 가을을 앓았는지도 모르겠다. 헛된 욕망과 거센 저항이 불온하게 공존하던 여러 가을은 단지 과거로 남았다.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무디어진 지금의 나는 이 가을, 아주 조금 우울할 뿐이다.
내 안의 욕망과 저항은 사라진 게 아니었다.